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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즐거워/NETFLIX

멜로가 체질(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괜찮은 드라마를 한 편 보고나면 OST를 듣거나 명장면을 다시 돌려보며 꽤 오랫동안 곱씹는 편이다. 

우울한 3월을 이겨내보려고 <멜로가 체질>을 보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두 달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하다.

 

진입장벽은 정봉이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무렵, 꽤 호평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을 대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안재홍 배우 때문이었다.

<족구왕> 때부터 안재홍 배우를 아끼고 좋아했더랬지만, 나는 도저히 '멋진 로맨스의 주인공 모드'로 그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실제로 친근한 만섭이나 정봉이가 아닌 잘나가는 손감독 캐릭터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적응 기간만 이겨내면(!) 금세 흥미롭게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 어느새 정봉이 비쥬얼은 그냥 유머코드로 가볍게 웃고 넘기는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장면도 있다. 

정봉이가 어때서요? 외모 비하하지 마세요.

사실 이 드라마의 중심 이야기는 임진주(천우희), 이은정(전여빈), 황한주(한지은)  이 세 사람이 끌고 나간다. 그만큼 세 캐릭터가 확실하기도 하고 배우들 연기도 참 좋다.

남자 배우들 역시 많이 나오긴 하지만, 비중은 거의 곁다리 수준이다.(사실 안재홍 배우 역할도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실 공명 배우 때문에 끝까지 봤다. '잘생겨서 피곤하죠?'란 대사가 참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배우라서, 그저 공명만 나오면 헤벌쭉 기분이 좋아지는 게 사실이다.

결론은, 정봉이 생각말고 공명을 위해서 보세요! 심장에 이롭습니다:)

 

<극한직업>의 코미디와 <청춘시대> 느낌의 상큼발랄한 로맨스

맛깔나는 대사들이 많아서 익숙하다 싶었더니,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극본을 맡았단 걸 알게 됐다.

극 초반에 <극한직업>에서 써먹은 유머코드를 재활용하기도 하고, 실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드라마는 영화에서보다 작정하고 웃겨보겠다는 느낌이 적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웃음 터지는 장면이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들의 연기톤이 좀 자연스러워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제목부터가 일단 <멜로가 체질>이니 기본장르는 '로맨스물'이다. <청춘시대> 시리즈가 20대의 상큼발랄한 로맨스를 보여준다면, 이 드라마는 30대 여성의 우여곡절이 담긴 로맨스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던 임진주는 우연히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이 잘나가는 드라마 감독 손범수에게 낙점이 되고,  독특한 두 사람의 케미로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드라마를 완성시켜 나간다.(드라마 속의 드라마인 액자구성인 셈이다.)

여덟 살 난 아들을 홀로 키우며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황한주는 씩씩하고 생활력이 강한데. 자신을 웃겨보겠다고 다짜고짜 접근한 남자에게 반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에게 매몰차게 배반당한 경험이 있다. 멋모르고 순수해 보이지만 환경에 의해서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으로 돈방석에 오른 이은정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도움을 선뜻 건네 준 홍대와 사랑에 빠졌으나, 홍대가 불치병을 앓다 죽게 되자 극심한 우울을 겪게 된다. 은정의 가족인 효봉, 절친인 진주, 한주는 그녀가 혼자 외롭지 않도록 일부러 은정의 집에들어와 살게 된다. 

이은정 캐릭터 너무 멋있고 좋았다. 전여빈 배우의 담백한 말투와 표정에는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은정의 에피소드는 진짜 무겁게 가슴을 찍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힘겨운 일인데. 그 모든 과정을 천천히 기다려주면서 지켜보는 가족과 친구들이 애정이 눈물나게 감동적이었다.

누군가는 뼈를 잡고 울수도 있는 현실적인 에피소드들과 통통 튀는 대사들이 잘 어우러져서 공감이 참 잘 되었다. 서른이 되어도 언제든지 괜찮아 질거라는 용기를 주고,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주는 드라마다.

내가 뽑은 BEST 커플 1~3

1위는 당근 임작가X손감독 커플이다.

본격 도른자들의 만남이랄까. 첫 만남부터 고백신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불꽃이 팡팡 튄다. 

두 사람은 멜로 분위기도 좋았지만, 투닥거림 속에서 애정이 싹트는 게 참 귀여웠던 것 같다.

술을 진탕 먹고 아침에 같은 침대에서 깬 사실을 알았을 때, 어른인 척 쿨한 척 하다가 헤어지고 나서 미친듯이 도망치는 장면도 엄청 웃겼다.

둘이 한참을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 받다가 본격 진지하게 폼을 잡고서 작품을 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선 멈칫 놀라기도 했다.

나 말은 막 해도 일은 막 안 해요.
나는 택배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도 너무 너무 좋아하는데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해요.

딱 잘라 "안 해요"라고 말할 수 없게 상대방을 압도해 버리는 힘을 느껴버렸달까.

안재홍 배우는 응답하라1988에서도 그랬지만, 진심이 확 느껴지는 대사에서 엄청난 호소력을 보이는 것 같다.

천우희 배우의 저 눈빛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움♥

서로에게 끌리는 걸 분명 인지하면서도 참 느리게 썸을 타는데, 둘이 막상 잘 되고 나니까 너무 평범해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역시 연애는 썸이 재밌는 법이다)

2위는 한주X재훈 커플이다.

아쉽게도 이 커플은 이어지진 못했지만, 둘이 있을 때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서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공명이 연기한 '재훈'은 댕댕이 같이 귀여운 매력이 넘치는데, 여자친구랑 헤어지는거 빼곤 다 잘하는 능구렁이다.

이렇게 따스하고 친절한 눈빛을 보내면 자동으로 눈힐링되고.

겉으론 맹해 보이지만 술 안 취해도 손부터 일단 잡아보고, 거짓말로 상대방 맘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이지만 알고보면 연애 고단수랄까? 그래서 더 매력적ㅋㅋㅋㅋㅋ

두 사람의 설렘 넘치는 썸을 기대했건만. 재훈과 한주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서로에 대한 호감만 나눈다. 관계의 키를 가지고 있었던 재훈은 대놓고 바람을 피울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를 많이 사랑하면서도 재훈은 여자친구 앞에선 마치 다른 사람인 것 처럼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

권태기에 접어든지 한참이 된 듯한 커플. 하지만 헤어지진 못하는 이 줄타기에서 나는 참 여자친구가 많이 불쌍해 보였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신호를 보내도, 모른 척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둘은 결국 오랜 연애관계를 청산하기에 이른다.

결국엔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전체에서 봤을 땐 제일 답답한 고구마 커플이었지만, 어찌보면 제일 현실적인 커플의 모습이었다.

3위는 소민X민준 커플이다.

배우와 매니저의 불같은 사랑이야기인데ㅋㅋ 짧으면서 강한 로맨스였다.

고딩 때의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인터넷 소설 재질의 멜로임. 일진과 얼짱의 만남이랄까. "너 내꺼해라" 대사만 안 나왔지 그 전개를 빼다 박았다.

나는 처음부터 민준이 소민을 챙길 때부터 그 묘한 감정을 눈치채고서, 이게 사랑이라면 외사랑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소민 역시 민준을 좋아하고 있단 사실을 알았을 땐 격하게 반가웠다.

민준이 소민의 쌩얼을 보고 '너 존나 예뻐'하는 장면에서는 소리를 지를 수 밖에ㅋㅋㅋㅋㅋ

둘이 죽이 척척 맞고, 남부끄러운 대사도 잘 쳐낸다. 그래서 내가 좋아 하는듯^^

그래서,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결말 스포주의)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황급히 쓰는 결말 끝에서
빼 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면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 신인류, <작가미정> 중에서

결말 쯤에 이르러서는 무슨 짝짓기 열풍이 분 것처럼 우후죽순 커플들이 생겨나는 모습이 마뜩찮긴 했다.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드라마 속의 결말로 보여준 거지만 너무 다 하나같이 동화속 해피엔딩처럼 맺어져서 현실감이 없기도 했다.

이은정과 CF감독과의 관계는 열린 결말이었지만, 난 그저 이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드라마 제목처럼 그저 서른이 지나면 모두가 괜찮아질거라는 주문을 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