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에 중국에서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1명이라도 발생하면 그 지역을 봉쇄해버리는 정책 때문에 운이 나쁘면 여행지에서 못 돌아 오는 일이 생긴다.(최근에는 하이난이 그랬다. 비행기 못 타게하고 공항에 가둬버림)
지역마다 방역 정책도 조금씩 달라서 어떤 곳은 24시간 이내 핵산 검사 결과를 요구하고, 어떤 곳은 다른 지역에서 한 핵산 검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서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것이 한두 번이 아녔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여행에 대한 아쉬움과 더위 때문이다.
방학 직후까지 이어진 봉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시한부 인생처럼 여행을 다니진 않았을 거다.
컨디션 난조로 중간에 여행을 접고 돌아오는 참담함을 겪었을 때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처럼 여겨져서 하루 하루가 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 비행기에 몸을 싣고보자 싶었다. 다행히도 힐링 여행을 다니면서 몸이 점점 회복되었다. 지금은 파워 건강한 상태다.
그런데 내몽고와 하얼빈에서 서늘한 여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더위가 날 집어 삼켜먹을 것만 같고, 이대로는 아무 것도 못한 채로 개학을 맞을 것 같았다.(어차피 이런 상태로는 놀지도 일하지도 못한다)
때마침 나처럼 여행에 아쉬움이 있었던 샘의 제안으로 리장으로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다급하게 준비를 하느라 줌 약속도 다 취소하고 타오바오에서 시킨 등산화가 도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여행을 떠났다.
3일천하 리장여행
원래 이번 여름에 가고 싶었던 곳은 주로 서부지역(신장, 시안, 청두, 충칭)이었다. 한여름에 더운 지역만 골라서 가는 것이기도 했고, 공교롭게도 여행가려고 준비하던 때에 그쪽이 위험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곳은 운남성이었는데, 윈난은 여름에 시원하지만 하필이면 우기 때여서 여행 내내 비가 올 것이 염려됐다.
하는 수 없이 마음을 접었다가 방학 끝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리장만 알차게 다녀 오기로 했다.
리장만 해도 리장고성, 호도협, 샹그릴라, 옥룡설산 등 가볼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한국 여행사라서 소통하기 편했지만 갑작스럽게 달라지는 방역 정책 때문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24시간 핵산검사 증명이 없어서 샹그릴라의 송찬림사에도 못 들어갈 뻔했다.(하지만 화장실 찾는 척 뒷 출구를 발견하여 진입 성공. 중국은 은근 감시가 허술한 편이다.)
첫날 저녁에 리장 고성을 절반 쯤 구경하고, 둘째 날은 호도협 트래킹을 마치고 차마객잔에 갈 때까지는 그저 좋았다.
잠깐 흐리고 비가 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좋은 날씨였다. 트래킹을 마치고 여행 온 한국 분들과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대화의 주제가 여행 이야기로 흘러갈 즈음 나는 중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은 넓고 여행갈 만한 곳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제한이 많이 생겨서 정작 중국에 있어도 중국 여행을 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외노자인 나 역시 중국의 통제를 받지만 다른 분들은 회사 내부 규정 때문에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동안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내심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는데, 나 정도면 상당히 운이 좋았던 거였다.
방학이 길어서 길게 여행 다니기도 쉽고, 혼자라 특별히 문제 생길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불운이 우리에게 닥쳐왔다.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던 옥룡설산 트래킹이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핵산검사 결과가 있어도 관광지 어디도 못 가는 상황이 되어버린 탓에 여행사는 다급하게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옥룡설산에 가려고 준비했던 산소통, 털옷, 등산 지팡이 등이 쓸모가 없어졌다. 여행 때 사진 찍으려고 준비해온 옷들도 다 짐이 되었다.
어차피 여기서 더 머물러 봤자 최악의 경우 발이 묶일 수도 있으니 안전을 위해 빠른 귀가를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리장 여행은 삼일천하로 끝이 났다. 옥룡설산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사진에는 차마 담기지 않았던 산의 절경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봤던 게 꿈만 같았다.
아쉬운 대로 다음에 또 오면 되지만, 도망치듯 떠나오는 길에는 혁명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것만 같은 패배감과 슬픔에 젖어 있었다.
슬프다 내가 간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현재 위험 지역 리스트를 보면 눈에 밟히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여행을 다녀온 곳, 여행 가고 싶었던 곳 모두 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거의 중국의 전역(유명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해서)이 코로나 지뢰밭이 된 셈이나 다름 없다.
아직까지 내 신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슬아슬하게 잘 피해다닌 셈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고 시한부처럼 여행만 다니다간 온몸이 부서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번거롭고 귀찮고 힘들더라도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 좋다.
역설적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을 더 꿈꾸게 됐다. 갇혀 있을 땐 갑갑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여행을 할 때면 '아 이거면 됐다' 싶은 만족이 없었다.
다음엔 이런 걸 해야지, 이곳은 다시 꼭 가야지.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졌다.
이번 여름에는 호수, 바다, 초원, 산, 협곡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알차게 놀았다.
힘들었던 것도 금세 추억이 됐고 여행 때마다 행복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우시의 더위에 적응하고서 출근을 해야겠지만, 또 연휴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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