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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2 중국생활

코로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 좋겠다

봉쇄가 해제된 날

방학을 시작한지 1주일이 조금 넘은 상태에서 아파트 봉쇄가 풀렸다.

봉쇄가 풀렸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직 다른 아파트는 부분 봉쇄 중이었고 우리 지역의 위험도가 한 단계 낮아졌을 뿐 완전한 해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폭죽을 터뜨리기에 무슨 큰 경사가 났나 싶었다. (중국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푹죽 터뜨리기를 참 좋아한다.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 부분)

여전히 무기력한 기분으로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주변의 인적이 드물었고, 집 앞 마트는 전쟁 난 것처럼 매대에 아무 것도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엔 소낙비가 내렸다. 밖에서 맞는 비는 상쾌하고 좋았다.

다음 날 근처에 연 카페가 있어서 그곳에서 오랜만에 샘들을 만났다. 봉쇄 기간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사람들의 안부를 물으니 봉쇄가 해제되자마자 다들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다고 했다.

다들 나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게 아니었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텅 비어버린 아파트 주변을 바라보니 더욱 마음이 외롭고 허무했다.

나만 혼자 여기 남겨진 기분.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익숙한 감정들과 기억이 스쳐갔다. 

봉쇄가 끝났는데도 난 왜 아직까지 무기력하며, 여기서 아무것도 못하고 버둥대고 있는 걸까. 

울컥 울컥 치미는 감정과 생각들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다. 

 

안 되겠다, 떠나자 지금, 당장

언니와 나는 급작스럽게 항저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지가 항저우가 된 이유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 위험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여행 가려고 해도 위험지역에 다녀온 행적이 남아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단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서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려고 했다.  

먼저 탈출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열심히 계획을 짜던 중에 우시가 위험지역에서 완전히 해제됐다.

이제서야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니. 굉장히 기쁜 소식이었지만 당장 내일 출발할 여행 생각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딜 가든 핵산검사 증명이 필요해서 근처에 있는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고 바리바리 짐을 챙겨서(최소 일주일 여행할 생각으로 짐을 쌌다) 열차를 탔다.

서호 부근에 외국인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을 검색해서 갔는데, 서호 근교 도심에는 관광온 사람들로 북적여서 아름다운 서호 풍경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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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긴 웨이팅 끝에 들어간 와이포지아 고기튀김은 항저우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을 만큼 맛있었고, 서호를 보며 먹는 루외루의 동파육은 감동적인 맛이었다. 

8월 초부터 817 도묘절(도미제)을 맞아 도묘 행사가 근처 백화점에서 진행되는데, 내가 갔던 때에는 게임 '원신'의 행사가 한창이었다. 코스프레 한 사람들과 행사로 인해 즐거워 보이는 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꽤 재미났다. 

여행 둘째 날 도굴 성지순례를 위해 루외루에서 식사 후 서령인사를 한 바퀴 돌고, 여기가 '오산거' 구나 생각하며 들뜬 기분으로 걸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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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낮의 찌는 더위는 피할 길이 없었다. 장저우 박물관을 다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몸에 적신호가 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간 태국 음식점에서 나 혼자 망고 샤베트를 먹었는데, 그걸 먹고 급체한 것 같았다.

발열과 구토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거의 밤을 샜는데, 그 다음 날도 설사가 계속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언니는 다른 곳으로 다시 여행을 떠났다.

 

간만에 찐휴식

집에 와서 약을 먹고 푹 쉬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건 아깝기 그지 없었지만, 모처럼 진짜 편안하게 쉬었다.

봉쇄 때도 어쩌면 나는 쉬는 게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매 끼니를 해 먹고 언제 봉쇄가 해제될까 기다리며 긴장과 불안이 지속됐다.

이젠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아프니까" 라는 명분이 오히려 위안을 줬달까.

어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저녁에 바깥을 잠깐 나갔는데, 바람이 적당히 불고 습한 날씨가 좋았다.

젖은 머리를 바람결에 말리며 '코로나가 세상에서 사라졌음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미 한국에서 '코로나 시국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격리와 봉쇄를 겪으며 또 다른 차원의 고통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 

상황은 다시 좋아졌지만 여행할 기력마저 잃어버린 상태에 이르렀다. 

미래에 대한 낙관이나 기대가 없을 땐 지금 당장 떠나는 게 정말 중요했다. 계속해서 실패와 좌절에 부딪치다 보니 그렇게 갈망했던 것들에 대한 의지도 많이 꺾여 버렸다. 

매일을 투쟁하며 살던 때에 비해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어제 점심으로 콩나물 국밥을 시켜 먹으면서 고잉 세븐틴을 보는데, "음 너무 행복한데.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다.

파랑새 이야기처럼 먼 곳에 무엇이 있다고 바라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방학은 좀 더 남았고, 모처럼 온 기회를 기력 회복을 위한 휴식으로 삼으려 한다.

다시 또 괜찮아지면 천천히 여행을 시작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