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수 좋은 날의 하루
어느덧 개학 2주차. 더위도 가셨겠다 이번 주도 뭐 평소처럼 잘 흘러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운수가 더럽게 나빴던 하루가 시작됐다.
주말 내내 몸이 무겁고 피곤했는데, 출근하고서 화장실에 갔더니 생리가 시작되었다. 혹시나 해서 챙겼던 생리대로 급히 처리를 하고서 나오는 길에 뭔가 또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오잉? 바지가 찢어졌었네?
언제부턴진 모르겠지만 바지 사타구니 안쪽이 처참히 찢어져 있었고(작은 구멍도 아님), 생리고 뭐고 이대로 두다간 빤쮸랑 내 살이 다 비치게 생겼더라.
너무 남사스러워서 옆자리 샘에게 '혹시 제 흉한 모습이 보이시냐' 물어봤더니 다행히 잘 보이는 포인트는 아녔고, 엉거주춤 걸으면 대충 가릴 순 있었다.
그렇게 오전 수업을 엉거주춤 포즈로 마무리한 후에 오후 수업이 없었던 나는 외출을 쓰고 집에 갔다.
집에 가기 전 우리 아파트 주변 구역이 봉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이지. 반신반의하며 택시를 잡아 탔다.
아침에는 멀쩡했던 같은 아파트 옆 구역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고, 앰뷸런스며 큰 버스가 오가고, 그 근처 큰 마트 건물도 다 봉쇄되고 난리였다. 확진자가 대체 얼마나 나왔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싶었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배달 기사님들이 오가고 입구도 다 열려있고, 비교적 평화로웠다.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길래 생리통 약을 챙겨 먹고, 바지도 갈아 입고서 집을 나서는데 미리 잡아뒀던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로 하는 말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서 계속 '팅부동'이라고 하니 일단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너 지금 봉쇄된 구역에서 나오는거냐? 여기 코로나 때문에 봉쇄 되었는데 어떻게 나왔냐?"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님은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것 저것 질문을 쏟아냈다.
기사는 내가 사는 곳이 봉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몇 번을 확인한 후에 출발을 했다.
아니 시발 어디서 택시를 잡든 내 맘이고, 어디든 간에 여기서 승객 태우고 싶지 않으면 콜을 안 받으면 됐을텐데. 다짜고짜 나를 몰아세우는 그 기사의 태도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론 중국 사람들이 가지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외국인인 나도 이런 환경이 낯설기만 한데, 그들도 언젠가 자신에게 닥쳐올 수난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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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우리 아파트 옆 동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아파트 입구를 못 나가게 철벽을 두르고 확진자가 나온 동 사람들을 모두 방호복을 입혀서 어딘지 모를 격리시설로 이동시켰다.
나는 당연히 우리 아파트도 다 봉쇄될 줄 알고 하루 동안 마음을 졸였는데, 그 동만 봉쇄할 뿐 다른 동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운 나쁘게 우리 동에 확진자가 나왔다면 나도 방호복을 입고 컨테이너로 끌려갔으리라.
그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나고 공포스러웠다. 다른 곳으로 잠깐 도망을 갈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며 집에 있기로 했다.
도피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고, 또다른 불운이 닥쳐올까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뜻밖의 무기력
태풍의 영향인지 주말 내내 비도 오고 흐렸다. 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바깥으로 안 나돌게 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집에만 있으면 몸은 편했지만, 딱히 어디 가고 싶지도 않고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저녁에 가끔 산책 할 때면 다들 어디론가 떠나 버린 것처럼 황량해진 주변 풍경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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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드라마도 안 보고, 중연 소식에도 별 관심을 안 두게 된다.
달력에 증순희 난징 온다고 표시해 놓고, 그 날짜가 훌쩍 지나가버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한동안 왕허디 창란결 떡밥이 쏟아졌었다. 이번 드라마는 아이치이에서 엄청나게 밀어주는 것 같았다.
직방 보면서 디디를 직접 만난 팬들이 부러웠고, 오늘은 광한이 내한했는데도 가지 못하는 마음이 못내 서글프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리워 했던 마음들이 아주 오래 전의 추억같이 느껴졌다.
다음 주가 곧 추석이란 사실을 엊그제 알았다. 이렇게 외롭고 축축한 기분으로 추석을 맞고 싶지는 않다.
일주일 잘 버티고 다시 기운이 회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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