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는 즐거워/ドラマ(일드)

키자라 이즈미의 수박(すいか) 명대사

키자라 이즈미의 각본을 좋아한다. 최은영의 소설 제목처럼 '내게 무해한 사람'들만 잔뜩 나오기도 하고 좋은 시를 읽을 때처럼 매번 다른 대목에서 감정의 울림을 느낀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수박>을 본다.

답답함이 쌓이고 마음이 괴로울 때쯤 이 청정한 드라마를 보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어서다.

2003년 작품인데도 여전히 예쁜 배우들(쿙쿙과 토모사카 리에 짱이쁨♥ 역시 평범한 삶을 연기해도 배우는 배우인것)과 푸릇푸릇한 여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한동안 해피네스 산챠라는 휴양지에 머물다 온 느낌도 든다.

 

일드 특유의 교훈성이 가득한 드라마지만 인물들의 친절한 마음과 군더더기 없는 대사가 잔잔한 감동과 위로를 준다.

 

우정보다 돈을 택한 자신을 나무라는 하야카와. 그녀를 담담하게 위로하는 키즈나. 

우리는 운이 좋은 거야. 왜냐면 자기가 모자라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건 엄청난 행운이야.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더라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무심코 자신을 치장하면서도 그 순간에 내가 얼마나 하찮고 최악인지 발견하게 되면 되레 마음이 놓일 때가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키즈나가 하야카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토닥여 주는 느낌이었달까.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추억의 물건들을 묻어주는 교수  

안심하고 잊어버려. 내가 기억하고 있어줄 테니까.

갓 이별을 한 청년에게 교수는 모두가 잊고 싶은 기억을 어딘가에 묻으며 살아가는 거라고 가르쳐 준다. 이 장면을 보다가 좋아하던 선배가 졸업하던 때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안심하고 잊기 위해서 무덤이 만들어진 것처럼 졸업도 이전의 시간들과 이별하기 위한 의식과도 같다. 누군가의 졸업식에 나는 어떤 기억을 묻었던가.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병원 앞에서 하야카와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하는 하야카와의 엄마

그때 너를 안았더니 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그 전까지는 젖냄새가 났었어.
그런데 갑자기 사람 냄새가 나더니, 쓸쓸한 거야. 기쁘면서도 왠지 너무나 쓸쓸했어.

이 장면은 볼 때마다 울컥한다. 울엄마한테도 내가 자라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쓸쓸했을까 생각하면 더 먹먹해진다. 하야카와의 엄마는 제멋대로 집을 나가버린 하야카와를 원망하다가 퇴원 후에서야 비로소 하야카와의 독립을 인정하고 축하해준다. 뒤돌아 서면서 '부모란 참 시시하지'라는 말을 읊조리는 대목도 얼마나 슬펐는지ㅠ 

 

키즈나를 위해 휴가를 써서 삿포로에서 달려왔다고 말하자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키즈나

인간이란 생각보다 유연하다고나 할까, 얘기하면 알아준달까, 진심으로 말하면 전해진달까.
인간이란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게 아닐까요?

<노부타를 프로듀스>에서도 나오지만 '진심으로 말하면 전해진다'는 대사가 참 와닿는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선한 믿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힘을 가지게 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뚜렷한 확신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가끔은 진심마저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체념하며 살아가곤 한다. 

 

'20년 후에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막막함을 느낀 하야카와는 교수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이 일을 선택한 건 나 자신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망가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이며 살아갈 생각이야.
자기 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거야.

20년 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살고 있을 자신이 두렵다는 하야카와에게 교수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을 살면 된다'고 말한다. 내 인생의 행복의 조건을 내 자신에게서 찾는 게 중요하다는 말인 것 같다. 20년 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나 역시도 곤란하고 막막한 질문이다. 

 

가볍게 힐링하는 기분으로 다시 보길 시작했는데 마음을 쿡쿡 쑤시는 대사들이 많아서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요즘 나는 주변 사람들이 해로운 말을 하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다. 어느 정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에서 언PC한 발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난 언제나 눈을 감아버리는 쪽을 택했고 불편함과 실망감을 내가 떠안아 버리곤 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흐르는 것이어서 안전하지 못한 대화를 할 때마다 누적된 피로감이 방학이 되자마자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처럼 가까워지면 찔릴까봐 두렵고 또 영영 멀어질까 두려운 상태가 지속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 것이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면서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싫어서 이 모든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지내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리 없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점점 낮아지고 나 역시도 점점 가식적으로 그들을 대하니 불편한 관계만 늘어갈 것이다. 난 이미 이 과정을 숱하게도 겪어왔다. 

 

<수박>을 보고나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수하고 올곧은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턴가 잃어버리게 된 마음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꾸 사람들을 내 맘대로 판단하고 정의하게 된다. 더불어 사람들의 나쁜 점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비틀린 생각도 갖게 된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 점점 소모적이라 생각하면서도 기대하고 또 상처받기를 반복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결국 내가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놓치기 싫다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소신있게 말하고 나의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납득할 만한 인생을 보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외롭게 섬으로 머물러 있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