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중간고사를 마치고 원서접수도 끝냈다. 아직도 마음은 후련하지 못하다. 어떤 결과든 내 뜻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테니까.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난만 닥쳐왔으면 좋겠다.
마음이 심란해서 드라마도 유튜브도 못 보던 때에 넷플릭스에 우연히 올라와 있는 <라이트 하우스>를 봤다.
호시노 겐X와카바야시라는 조합
호시노 겐과 와카바야시의 대담? 토크? 프로그램인데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사쿠마상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라인업만 보고 딱 알았다. 이건 나를 위한 프로구나.
두 사람의 발밑이 어두웠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호시노겐은 매 화마다 작곡까지 한다. 1화에 호시노겐이 작곡을 하겠다고 하자, 와카짱이 그럼 저는 뭘 하죠? 이러다가 마지막 화에서는 랩을 함ㅋㅋㅋㅋㅋ 알 수 없이 흘러가는 전개가 웃긴 포맷이다.
사실 두 사람이 좋은 이유는 지금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코어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호시노 겐은 쿠도칸 초기작부터 꾸준히 웃음을 주던 연기자였고, 예능이나 라디오에도 종종 나와서 점점 활발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래도 인기가 있었지만 니게하지 이후 갑자기 빵 뜨더니 각키와 결혼 발표 이후 나는 질투심에 더 이상 호시노 겐을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내 각키를ㅠㅠㅠㅠ)
그러다 MIU404 이후로 새삼 호시노 겐의 연기를 다시 보게 됐다. 이 사람 여전히 열심히구나. 경력을 쌓을수록 성장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인데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창작자로서의 호시노 겐은 어떤 모습인지 잘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지금껏 버텨온 거였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하나가 막힐 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가 창작을 할 때마다 마주하는 어떤 시련을 얘기할 때는 진실됨이 느껴져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
오와라이 전성기 시절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오도리 와카바야시. 특히 내가 젤로 귀여워했던 게닌 중 한 명이다.
와카바야시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게다가 살도 퉁퉁쪄서 귀여움이 묻어있는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약간 늙은 그 모습이 어딘가 짠하면서도 아직도 22년째 게닌으로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이 여전히 팬으로서 고마웠다.
오도리의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이 일에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고 질려버렸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도 울컥했으니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와카바야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그런 상태라고나할까. "(지금의 생활이) 좋지만 재미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 상태가 나도 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갔다.
너무너무 대단한 사람들인데,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두 사람의 진심 어린 교감에 감동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스트레스가 하나도 줄지 않았다"
호시노겐과 와카바야시가 한 줄 일기를 공유하면서 고민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1화 서두부터 정말 꽂히는 감이 장난이 없다.
과거의 어두운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날선 태도로 부정적인 얘기만 하는 두 사람이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특히 와카바야시는 예전엔 열등감 하나로 개그 소재를 찾아왔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맹렬한 성찰도 한다.(반대로 아직도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야마짱은 어쩌라고ㅋㅋ)
1화 코엔지의 카페에서 아침까지 마에켄상에게 설교를 들었던 기억을 얘기하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와카짱은 오와라이가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무력화시켜주는 것이라 말한다.
나 역시 오와라이에 빠져지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현실을 무력화시켜주는 웃음의 힘에 의지했던 것 같다.
3화쯤이었나, M-1을 본 감상을 이야기하면서 시대는 비에 예능(예술적 능력)을 차에 비유한 말도 절묘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거기에 그 사람의 예술적 능력이 우연히 비를 맞아 빛을 발한 것이라고.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뒤따라 오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줄기차게 자신의 예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감명 깊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전혀 스트레스가 줄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실타래가 풀려가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남에게 상처 주는 개그는 하고 싶지 않아요"
오도리 부도칸 라이브를 보면서 이게 오도리의 정점이자 끝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퐁코츠 카스가는 계속해서 비슷한 얼굴, 몸 개그 반복하며 인기를 얻었고, 와카짱은 시쿠지리 센세부터 조금씩 MC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오와라이 게닌들은 이런 루트로 가면 더 이상 새로운 네타로 구성된 무대를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실질적으로 콤비는 해산하기도 한다.
다시 <아치코치 오도리>로 오도리만의 색을 찾은 토크 방송을 시작했을 땐, 와카바야시가 정말 진심으로 재밌어서 웃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을 진실로 웃게 하는 코미디는 마음으로 전해져 심금을 울리니까 말이다.
카스가와 야마짱은 똑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와카바야시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반복되는 일에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테다.
그럼에도 모든 것에 지겨워졌음을 시인하게 되었을 때 와카짱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근심이 없는 밝은 얼굴이었다.
라디오 기획으로 랩을 해보자고 도전했던 일이 새로운 설렘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와카짱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지금 없다면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오도리 부도칸 라이브를 기획했던 때만큼 도전적인 일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고나 할까. 마지막 회에 이르러 산뜻하고 가벼워진 표정으로 드라이브를 하는 와카짱을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힘이 났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러 두 사람은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돌이켜 보며 미래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겠지만 여전히 자신은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개그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와카바야시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12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스트레스가 줄지 않은 채로 살아도 이렇게 흘러갈 수만 있다면 다행인 거라고.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는 과정 자체를 즐겨도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가 겹쳐있는 상태였는데, 솔직한 대화로 날 웃고 울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힘들겠지만 어쩌겠는가.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워야지.
'리뷰는 즐거워 > NETFLIX'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 (0) | 2021.03.28 |
---|---|
아라시의 다이어리(ARASHI's Diary -Voyage-) 3화-6화 (0) | 2020.04.25 |
멜로가 체질(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0) | 2020.04.12 |
라그나로크(Ragnarǫk) 시즌1 (0) | 2020.02.03 |
아라시의 다이어리(ARASHI's Diary -Voyage-) 1화-2화 (0) | 202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