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대만행
2024년의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새해를 대만에서 맞았다.
학기말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점점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3일간의 연휴를 집콕으로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출장차 대만에 와 있었던 개상똥이 타이베이 여행을 제안했고, 상해-타이베이 비행기 값이 무척 싸길래 홧김에 결제했다.
동트기도 전 새벽에 우시신취역에서 첫차를 타고 상해역에 도착하고서 역 출구로 뛰어나와 택시를 잡아타서 푸동 공항에 도착하니 딱 체크인 마감 시간 30분을 앞두고 있었다.
푸동 국제선은 연말연시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늘 그랬듯 출국 심사의 외국인 줄만 길었다. 탑승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출입국 심사에 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한숨과 똥 씹은 표정으로 대기를 했다.
내 앞에 10명정도 남았을 무렵 인력이 더 배치되어서 줄이 빨리 빠지기 시작했다. 푸동 공항은 아침에 열린 가게도 거의 없고 크기만 커서 발만 아프다. 화장실 다녀와서 물 사러 자판기까지 갔다 오니 어느새 탑승시간이 됐다. 이렇게 빠듯하게 국제선 비행기 탑승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기내에 탑승하고 나선 눈 감았다 뜨니 바로 타이베이 시내 전경이 차르르 눈 앞에 펼쳐졌다. 쑹산 공항은 처음이었는데, 무슨 지하철역 만한 규모라서 출구 찾는 것도 참 쉬웠다.
문제는 이동수단(택시, 지하철)을 타려면 이지카드나 현금이 필요한데, 내겐 둘 중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개상이 말만 듣고 현금을 하나도 안 챙겨 온 탓이다.(이미 한 차례 여행 다녀와서 알고 있었는데도 현금 필요 없단 말을 철석같이 믿다니 나도 참 멍충하다)
하는 수 없이 개상이랑 만나기로 한 타이베이 메인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개상이가 대신 금액을 결제를 해주기로 했다. 기사님이 계속 M9 출구를 자꾸 A9로 발음해서 당황했지만 무사히 접선을 성공하니 마음이 놓였다.
대만은 중국과 다르게 정말 너무너무 더웠다. 역 화장실에 들어가 급하게 챙긴 반팔로 갈아입었다. 짐을 까르푸에 맡기고 귀여운 이지카드를 손에 넣고서 시먼딩에서 우육면과 망고빙수를 사 먹었다.
개상똥은 뭐 자꾸 먹기만 하냐며 꿍얼댔지만 "난 타이베이에 먹으러 왔는걸?" 하며 꾸역꾸역 먹으러 다녔다. 사실 첫날에만 대만 음식을 먹었던 것 같고, 일식과 술을 훨씬 많이 먹긴 했다.
작년 2월에 첫 타이베이 여행을 하고서 다시 12월에 여길 다시 오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특별할 것이 없는 명동 같은 시먼딩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도 계속 '내가 다시 여길 왔다니' '내가 지금 타이베이라니' 불쑥 감동이 차올랐다.
연말연시라서 타이베이 숙소값이 너무 뛰는 바람에 우리는 이란 현에 있는 뤄동 쪽에 숙소를 잡았다. 타이베이 구경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뤄동으로 넘어와 야시장을 구경하고, 둘째 날에는 자오시 온천 마을과 카발란 위스키 공장을 갔다.
뤄동에 온 김에 숙소 근처에 위치한 뤄동운동공원도 혼자 산책 겸 다녀왔다. 이곳은 상견니 주요 촬영 스팟인 나무가 있는 곳인데, 공원이 온통 푸릇푸릇한 가운데 오로지 그 나무만 휑하였다ㅠㅠ
슬픔을 뒤로하고 조식을 먹고서 왕취안성의 흔적을 따라 칭수이 해변도 다녀왔다. 오타쿠 남매는 휘몰아치는 바닷바람과 모래를 마시며 각자의 최애의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고 놀았다.
마지막 날은 저녁 비행기라서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짐을 맡기고 나서 밥을 먹고 누가 크래커를 사고 나니 생각보다 여유가 없었다. 다시 지하철역 규모의 쑹산 공항으로 가서 아쉬움 뚝뚝 흘리며 상해로 돌아왔다.
1월 1일의 상해홍차오 기차역은 생각보다 사람들로 붐볐다. 기차 시간이 애매하게 뜨고 택시 줄도 길어서 분명 저녁 6시 반쯤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저녁 11시나 되어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연말연시 여행이었지만 온천욕 하고 마사지도 받으면서 몸도 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내내 편하게 지냈다.
가족여행을 빼고 개상이랑 둘이서 여행한 건 두 번째인데, 개상이는 계획을 안 짜는 J이고 나는 계획만 짜는 P다 보니 이상하게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각자 알아서 잘 놀아서 따로 또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겨울 방학에 여행을 한 차례 날리고서 우울한 기분도 조금 사그라들었고, 아직 못 간 상견니 촬영지 정복을 위해 다음에 또 대만에 가고 싶다.
올해도 과년(过年)은 디디와 함께
대만에 오기 전 내내 과로한 탓인지 밤만 되면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타이베이 101에서 하는 불꽃놀이는 TV로 봤지만 새해 카운트다운은 다 못 보고 잠이 들었다.
호텔에서 TV의 HDMI 케이블 부분을 막아버려서(맘먹고 케이블도 다 가져왔건만-_- 방도 바꿔달랬더니 모든 방이 그렇다며 거절당함) 큰 화면으로는 못 봤지만 2023 후난위시 과년연창회도 깨알같이 챙겨봤다.
이번엔 디디가 여러 번 무대에 올라서 여러 번 순서를 기억해두어야 했는데, 깜빡 졸다가 무대 하나 놓치긴 했지만 우리 애기가 송치엔이랑 키스 퍼포도 하고 래퍼 형아들이랑 해변탱고 무대 하는 것도 잘 보았다.
올해도 디디와 과년을 함께하며 행복한 새해를 맞았다. 매해 디디가 이렇게 쑥쑥 자라서 무대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학기말 시러시러병
대만에서 채운 기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기말'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혼자서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모두가 업무 과중으로 떠밀려가는 학기말에는 특히 말과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학기말 성적 처리 업무를 순조롭게 해 가던 중 여러 부서에서 계속해서 '왜 빨리 안 해주냐'라고 쪼으는 바람에 나는 이미 한 차례 폭발을 했었다.
내가 노냐? 엉? 노냐고!!
사실 이렇게 터뜨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일을 시켜 미안하다는 선생님께 '저는 할 일을 할 뿐인데 너무 미안해하는 것도 지금 나한테 일을 더 주는 거나 다름없다. 그냥 일을 잘 끝내기만 하면 된다.'라며 T 100% 로봇처럼 말했다. 바빠 죽겠는데 감정노동 따위 시키지 말라고.
한꺼번에 무리해서 일을 하느라 몸도 아프고 신경도 예민해진 상태에도 꾸역꾸역 일을 했다. 일주일 내내 약속도 못 가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잠도 못 자고 생기부를 썼는데, 방학식 전날 학생이 찾아와 생기부를 '더' '잘' 써주기를 요구했다.
예의 있게 말한다고 해서 말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생기부 잘 써주세요'는 공문서 위조 청탁이자 평가권 침해다. 이 말이 나쁜 뜻으로 소통되지 않는 여러 맥락도 존재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며 이 정도는 내가 부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탕은 변함이 없다.
나는 그저 정직하고 충실하게 내 일을 할 뿐인데, 사람들은 내 노동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 준하여 셈을 하고선 당연스레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한낱 가벼운 부탁이라면 나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다. 그럼 기분도 안 상하고 좋겠지마는. 얼핏 간단해 보이는 부탁도 상대방에겐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무릇 사람이 하는 일에는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고,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지 판단이 서기 전에 모든 일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벌어진 틈은 어떻게 메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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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렇다. 힘이 든데도 멈추질 못하고 무리해서라도 내가 어떻게든 해내는 일들은 어째선지 죄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가 절하되는 것만 같아서 속상하다.
또 한 번 서러움이 터지기 전에 방학을 하자마자 쏜살같이 학교를 빠져나왔다. 인사도 제대로 못한 건 물론이고 책상 정리도 안 하고 가서 다들 다음 날 내가 출근할 줄 알았다고들 한다.
영원히 도망칠 수도 없고, 결자해지 해야 하는 일들은 학기말병이 낫는 대로 해치워야지. 그래 그렇게 좋게 좋게 이별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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