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문턱은 늘 높지
3월 첫 주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이상하게 2주, 3주가 되어서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느낄 만큼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기도 했다. 겨우 눈떠서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떡이 된 상태로 배가 고팠다.
3월은 원래 힘들고, 새 학기 새 학교 적응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몇 번의 고비가 왔었다.
일주일 동안 입병이 심하게 나서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양치도 겨우 했다. 일교차가 심해지니 자연스럽게 콧물이 났고, 심한 감기 수준까지는 아닌 게 다행이었다.
이미 2월에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픈 게 취미가 아닌가 싶은 정도로 건강 체질이 아니게 되었다.
초저녁부터 졸음이 왔고, 새벽 2시에 한번 깨면 1시간 유툽 영상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이런 저질 체력으로 살다 간 금방 늙고 죽겠다 싶을 정도로 생활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미 2년 이상 이곳에 적응된 샘들은 새벽 5시부터 조깅하고 운동도 거의 매일 나간다고 한다.
여태껏 한 번도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패턴을 가져본 적 없지만 언젠가 그런 여유와 삶의 리듬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꽃구경은 놓칠 수 없다
노는 건 바쁘고 지치는 일상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다. 휴일엔 없는 체력 쥐어짜서라도 놀러를 가야 했다.
내가 여기에서 고생하는 건 다 자유롭게 놀기 위해서니까.
매화 구경을 위해 태호 근처 香雪海로 놀러도 갔고, 롱화쓰(龙华寺)의 목련도 구경하고, 상해의 핫플이라고 하는 징안쓰(静安寺)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고 봄 날씨를 즐겼다.
상해에서 새로 만난 선생님들과 식사도 하고, 무석 샘들과도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푸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상해엔 갈 곳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다는 사실이 처음엔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좋은 걸 같이 고생했던 샘들이랑 누리게 됐다는 사실에 감사하게도 느껴졌다.
구베이 미식 탐방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구베이(古北)라고 불리는데 예로부터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홍췐루가 한국인 거리라면 여긴 일본인 거리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일본식 백화점, 음식집들이 몰려있다.
중국 살면서 항상 가짜 일식과 가짜 한식에 실망하다가 여기 오니까 확실히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고, 음식의 질도 높아졌다.
맛있었던 걸 하나씩 모아보자면.
拉麵競技館(高岛屋百货店)
지나가다가 라멘 맛집 같아 보여서 들어갔다가 옛날에 도쿄 여행 갔을 때 먹었던 가계(이에케이)라면이 생각나서 정겨웠다.
기본맛인 것 같은 돈코츠 라멘은 짜지만 맛있었는데, 다른 매운 라멘은 쏸한(=신) 맛이 너무 강해서 좀 별로였다.
鸟心(美罗城店)
메이루어청은 구베이랑 가까운 쉬자후이 역 근처의 백화점 건물인데, 온갖 일식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니토리 쇼핑하러 갔다가 쿠라스시, 갓덴스시, 자쿠자쿠 온갖 일본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볼일을 마치고 저녁때가 되어서 밥을 먹으려고 하니 일식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안 먹어본 걸 먹어보고 싶어서 그냥 보이는 곳 중 웨이팅이 없는 아무 곳에 들어갔는데, 돈코츠 덮밥과 텐동이 진짜 맛있었다.
원래는 꼬치가 메인인 곳인데, QR주문 오류로 인해 접수가 안 되어서 그냥 밥만 먹고 나왔다. 다음엔 다른 메뉴도 시켜 먹고 싶다.
家康居酒屋(兴义路店)
신세기광장은 예전에 장어덮밥(히츠마부시)을 먹으러 왔던 곳인데, 여기도 작은 일본이라고 할 만큼 일식집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다.
츠케멘은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제법 짜지만 면이 탱글탱글 맛있었고, 퇴근 후에 맥주 한잔까지 곁들이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岳GAKU日本料理(古北店)
다 먹고 2차로 일식 오뎅바로 넘어가서 오뎅탕에 사케를 시켜 먹었다.
신기했던 건 우리 테이블을 제외하고 다 회사원 복장을 한 일본 아저씨들이 득실득실했다는 것.
일본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여기가 일본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직원 분이 추천해 주신 사케를 먹었는데, 따뜻하게 먹어도 차게 먹어도 맛있었다.
일본 사케/소주 종류도 다양하고 잔 사케도 괜찮게 나오는 것 같아서 다음에 사케가 먹고 싶은 날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구베이 지역의 특성상 외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일식 외에도 다양한 나라의 특색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라오와이지에(老外街)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외국 음식집들이 모여있는 거리인데 퇴근 후에 술 한잔하기 딱 좋다.
Las Tapas(老外街店)
그리스 음식점을 추천받긴 했는데 맛은 기대하지 말라고 해서 적당히 한산해 보이는 집에 들어갔다.
맥주와 빠에야를 먹었는데 감동의 맛이었다. 둘이서 3가지 메뉴를 시켰더니 가격은 그리 싸진 않았다.
빠에야 재료가 너무 실하고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쩝
Delight Food-Belgian Brasserie比利时啤酒餐厅(老外街店)
한국에서 돌아온 샘 축하파티와 생일 파티까지 겸하여 우리 집에서 놀기로 했던 날, 샘들이랑 또 라오와이지에를 갔다.
인생에서 먹어본 적 없는 벨기에 음식이었는데, 해산물 요리가 굉장히 맛있었다. 호가든 맥주 500잔 시켰더니 갑자기 대형 맥주가 나와 놀라기도 했다.
다양한 서양 음식도 맛보고 신나게 밤 분위기를 즐겼다.
龙文桂林米粉(古北家乐福店)
너무 몸이 피곤해서 마사지를 받고 집에 돌아가던 날, 딱 봐도 여긴 맛집이다 싶은 집이 있었다.
오래된 노포 같아 보였는데 바깥에 테이블이 다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면을 흡입하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면 요리를 팔았는데, 매운 음식은 피하고 싶어서 우육면 같아 보이는 메뉴를 하나 골랐다.
쏸한 맛이 나는 고추 절임과 땅콩, 고기, 식감 좋은 야채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시원하고 칼칼하고 정말 맛있었다. 바람 불어 추운 날에 꼭 당길 것만 같은 그런 국수다.
역시 맛있는 걸 먹어야 힘이 난다.
이제 한 주만 더 버티면 청명절 연휴다. 다가오는 청명절엔 충칭에 놀러 갈 거다.
또 맛난 걸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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