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의 더위를 얕보지 말라
하얼빈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3일째. 우시의 덥고 습한 날씨에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어제는 실수로 거실 에어컨을 켠 상태로 잠이 들었는데, 집이 조금 싸늘해졌을 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별다른 변화를 못 느꼈다.
보일러 튼 것처럼 따뜻했던 바닥이 조금 상온으로 돌아온 정도였달까. 이틀 동안 에어컨 2대를 풀가동해도 이 정도니 이쯤되면 제습기까지 사야하나 싶다.
집도 집이지만 어젠 학교에 갔다가 8시간 동안 불가마 체험을 했다.(더위가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지 못할 정도)
일찍 출근해서 미뤄둔 일을 몽땅 해치우려고 했는데 날씨의 장벽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못했다. 핑계 같지만 진짜다.
그래도 출근하니 점심을 줘서 좋았다. 개학은 싫지만 급식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제대로 된 한식을 못 먹은지 정말 오래 됐기 때문이다.
원래 더위에 약했지만 8월의 우시의 날씨가 이렇게 극악무도할 줄은 몰랐기에 더 격렬하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먼에서 소소하게 덕질하기
가볍게 놀러갔던 항저우에서 갑자기 더위 먹고 아픈 바람에 다시 집에 돌아온 이후로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낌새가 보이자 샤먼을 다녀왔다. 샤먼에 막 갔을 때만 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많이 먹지는 못했는데,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예쁜 구랑위의 풍경을 보는 것 자체로 그저 힐링이 됐다.
푸젠성에 있는 토루도 갔는데, 멀어서 운수요 한 군데밖에 못갔지만 <중계지극해청뢰>에 나왔던 그 비슷한 토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같이 갔던 샘이 토루에 있는 하찮은 우물까지 왜 찍냐고 했지만. "아니 그게 중계에서 이런 우물을 파서 뇌성을 찾아냈거든요" 같은 얘기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마지막 날은 혼자서 이가인지명 촬영 장소인 골목을 순회하는데 골목에 있던 작은 식당에서 뭔가 촬영하고 있는 걸 봤다.
모르는 배우들이었지만 조심스럽게 두리번 거리면서 구경했다.
마침 최근에 본 드라마들(개단, 변성니적나일천)이 죄다 샤먼에서 촬영했던 작품이었는데, 중국에서 촬영 현장을 보는 건 또 첨이라 설레는 기분이었다.
개단 촬영지는 꽤 찾기 쉬웠는데, 변성니적나일천 가로등 키스신 장소는 못 찾아서 아쉬웠다.
샤포웨이의 야경 구경을 끝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혼자서도 여행이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자연에 감사를♥ 내몽고 후룬베이얼
샤먼에 가기 전에 샘들이 8월 초에 내몽고 여행을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었다. 몸 상태가 회복되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선뜻 응답했지만, 그 때까지 괜찮아질지 몰라서 내심 걱정했다.
다행히 몸 상태는 여행을 갈 수 있는 정도가 됐고, 샤먼에서 돌아오자마자 여행 계획을 서둘러 짰다.
비행기는 직항이 없어서 경유하고 이동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첫날을 제외하고 우리의 주 목적지인 후룬베이얼은 이동 거리가 긴 편이라 차량 패키지를 예약했다.
외국인을 받아주지 않는 호텔이 있어서 숙소 예약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 까다로워진 핵산검사며 숙소 예약이며 이런 번거로운 절차들도 하다보니 익숙해지긴 했다.
매일 숙소가 바뀌어서 짐 싸기 좀 귀찮았던 걸 제외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었다. 후룬베이얼의 대초원과 어얼구나 습지의 풍경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대자연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이건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주변 샘들이 내 말을 듣고 웃어댔지만 정말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5일 동안 긴 여정을 함께 한 기사님도 정말 믿음직스럽고 좋았다. 뭘 물어볼 때마다 큰 소리로 '메이원티!'라고 말하던 기사님은 우리가 외국인이라 겪는 번거로운 문제들도 척척 해결해주셨고, 추천해준 식당도 죄다 맛있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내 짧은 중국어로 '씨에씨에' 정도밖에 못하는 것이 아쉬워서 평가서엔 영어로 '땡큐 소 머치'라고 써주었다. 뭐 그게 그거지만ㅋㅋㅋㅋㅋㅋ
그 분에게 다음 일정을 물으니 중국에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그 김에 겨울에는 샘들과 오로라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별 보러 간 내몽고 여행이었는데, 막상 별 볼 기회가 생겼을 땐 쿨쿨 자느라 별도 잘 못 봤다. 다음 여행 땐 보고 말테다.
시원한 하얼빈에서 다시 우시로
방학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경유지였던 하얼빈에서 이틀을 더 있기로 했다.
깔끔하고 좋은 호텔에서 휴식도 하고, 꿔바로우와 하얼빈 맥주를 먹으면서 잘 놀았더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태양도에 갔던 날 마침 하얼빈 맥주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도 붐비지 않고 조용하길래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중국도 코로나 때문에 행사 같은 것들이 많이 취소되고 있는데 그래도 이런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전날엔 스탈린 광장에서 무슨 음악 축제같은 거 했었음)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는데,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다.
공항 의자 옆 보조 테이블을 식탁삼아 컵라면을 먹기 시작한 어떤 아주머니 옆에서 나 혼자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고 코를 풀어댔다. 이럴 땐 여기가 중국이라는 사실이 좀 더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하이라얼 갈 때는 뱅기 안에서 심심해서 <차녀 힙합>을 다 읽었다. 정말 힙합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차녀의 살풀이를 읽는 것이 흥미진진했지만 진송님의 서러운 기억들이 공감되어 슬프기도 했다.
의외로 비행기나 공항에서 책이 잘 읽히는 걸 알았다. 또 책을 잔뜩 샀다. 방학 전에 냉큼 읽어 버려야지.
집에 돌아오고 나서부턴 <니시아적영요>를 봤다. 왓챠 계정을 한 자리 얻은 기념으로 시작했던 건데, 앞부분에 너무 게임 이야기가 많아서 잠깐 멈춘 상태였었다.
잠깐 보다 잠을 자려고 했는데, 차오징징과 연애를 시작하더니 돌변하는 FOX 양양 때문에 멈추질 못하고 밤을 새워버렸다.
위투는 항공 우주 연구원이 아니다. 차오징징과 연애 하려고 태어난 연애술사다.
상하이에서 재회하긴 했지만 고교 동창인 두 사람은 고향인 이씽에 돌아가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아닛 저번에 이씽 갔었는데 나는 이런 미남은 코빼기도 못 봤다구요. 왜 같은 하늘 아래 있는데 이렇게도 중(국미)남을 볼 기회가 적은가.
신세 한탄을 하면서 남은 방학은 또 어떻게 재밌게 보낼지 궁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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