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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즐거워/영화

[영화관에서] 패왕별희, 소년시절의 너

코로롱 때문에 영화관을 가는 발길이 뚝 끊겼다. 언제 영화관에 갔었던가 생각해보면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니까.

보고싶었던 영화가 걸리면 영화관을 찾았다. 기간한정 포스터나 굿즈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제 이런 이유가 아니면 굳이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1.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霸王別姬, Farewell My Concubine)

장국영의 연기로 손꼽히는 명작이자 첸카이커 감독의 출세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장국영이 그리워지는 4월에 개봉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5월로 연기 되었다.

나는 아트나인에서 재개봉 기념 A3 포스터를 준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예쁜 포스터지만, 밤에 보긴 좀 무섭다)

이른 아침 공복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고 봤는데, 3시간 동안 온 장면을 집중해서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2번은 못 볼 것 같은 영화. 하지만 그만큼 여운도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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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초반부터 보기 힘든 장면이 많았다.

경극학교에서 경극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이 혹독하게 훈련을 받는 과정도 그렇고, 매일 가혹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경극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도 그랬다.

눈이 오는 날 강제로 손가락이 잘린 채로 경극학교에 내맡겨진 두지는 아프고 외롭고 슬픈 존재다. 스터우는 이런 두지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다. 둘은 함께 역경을 견디며 자라서 패왕과 우희의 역할을 연기하는 경극배우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배우로서 성장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장난꾸러기 반항아 샤오라이즈는 탕후루가 너무 먹고싶어 두지와 함께 경극학교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경극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다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두지는 돌아와서 죽을 정도로 매를 맞는다. 이것을 본 샤오라이즈는 탕후루를 모조리 먹고 자살을 택한다.

이후에 탕후루~ 하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샤오라이즈의 죽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서 가슴이 아팠다.

한편 두지는 경극 대사에서 '본래 계집아이로 태어나서'라는 대사를 계속 '본래 사내아이로 태어나서'로 바꾸어 말하는 바람에 어른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아마도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 대사라 스스로 거부하는 듯 했다)

경극배우로서의 데뷔를 앞둔 중요한 자리에서 또 실수를 반복하자 참다못한 스터우가 나서서 강제로 두지의 입을 쑤시며 제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두지가 피를 흘리며 대사를 완벽하게 읊는 장면은 정말ㅠㅠ 너무 참혹해서 보기 무서울 정도였다.

극을 제대로 마치고 나서 두지는 극단을 후원하는 장 대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한다.

두지가 자라서 장국영이 연기하는 '청데이'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이 슬픔과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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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를 볼 때도 그랬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적 흐름을 잘 알지 못하고서 영화를 보면 인물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영화의 상징적 장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경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부분도 많았고, 중국의 역사에서 경극이 어떤 식으로 이용되고, 억압받았는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굴곡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 왔고,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내던지는 선택을 해야했다. 

인민재판의 과정에서 '단 한번도 주샨을 사랑한 적 없다'고 외치던 단샬루가 나는 정말 역겹고 미웠지만, 억압적 권력 앞에서 개인은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가를 생각하면 그의 배반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도 이해가 갔다. 

보통화(만다린)를 구사하는 장국영의 영화를 처음 봐서 좀 낯설었다. 영화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홍콩 출신인 장국영도 언어를 익히는 데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장국영이 아니면 누가 과연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그는 완벽한 청데이였다.

특히 청데이가 원대인으로부터 받은 칼을 안고 인력거를 타는 장면은ㅠㅠ 어쩜 저렇게 슬픔이 잔뜩 묻어난 처연한 표정일 수 있지 싶고, 소름이 끼쳤다. 

장국영 외에도 주연 배우들, 아역들의 연기도 대단했다. 검색해 봤더니 두지 역할의 아역도 여전히 배우로 활동 중인 듯 하다. 

나는 주샨 역의 공리를 못 알아볼 뻔했다. 어떤 배우들은 역할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것처럼 보여서 참 신기할 노릇이다.

첸카이커 감독은 진비우의 아버지이자, 이미 영화계에서 유명한 거장이다. 지금은 <패왕별희> 같은 영화를 찍지 않고 있지만 얼마나 대단한 집념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문난 명작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퇴색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패왕별희>는 지금 봐도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 상당하다. 

영화 속 수 많은 장면들이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감정과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장대한 비극 서사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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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청데이가 죽음을 선택하고 만 결말에서 장국영의 죽음이 떠올랐다.

많은 걸 누리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은 없었던 청데이의 삶처럼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쓸쓸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언젠가 장국영이 생각나는 날에 다시 그의 작품을 열어 봐야겠다.

 

2. 소년시절의 너(少年的你, Better Days)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감독한 증국상 감독의 최신작이다.

주동우의 연기를 큰 스크린으로 보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마침 우리나라에도 개봉일자가 확정되어 너무 기뻤다.

예고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의 분위기가 묻어나길래 검색해봤더니 원작소설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표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표절 시비 작품은 백야행 외에 다른 작품들도 거론된 듯)

내면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함께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는 내용이 비슷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나 주제 의식은 다르다. 게다가 내용 구성, 캐릭터, 대사 이런 것들이 <백야행>에 비해 훨씬 밀도가 낮은 편이라 원작의 작품성은 비교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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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예매하는 바람에 앞줄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얼빡샷이 너무 많아서 올려다 보기가 참 힘들었다. (증감독님은 한결같이 배우들 얼굴을 섬세하게 확대하는 걸 좋아하는 듯)

주변 이웃들에게 사기꾼의 딸로 낙인 찍혀 살아가는 첸니엔은 입시공부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친구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투신 자살한 사건 이후 자신도 점점 궁지에 내몰리고 있음을 느낀다.

첸니엔은 길을 가다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샤오베이와 우연히 마주하게 되며 그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과 샤오베이는 음지와 양지같이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 보였지만, 기댈 곳이 없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첸니엔은 샤오베이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폭력의 주동자였던 웨이라이가 사고로 죽게 되면서 사건이 점점 심각해진다. 

샤오베이는 첸니엔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죄까지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는 걸 택하지만, 정 형사의 의심과 집요한 수사로 인해 둘 사이의 비밀이 밝혀진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첸니엔이 대입 시험만을 위해 모든 감정을 참고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정 형사의 거짓말에 농락 당했을 때 소리 지르는 걸 제외하고 첸니엔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눈물만 뚝뚝 흘릴 뿐, 바르르 떨면서도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낸다. 차라리 악이라도 질렀다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고.

갖은 괴롭힘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유일한 희망인 시험 공부를 놓지 못하는 그 상황도 안타깝고, 어떤 어른도 이 상황에서 헤쳐나올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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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우와 이양천새의 연기와 케미 모두 좋았지만, 나는 샤오베이가 갑자기 첸니엔에게 사랑고백하는 장면에서 멈칫 놀랐다. 

둘이 감정적인 교류가 있긴 했지만 언제 그런 분위기까지 간 것인가.(띠용)

껄렁껄렁한 샤오베이가 갑자기 진지하게 연정을 품고 다가가더니 마지막은 무슨 애틋한 사랑 이야기처럼 끝나고 말았다. 이미 사건이 벌어진 시점부터 해피엔딩은 무리수였는데 이렇게 성급하게 마무리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심각하지 않은가.

게다가 마지막의 선전 문구들은 앞부분의 서사를 깡그리 없애고 공익광고처럼 만들어버렸다.

학교폭력 문제가 하루 아침에 뿅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문제도 아닌데, 뭔가 교육 정책의 실패처럼 느껴져서 그런건가 책임을 자꾸 지우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입시지옥은 괴물을 낳는다. 서로를 끊임없이 착취하고 경쟁하는 이 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어렵다. 

비오는 시험 날 우산들이 열지어 있는 모습이나, 다같이 나란히 출발선에 섰다 시험장으로 뛰어 가는 장면은 중국의 입시지옥의 현실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고 있다. 

정 형사가 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지만, 아이들을 범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근본적인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은 얼마든지 다시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약하지만 강한 첸니엔이 더 이상 힘든 길을 가지 않기를,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들도 다 씻어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