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동안 집을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쏘다녔다.
집과 돈이 없다는 건 구슬픈 일이다.
갑자기 난 발령소식이며 전세 대출 조건이며 급히 이사 날짜를 잡을 생각을 하니 막막할 뿐이었다. 앞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라서 빈손으로 구걸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 때완 다르게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고 내 신용으로 대출도 가능한 상황이고. 하물며 발령 지역에 친구 집이 있어 당분간은 거기서 지낼 수도 있었다.
내 상황이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도 근심과 걱정 가득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보내신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 때부터 살고 싶은 지역을 오랫동안 고심해서 골랐지만, 내겐 겨우 그 정도의 '선택의 자유'만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타워 팰리스에 살 자유가 있는 것처럼.)
발품을 팔아 급하게 나온 전세 매물을 찾고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해야 겨우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햇볕 드는 방에 입주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원래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벌써 주거난민으로 산 지 10년 째,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는 5년 째에 접어드는 지금에도 '대체 언제 나는 편히 집을 구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하늘에서 1억이 툭 하고 떨어졌음 좋겠다.
"요즘 1억으로 방 못구해요."
집주인은 해도 안드는 반지하 공사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건물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의 직업을 넌지시 자랑했다.(그래서 뭐 어쩌라구요)
어떤 부동산은 집을 안 살거라면 구경도 시켜주지 않겠다고 했다.
다들 조금씩, 미쳤군.
대출빚이든 뭐든 결국엔 내 돈내고 내가 살 집을 고르는 데도 이렇게까지 눈치보며 살아야하다니. 집을 보여주는 것도 선심 쓰는 척 하는 집주인과 중개인의 행태에 심술이 나기도 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살 집인데 안 보고 삽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맘이었지만 입만 삐죽댈 뿐이었다.
서울 쪽으로 갈수록 멋지고 힙한 1인이 살 것같은 공간들이 있었지만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아녔다.
풀옵션에 깨끗한 방들이었지만, 오피스텔은 왠지 모르게 임시 거처의 느낌이 나서 싫었다. 나는 집에 편히 오래 쉬는 것을 선호하니까.
다른 가족 구성원이 없는 나로서는 아파트세를 부담할 여력도 없어서 사실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을 찾아 빙빙 돌다가 겨우 학교 근처의 투룸 전세를 구했다. 혼자 살기엔 넉넉한 공간이고, 둘이 살아도 꽤 괜찮을 것 같은 집이었다.
문제는 늘 비용이었다. 방을 알아보고 이삿짐을 꾸리는데도 큰 돈이 들지만, 옵션이 없는 집에 처음 이사를 가는 것이라 더 걱정이 됐다.
대출금은 앞으로도 갚아나가야 하는 숙제이며, 내 조건이 우대될 수 있는 주택 공급 정책을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공무원이라 좋겠어요.
부모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은근히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아무 영양가 없는 말이지만, 집도 돈도 없는 내게는 그저 묘한 위화감을 줄 뿐이다. (그런 말 말고 전세금이나 수수료를 깎아주셔요)
민달팽이로서 집을 전전하는 일이 힘겨워 늘 이번이 종착점이길 바라지만, 앞으로 버텨야 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사도 이별도 이제 그만 겪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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