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
마음이 허전했던 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이 영화를 봤다. 정백연과 주동우가 나오는 슬픈 로맨스겠거니 별 기대는 없었는데. 다 보고 나서는 너무 먹먹해서 여운이 오래갔다.
아름다운 장면도 슬픈 대사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영화로서의 만듦새가 좋아서 오래 간직해 두고 싶은 영화다. 원작은 류뤄잉의 <춘절, 귀가>라는 소설인데 소설의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참고로 류뤄잉은 각본도 쓰고 감독도 맡았다)
- 뻔한 사랑 이야기. 그러나 와닿는 이야기
영화의 시작은 흑백이다. 과거에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우연히 비행기에서 마주치는데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 갑자기 화면이 컬러로 바뀌면서 그들의 과거를 역순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흑백과 컬러는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선명하게 대조하면서 흘러가는 감정의 변화도 함께 보여준다.
베이징에서 시작되는 젠칭과 샤오샤오의 로맨스는 <첨밀밀>과 거의 비슷하다. 어리숙해보이는 잘생긴 남주가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여주를 외로운 대도시에서 만나 어쩌다 관계를 나눈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샤오샤오 : 날 위해 그것 해 줄 수 있어? 하늘에서 뭐도 따고 진주도 캐준댔나?
젠칭 : 하늘에서 별을 따고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거지.
샤오샤오 : 안돼. 나 같은 여자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 없어.
젠칭의 찌질함이 아직 귀여웠던 시절. 젠칭에게 샤오샤오가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 아름답지만. 두 사람이 제일 힘들었던 시절이 칼라풀하게 담긴 것이 아련하고 슬펐다.
점점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에서 젠칭의 아버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샤오샤오는 젠칭과 사이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젠칭의 아버지 곁을 지키는데. 춘절 때마다 점점 쓸쓸한 표정으로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젠칭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샤오샤오를 그리워한다. 샤오샤오에게도 젠칭의 아버지가 특별한 존재였기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는 대목에선 두 사람의 이별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부모에겐 자식이 누구와 함께하든, 성공하든 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자식이 제 바람대로 잘 살면 그걸로 족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돼.
- 그럼에도 우린 왜 헤어졌을까
둘은 잠깐 행복했지만 여전히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젠칭은 남들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한다. 이쯤에선 영화 <너의 결혼식>의 남주가 생각 나기도 했다.
왜 이별이 다가오는 순간에 더 사랑한다는 말대신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졌다'는 궁색한 말을 하는 건지. 그런 핑계 가득한 고독한 방 안에 갇혀 있으면서 함께 시들어 가던 샤오샤오는 젠칭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를 떠난다.
다시 시간이 흘러 흑백의 세계에서 다시 만난 젠칭과 샤오샤오. 그 사이에 젠칭은 샤오샤오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게임을 만들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으며 번듯한 가정까지 이룬 상태다. 한 때 무척 그리워했던 샤오샤오를 만났지만 철없던 그 때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말았다.
<라라랜드>는 끝내 이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환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슬펐다면 <먼 훗날 우리>는 재회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던지는 대사들이 가슴에 콕콕 박혀서 너무나 슬펐다.
젠칭 : 그때 네가 안 떠났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달라졌을까?
샤오샤오 : 그때 네가 용기 내서 지하철에 탔다면 너랑 평생 함께 했을거야.
젠칭 : 그때 우리가 안 헤어졌다면?
샤오샤오 : 그래도 결국엔 헤어졌을걸.
젠칭 : 만약 그때 돈이 많아서 우리가 큰 소파가 있는 큰집에 살았다면?
샤오샤오 : 네가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겠지.
젠칭 : 이도 저도 안 따졌으면 결혼하지 않았을까?
샤오샤오 : 진작에 이혼했겠지.
젠칭 : 네가 끝까지 내 곁에서 견뎠다면?
샤오샤오 : 네가 성공 못 했을걸.
젠칭 : 애초에 베이징에 안 갔다면?
샤오샤오 : 네 바람대로 다 됐다면?
젠칭 : 결국 다 가졌겠지.
샤오샤오 : 서로만 빼고
이와중에 우리가 돈이 많았다면? 이란 말에 '네가 바람피웠겠지'라는 대사에 너무나 공감되고ㅋㅋ(젠칭이라면 반드시 바람을 피웠으리라ㅋㅋㅋ)
하지만 이미 지나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둘은 울면서 소리지르고 술병을 던지고 결국엔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단 사실을 받아 들이게 된다.
샤오샤오 : I miss you
젠칭 : 나도 너가 보고 싶었어
샤오샤오 : 내 말뜻은 내가 널 놓쳤다고
'내가 널 놓친거야'는 내 마음을 가장 건드렸던 대사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둘 다 오열하는데 진짜 소름돋음ㅠ
엄밀히 말하면 지하철에 오르지 못한건 젠칭인데. 왜 샤오샤오는 저렇게 말했을까.
황정은의 단편소설 <상류엔 맹금류> 에 나오는 대목 중에 비슷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따금 생각해볼 때가 있다. (중략)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그럴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에게.
분명히 제희를 떠난 건 '나'인데 '나'는 가끔 버려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 아마 샤오샤오도 그랬지 않았을까. 둘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시절이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사무쳐서 텅 빈 그 공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나면 천이쉰의 <我們> 이 흐르는데.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요즘 내내 듣고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두 사람이 컬러의 세계에서 따뜻하게 서로를 포옹하고서 끝이 난다. 사랑 끝에 이별이라는 단순한 플롯이라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저릿함을 느꼈다.
우리 둘다 잘 될거야.
그래.
주동우의 매력에 빠지다
주동우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된 배우다. <안녕, 나의 소울 메이트>영화(원제:칠월여안생)의 주연 배우로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만. 이렇게 연기도 잘하고 예쁜 배우인지 몰랐다. 늦덕은 웁니다ㅠㅠ
[리뷰/영화] - 안녕, 나의 소울 메이트(七月与安生)
<산사나무 아래에서>라는 영화로 일찍 데뷔해서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작품 활동을 했으며 연기상도 많이 탔다.
<먼 훗날 우리>에서 주동우는 시종일관 너무 예쁘다. 샤오샤오는 늘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인데 술을 벌컥 벌컥 마셔대다 호탕하게 웃거나, 요상한 가발을 쓰고서 풀죽어 하거나, 웃다가도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내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너무 사랑스럽다♥
주동우 머리 스탈이 너무 취향저격이라 최근에 짧은 단발을 시도해보았으나 역시나 아무나 어울리는 게 아녔다ㅠ
요즘 너무 현생에 치여 살았다만ㅠ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주동우 작품을 쭉 다 봐버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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