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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4 중국생활

첫 출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

개학 전 3일 간 출근을 했고, 3일 내내 두통에 시달렸고, 여전히 마뜩잖은 상태로 3시간짜리 전체회식을 끝냈다.

첫 출근 전에 환영회식이란 것도 했었는데 그때도 머릿속으로 '집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았고, 어떤 것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무르익어 집에 갈 때쯤엔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사과해야 할 기분이 들었다.

다들 애써서 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더 힘을 냈어야 했는데 오전에 비자 때문에 우시에 다녀와서 그런지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사회적 에너지를 벌써 초장부터 다 써버린 건지 워크숍이 다 끝나고 마지막 전체 회식 때도 기력이 없었다. 

"선생님, 회식 싫어하지?" 

옆자리 선생님이 넋나간 내 표정을 귀신같이 읽었나보더라. 

"네, 집에 가고 싶어요."

새로운 곳의 분위기를 살피느라 굳어 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났다.

집에 와서 씻고 나니 거짓말 같이 두통이 멈췄다.

개학 전에 할 일이 많았지만, 남은 시간은 휴식에 온 정신을 쏟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출근 하던 날 우리 집 차창 밖 풍경

 

주토피아 랜드 눈치게임 대성공

작년 12월 무렵에 주토피아 랜드가 개장했다.

원래도 사람 많기로 유명한 디즈니인데, 새로운 구역이 오픈했으니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몰릴 테고 적당한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2월 내내 날씨가 좋지도 않았고, 막상 가려고 결심한 날씨 좋은 날은 이미 매진 상태였다.

쉬자후이 근처 쇼핑몰을 가는 길에 주토피아 랜드 광고를 보다가 마음이 꽂혔고, 갈거면 평일에 가야지 하는 마음에 홧김에 되는 날짜를 골라 예매했다.

3월 개학일을 앞두고 바쁘게 놀만큼 체력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평소 주말처럼 늦잠을 자고서 별 기대 없이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중국학교 개학날이고, 비도 하루 종일 오는 날이어서 사람이 엄청나게 적었다.

(사실 비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다. 바람 불면 조금 추웠을 뿐)

생각해보면 디즈니를 꽤 많이 갔다. 상해 디즈니는 이로써 4번째 방문이다.

웬만한 놀이기구도 다 타봤고, 할 만한 구경도 거의 다 했지만 갈 때마다 신나고 재밌다.

사실 디즈니는 인파 때문에 가기가 꺼려지는 장소일 뿐 쾌적하게 돌아다니기만 해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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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장한 주토피아는 10분 만에 진입 성공했는데, 인형이 눈앞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고, 어트랙션도 상당히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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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야외 어트랙션이 조금 춥고(계속 비옷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도 좀 귀찮음), 퍼레이드 볼거리가 좀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다만. 추워서 주디 털모자도 하나 냉큼 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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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불꽃놀이까지 다 보고 11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치기도 했지만,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성취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올해 또 상해 디즈니는 새로운 구역 개장을 앞두고 있다는데, 또 새로운 거 생기면 보러 가야지 후후

 

 

매화가 절경인 때에 다녀온 신좡매원

작년에 이육사의 <광야>를 가르쳤다.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가 지사의 고독함과 미래에 대한 의지적 자세를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매화 향기가 어떤 거였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제대로 맡아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상해에 이사온 기념으로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던 날 마침 상해 곳곳에 매화가 절정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근처에 오래된 매원이 있길래 매화를 보러 갔다. 

작년에도 우시에서 매화를 보러 매원에 갔을 무렵 날씨는 비오고 추웠는데, 올해는 적당히 추웠던 것 같다.

추운 날씨가 풀리자마자 금세 피고 지는 꽃인 만큼 타이밍을 놓치기 쉬운 꽃이다.

무료입장 공원이라서 별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있고 갖가지 종류의 매화를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바람이 불면 매화 향기가 후루루 코 끝을 스쳤고, 나는 이미 다 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와서 빈 상자에 풍경을 담았다.(선물 받은 필름 카메라가 15장이 끝이었단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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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꽃을 보고 나니 출근 때문에 지쳐있던 심신이 조금씩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올해도 꽃 볼 여유가 더 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것을 잊게 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