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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2 중국생활

잡생각 정리 좀 합쉬다

한가로운 주말에 외출을 하려고 했다가 날씨와 몸 상태 때문에 그만두기로 했다.

어젠 이씽시의 죽해(竹海)에 다녀왔다. 케이블카를 1시간 쯤 타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만 했는데 종아리와 무릎, 엉덩이 근육까지 모조리 욱신거려서 도무지 걸을 수가 없겠더라.(누가 보면 걸어서 등산한 줄 알겠다.)

동굴 탐험하러 지하에 기어 들어갔다가 땀범벅이 되어서 나오고 나서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난 체력이 달려서 도굴은 못하겠다.

몸이 이 지경이 된 걸 보면 슬슬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핑계 대면서 안 하고 있다.

누가 등 떠밀어줄 때까지 계속 버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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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엄마와 냉전 중이다. 

엄마는 갑자기 돈을 보내며 내 음력 생일을 축하한단 카톡을 보냈다. 그 무신경한 태도에 다시금 화가 났다. 

엄마한테 몇 번이나 연락하려고 했지만, 손이 안 가는 이유가 있었다. 여전히 괘씸하고, 기분이 나쁘다. 이 서운함이 이렇게 오래 가는 것도 화가 난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테니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자.

속으로 더 삭이면서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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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젠 아부지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아부지가 빚을 다 갚긴 했지만 여전히 둘 사이는 안 좋은 모양이다.

매번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로 끈질기게 싸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항상 괴로운 건 나였다. 정작 당사자는 금방 싸우고 겉으로 화해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니까. 

아부지는 자동 응답기처럼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젠 내가 결혼을 해야 마음 놓고 죽을 수 있겠다는 웬 노인네 같은 소리도 한다. 우리 할매 할배도 안 하던 그런 소리를.

예전 같았으면 욕을 한 바가지 했겠지만. 엄마도 마음 저 멀리 보내버린 내가 아부지까지는 그러고 싶진 않아서. 욕 대신 칼 같은 거절을 했다. 

사이 안 좋은 부부가 오래 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다만, 우리 집은 떨어져 지내면서 적당히 서로를 무시하며 사는 것이 그 비결이다.

우리 가족 중에 나만큼 가족의 일에 분노하고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면서 다 나에게 하소연만 한다.

사랑할수록 상처받는 관계에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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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도 끝났고, 수행평가도 마무리 되어가는 중이다.

지난 주엔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작은 아씨들> 영화를 봤다.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아이들이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가 됐다.

19세기 여성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다들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과 '엠마 왓슨'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만 하고, 영화의 내용에는 영 집중을 못 했다.(사실 이 영화의 미덕은 예쁜 배경과 화려한 배우의 얼굴에 있기도 하다.)

그래, 나도 티모테의 얼굴 많이 좋아해. 하지만 이건 아니지.

너무 집중도가 흐트러졌을 땐, 영화 보기를 중단했다.

나는 아이들의 감상 태도에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급기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영화가 재미없니? 굳이 시간 내서 왜 재미도 없는 영화를 봐야하니?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 아니니?

여지껏 교과서 속에 있는 어려운 작품들도 잘 읽어왔던 아이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 의문스럽기도 했고, 그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싸해진 분위기 때문에 내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눈치 빠른 국어부장이  '계속 영화 보게 해주세요'라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재미없는 소설 읽기 만큼 흥미롭지 않은 영화를 보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영화도 드라마도 문학 작품도 열렬히 사랑하는 내가 나름대로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고른 영화였는데, 아이들의 심드렁한 반응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 함께 영화를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자체가 줄어든 탓인가. 영화를 보는 방식도 매우 낯설어했다.

중간 중간에 내가 인물이나 플롯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때면 아이들은 '왜 그런걸 묻지?'하는 표정을 보였다.

볼 것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매체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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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름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학기말 업무들만 무사히 끝내면 즐거운 4주간의 여름 방학이 온다.

중국에서 처음 맞는 방학인 만큼 기대가 큰데, 놀 시간이 넉넉할 지는 모르겠다. 6월 말쯤이 되어야 여행 계획을 슬슬 짤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는 바람에 더위 먹기 십상이다. 방학이 오기 전 쓰러지지 않는 것이 목표다.

조금씩 힘에 부치는 일들도 방학이 오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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