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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4 중국생활

상해 라이프의 시작

블로그를 오랜만에 쓴다. 그동안 또 많은 일이 있었다. 하나씩 끄적여보자면.

따뜻한 부산에 오래 있다가 베트남 여행이 끝나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명목은 상견니 재개봉 상영 때문인데, 오랜만에 친구덜이랑 한데 모여서 영화도 보고, 렉시오도 하고, (욕이 난무하는) 훈민정음 윷놀이도 하고, 빙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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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에서 친구도 보고, 먹고 싶었던 한식 잔뜩 먹고 나니 금세 중국에 갈 시간이 됐다.

원래는 비자 때문에 1~2주만 짧게 있다 가려던 것이 갑자기 일정이 미뤄졌단 소식에 오래 머물게 된 것인데,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여유롭게 쉬고 여행도 다녀왔으니까. 하지만 2월에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어쩐지 두렵고 겁이 나기도 했다. 

 

나트랑 & 달랏 휴양 여행

처음 가는 동남아 패키지여서 설레면서도 약간 걱정됐다. 여행 전날까지도 실감이 안 나다가 아침에 급히 치과 치료받고서 먹고 싶었던 햄버거를 먹고 나니 갑자기 출발 시간이 됐다.

공항에서 여행사팀을 만나 전달사항을 듣고 체크인을 하고,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면세점 쇼핑하니 금세 탑승시간이 되었다.

예정대로 착착 순조롭다 싶었는데, 나트랑 깜란 공항에서 짐 찾으려고 기다리다가 렌즈통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급하게 문의 데스크에 가서 말하니 다행히 기내 분실물에 있다며 찾아주었다. 파우치 안에는 비싼 하드렌즈와 중국 유심, 비상약 등등이 잔뜩 들어있어서 함부로 잃어버리면 큰일인데 바로 찾을 수 있어 십년감수했다.

물론 이게 첫 번째 물건 분실 사건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피로를 풀러 간 찜질방에서 카드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것도 다행히 직원이 바로 발견해서 찾아주었다ㅠ(거긴 신분증과 보안카드까지 들어있었음)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 있기도 했지만, 아무렇게나 흘러내리는 천가방이 문제란 걸 알고서 출국할 때는 아예 몸에 지니고 지퍼로 잠그는 슬링백을 샀다. 요즘 매일같이 잘 쓰고 다니는데 진작 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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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나트랑 모벤픽 리조트는 에메랄드 바다 빛깔이 아름다웠고, 적당히 선선한고 더운 날씨가 마음에 들었다.

밤 비행기로 와서 잠을 얼마 못 잤지만 짧은 시간 호캉스는 누려야 해서 아침부터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바닷가 산책까지 했다. 야무지게 포카 인증사진도 찍고.

그런데 인물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 속 친구와 내 얼굴이 잔뜩 부어 있었다. 전날 염분 잔뜩 섭취하고 잔 얼굴처럼. 웰컴 망고를 먹고 자긴 했지만 딱히 짠 걸 먹은 것도 아닌데, 억울하고 미스터리 했다.

여행 마지막 날 때쯤 되니 부기가 서서히 빠지는 걸 느꼈지만 여행 내내 부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아서 혹시 이건 살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바쁘게 몇 번 관광 스팟을 옮기고 나니 금세 나트랑 여행이 끝나고 달랏으로 이동할 차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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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달랏 버스 이동은 정말 지옥이다. 거리는 짧지만 산길을 타고 계속 빙글빙글 도는 구조라서 멀쩡한 사람도 구토를 유발하고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부모님을 데리고 베트남 휴양 여행을 한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우리는 좀 두들겨 맞은 듯한 피로만 안고서 달랏에 도착했고, 쉴 새 없이 바쁘게 달랏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패키지 관광은 정말 편한데, 너무 많은 코스를 돌아서 정신이 없다. 

저녁이 되면 힘이 쪽 빠져서 주변을 산책할 겨를도 없다. 하지만 둘째 날 저녁에 힘을 내어서 달랏에서 가장 큰 마트 구경을 갔는데, 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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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고 나서는 짐이 많아져서 호텔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걱정이었다. 마침 우리랑 비슷한 처지같이 보이던 한국인 관광객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grab 으로 택시를 잡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어쩌다 보니 그분들보다 빨리 택시가 도착하는 바람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먼저 떠나게 됐다.

나트랑과 달랏 야시장도 갔지만 마트 구경 만큼 재미난 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급히 하이랜드 커피도 사먹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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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은 패키지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쇼핑센터에 가서 어른들의 지갑 열리는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부산으로 온 다음날은 죽은 듯이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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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먹는 쌀국수와  달달한 코코넛 커피, 따뜻한 날씨와 좋은 풍경이 다 힐링이었지만, 다음엔 아무리 싸더라도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을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동남아는 물가가 너무 저렴하고, 나트랑-달랏 처럼 이동의 제약이 좀 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을 체험하기엔 자유여행이 더 알맞은 것 같다.(거기까지 가서 한식을 먹은 기억이 더 많다는 것도 흠이다)

언젠가 또 베트남에 가서 휴양을 마음껏 즐기다 오고 싶다.

 

중국으로 돌아와서 - 추위와의 전쟁-

영원한 나의 출국푸드 갓덴스시를 먹고 나는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야무지게 쌀국수까지 먹고 탑승구 게이트까지 달려갔는데 무사히 탑승 시간에 딱 도착했고, 심지어 좌석 옆자리도 비어있었다.

중국 집에 돌아오니 집이 냉골이었고, 난방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보일러를 끄고 간 것을 후회했다.

다시 집을 훈훈하게 덥히기 위해 일주일 넘게 보일러를 가동해야 했으니까. 겨울의 우시는 청명절 연휴 전까지 거의 습한 추위와의 전쟁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추운 집도 이렇게 냉골일 수가 없다. 안과 밖의 온도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바깥의 온도가 내부의 온도를 결정한다.

상해도 우시도 겨울에 영하로 거의 떨어지지 않는 도시지만 여름에 더운 도시인만큼 건물 자체가 난방에 취약해서 겨울에 따뜻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우시에서는 보일러 있는 집에서 2년 간 생활해 왔지만(하지만 보일러 끄는 순간 바로 냉골이 되는 집) 상해에서는 예산 문제로 보일러 있는 집을 쉽게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떠날 때 되니 아련해 지는 집풍경

 

나의 집은 어디인가

중국에 오자마자 출근해서 짐정리를 하고서 바로 상해로 넘어가 집 찾기에 돌입했다.

춘절 기간 이후에는 집세도 오르고 이동도 어렵다는 말을 들어서, 예상보다 일찍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온종일 비와 습한 추위에 시달리며 상해 곳곳을 다니며 집을 봤다. 막판에는 아예 호텔을 잡고서 동네를 옮겨 다니며 집을 봤는데, 각양각색의 구옥 맨션과 관리가 방치된 채로 곧장 무너질 것 같은 외관의 와르르 맨션들을 너무 많이 봐서 희망을 점점 잃어갔다. 

심지어 집값은 우시보다 2배 정도인데, 집 상태는 훨씬 안 좋으니 계속 만족할 만한 선택지가 없어서 너무 괴로웠다.

어플들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은 다 멀쩡하고 깔끔한 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구석구석 더러운 곳이나 관리가 안 된 부분들이 많아서 계약을 하려고 맘먹었다가 떠나보낸 집도 있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 집이다 생각하고 들어가서 본 집이 보자마자 괜찮아서 바로 부동산에 가서 당일에 계약을 했다.

처음엔 너무 춥고 힘들어 판단력이 흐려져 충동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이사하고 보니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인테리어를 새로 마친 집에 새 가구로 인한 먼지가 심해서 청소 업체를 불러야 했고, 하수구가 막혀서 수리 기사님을 급히 불러야 했지만서도.

보일러가 잘 돌아가고, 방에 해가 잘 들고, 지하철역과 가깝고, 무엇보다 '상해 같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신도시 아파트 숲 같은 삭막한 뷰에서 벗어나 매일 걸어 다니며 보는 풍경들이 오래된 도시 상하이의 느낌을 느끼게 해 준다.

아직은 매일같이 새집을 갈고닦고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더 집 같아지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그래도 방학이라서 행복합니다

어쩌다 보니 춘절을 중국에서 보내게 됐다. 전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춘절의 상해는 참으로 조용하다. 다들 가족과 설을 맞기 위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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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와 니토리 쇼핑 후 연어도 냠

영업하는 큰 마트나 백화점에 살 것이 있어 쇼핑하러 종종 다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산책 겸 분위기 좋은 카페나 거리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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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니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던 우캉루

상해 살면 이런 것들을 다 누리고 살 수 있구나 싶어서 흡족해하다가도 '난 왜 여태껏 이런 걸 누리지 못했지?' 하는 울분이 치솟을 때도 있다.

이런 이상한 감정 상태도 다 적응 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이사라는 큰 과제를 해결한 덕분에 여유롭게 이 시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막 이사 올 무렵에는 춘절이라 딱히 주변에는 연 가게도 없고 비교적 거리가 한산했는데, 춘절 끝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하는 택배들을 받으며 이 긴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곤 한다.

앞으로 얼마 안 남은 방학도 즐기면서 해피한 상해 라이프를 꿈꿔 보겠다. 

용의 해니까 눈이 예쁜 주일룡 사진으로 마무리하겠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