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개봉했을 무렵부터 끌리긴 했지만 막상 보기엔 망설여졌다. 여운이 오래갈 것 같은 영화는 심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였고, 덕분에 주말을 눈물 바람으로 보냈다.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이 제작했으며 원작 소설은 안나바오베이의 짧은 단편인데 4명의 여성 작가가 칠월과 안생 편으로 각각 나누어 각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 낸 것 같다.
이미 나는 주동우의 매력에 빠져버린 터라. 내 눈에는 칠월보다 안생의 삶이 좀더 안쓰럽고 짠했지만. 힘든 삶을 홀로 견뎌내는 건 어느 쪽이나 고통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 연애같은 깊은 우정 이야기
어떨 땐 칠월이 안생의 그림자였고 어떨 땐 안생이 칠월의 그림자였다.
칠월과 안생은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따라다니며 평생 떠나지 않는 그림자가 되기로 약속한다. 둘은 줄곧 대비되는 삶을 살면서도 늘 서로를 응원하는 버팀목이었다.
둘은 너무 좋아해서 미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는데. 칠월의 남자친구인 가명이 등장하면서부터 둘 사이가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가명과 안생은 모두 칠월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만났을 때부터 묘한 기운이 감돈다. 연적은 아니지만 칠월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어서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한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무렵부터 칠월은 두 사람의 그 묘한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칠월은 둘이 자신을 버릴까봐.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자신에게 남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하면 관계의 무게 중심에서 약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더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법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감정을 숨겨오던 칠월은 가명의 집에 얹혀살던 안생을 보자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칠월은 안생에게 온갖 비수를 꽂는 말을 쏟아내고, 안생 역시 지지 않고 마음 저편에 묻어 뒀던 말로 상처를 준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은 너다'라는 진심어린 말을 하는 장면에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가명은 칠월과 안생의 사이에서 큰 걸림돌과 같은 존재여서. 가명이 물러나자 자연스럽게 둘의 관계는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칠월과 안생의 고단한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게 함정이다.
- 너무나 슬픈 결말
여자는 어떤 길을 택하든 항상 힘들 거란다.
다만 우리 딸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
가명과의 파혼을 계기로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한 칠월에게 엄마가 해주는 말이다. 머물러 있는 삶이 아닌 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시점부터 어머니는 딸의 불안한 미래를 예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칠월은 <칠월과 안생>이라는 소설의 결말과 다르게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만다.
죽기 전 칠월은 안생을 찾아가 자신의 임신 사실과 그동안 자신이 억눌러온 감정을 다 털어 놓는다. 칠월과 안생은 고되고 힘든 인생길에서 서로 감싸 안아 주는 존재였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칠월의 죽음은 충격적이고 너무 안타까웠으며, 혼자 남은 안생이 그 고통을 떠안고서 살아간다는 결말은 정말 너무 슬프다.
안생은 칠월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던 사람이기에 행복한 결말로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소설을 썼던 게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등대를 바라보며 걷는 칠월의 모습이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만. 그래도 마음 한 켠이 쓰라렸다.
- 주동우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안녕, 나의 소울 메이트>를 보는 내내 예쁜 배우들이 울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주동우는 어느새 내 눈물 버튼이 되어버린 건지. 그녀가 울면 따라 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ㅠㅠ
칠월과 안생이 처음으로 이별하는 장면에서 주동우의 연기는 엄청나다. 처음엔 말못하고 망설이다가 가명의 목걸이를 실수로 보여주고 마는데. 결국 황망하게 칠월을 떠나보내고 열차 안에서 혼자 남은 안생은 참다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장면에서 감정의 방어선이 와르르 무너지고야 말았다.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고달픈 방랑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안생은 길 잃은 고양이처럼 칠월의 집앞에서 쭈그리고 있다가 칠월을 발견하곤 멋쩍게 웃어보이는데. 칠월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안생을 꼭 안아준다. 그 따뜻한 포옹이 그 어떤 말보다도 안생의 마음을 위로하는 거라 여겨졌다.
칠월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했을 때 곁에 남아준 것도 안생이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따뜻한 포옹으로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행운인 일일테다.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을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도 생각났고, 지금의 오래된 감사한 인연들도 생각이 많이 났다. 칠월도 안생도 모두가 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덧 이야기
주동우와 마사순은 이 작품으로 금마장 영화제 사상 최초로 공동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남다른 케미를 자랑하는 두 사람은 시상식에서도 귀엽게 뽀뽀를 나눴단다. 이와중에 넘나 예쁜 두사람ㅠㅠ 행복하세여ㅠㅠ
최근 심월이 드라마 버전 <칠월여안생>에서 활약했으나 반응이 뜨뜨미지근하여 맘이 좀 아프다. 하지만 월이 은제나 응원한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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