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스물에 만난 우리가 서른이 되어 지난 날을 회고하며 현재를 나눈다는 건 김광규의 시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저마다 다른 이유와 사정으로 흩어졌지만, 지난 날에 대한 미안함, 아쉬움 뭐라 딱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은 생각보다 빨리 정리 됐다.
- 내가 그 사람과 헤어졌단 소식을 가장 늦게 들은 ㅇㅁ언니는 활짝 웃으며 너무 잘됐다고 말해주었다. 환한 표정과 여전한 말투에 나는 마음이 놓이고 말았다.
- ㅁㅅ에게 네가 했던 말이 모두 상처는 아니라고,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고 용기내어 말했다. 자신감을 잃은 듯한 그에게 여전히 젊고 잘생겼다고 말해주었다.
- ㅇㅎ오빠는 내 목소리가 좋아서 나와 노래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오빠는 여전히 옛날 사람같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 ㅇㅇ에게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네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ㅇㅇ은 여전히 연초 담배를 피웠다. 그 사실이 나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묻지 못할 안부는 결국 묻지 못했고, 느슨하게 회복된 기억들을 소환하며 제 성격대로 제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상한 기분과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이 순간이 낯설고도 좋았다.
나는 뭐 그리 나쁘게 살지도 않았는데 곁에 남은 사람 하나 없을까. 억울하고 서러워했던 것도 금세 풀렸다.
다시 만난 사람들이 여전히 사랑스럽고, 미덥고, 좋았단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크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일까.
이대로 다시 못 만난다고 해도, 당분간은 버티는 힘이 되겠지.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 보여주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의 행복한 덕질 (0) | 2021.02.12 |
---|---|
민달팽이는 오늘도 뚠뚠 (0) | 2021.02.12 |
살이 뭐길래 (0) | 2020.09.06 |
빼앗긴 정신에도 유월은 오는가 (0) | 2020.06.07 |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이야기 (0) | 202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