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를 쉬어보겠다고 결심했다.
결심한지 한 일주일이 좀 되었나.(물론 아직 끝나지 않아서 보고 있는 것들은 3편 쯤 된다.)
내 유일한 취미를 포기한다는 것. 그건 그거대로 리스크가 엄청나서, 사실 얼마 안 가서 효과가 미미하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드라마 몰아보기를 잘 하는 나로서는 드라마 하나가 끝나면 여운이 남아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뭐든 하나 파면 깊게 파는 그 버릇 덕분이다.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이 되거나, 내가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을 땐 가끔은 좋아하는 것도 포기를 해야한다.
좋아하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다는 것은 비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 주지만, 절제 없이 누리는 무한의 행복은 있을리 만무하다.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중드 덕질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
이가인지명 본방을 끝낼 무렵부터였을까.
새 에피가 업데이트 되는 동안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시작했고, 그걸 시작으로 평균 6~7개 드라마를 동시에 시청하게 됐다.
새벽에 눈뜨자 마자 오전 6시부터 고장극을 봤고, 퇴근하고 잠들 때까지 도묘 시리즈를 팠고, 중간 중간 짧은 현대극을 번갈아 보면서 쉴틈없이 행복 회로를 가동하기 바빴다.
하나가 끝나면 쏜살같이 다음 작품 뭐 보지를 생각하기 바빴고, 한 드라마를 보는 중에도 다음 걸 볼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그 조급함이 나에게 독이 되었는지 드라마가 끝나갈수록 공허감과 스트레스가 더해갔다.
의천도룡기 2019 50부작을 끝낼 쯤 우울감을 심하게 느꼈다. 무기 역의 증순희와 양소 역의 임우신을 더 못 봐서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드라마에 몰입하고 또 빠져나오는 순간을 반복하면서 큰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퇴근 이후의 내 온 삶을 드라마에 쏟아 붓는 동안 나는 무엇을 얻고 잃었나.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사람들을 훨씬 적게 만났다. 특히 나와 관심사가 먼 친구들과는 부러 잘 만나지 않았다. 그냥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드라마를 보지 않을 땐 잠을 실컷 잤다. 이상하게 잠은 실컷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잠을 적게 자도 기운이 샘솟을 때가 있었는데 그 감각도 이제 흐릿해졌다.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다. 메모장에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정말이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드라마를 한 편을 보면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굳어졌다. 요즘은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더 심해지기도 했다.
최근 들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전에는 없던 곳에 뾰루지가 생기고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거나, 춥지 않아도 입을 꽉 다문 상태에서 잇몸에 힘이 들어간다.
대상포진이 또 언제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늘 도사리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심리적인 불안감이 본격화된 느낌이다. 그리고 그걸 몸이 가장 먼저 빠르게 눈치채고 있다.
-
보는 드라마 편수를 조금 줄였을 뿐인데,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전에 너무 많이 봐서 그런걸지도?)
아이치이나 weTV에 신작이 뜰 때마다 손가락이 드릉드릉하고, 마음이 저만치 가 있지만 조금은 더 참아 보려한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사실은 아무렇게나 글을 쓰고 싶었다. 내 결단과 사투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멋진 결말을 맺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 보여주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날을 맞아 불효한 이야기 (0) | 2021.06.04 |
---|---|
4월 16일 그리고 7주기 (0) | 2021.06.04 |
1월의 행복한 덕질 (0) | 2021.02.12 |
민달팽이는 오늘도 뚠뚠 (0) | 2021.02.12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0) | 202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