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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4 중국생활

11월의 문화 생활

상하이에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상해에 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누려야지 의욕이 넘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맨날 학교 갔다 오면 널브러져 있는 게 일상이라 마음먹은 만큼 상해 곳곳을 놀러 다니진 못했다.

사실 상해는 대도시에 걸맞게 공연이나 전시를 즐기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비싼 공연이라도 일찌감치 싼 티켓을 얻으면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只此青绿

'즈츠칭뤼' 공연은 룸메샘이 보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함께 보러 다녀왔다.

중국의 명화로 알려진 '천리강산도'를 모티브로 한 무언극이다. 음악은 사극풍이나 움직임은 현대식 무용도 섞여있어서 퓨전 공연에 가깝다.

나는 이 작품이나 공연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 작가인 왕희맹으로 추정되는 남자 주인공이 예쁘게 춤추는 장면 외에 조금 지루한 장면은 졸면서 봤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무려 돌을 채석하고 나무를 깎아 벼루와 붓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을 춤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두 한데 모여서 그림처럼 보이는 장면은 확실히 웅장하고 멋졌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이 현대로 점프하더니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본 사람의 시선으로 감격하는 장면은 국뽕이 가득하여 보기 부담스러웠다.

언젠가 천리강산도의 실물을 나도 보고 싶어졌다만, 마지막 장면 때문에 아쉬움이 컸던 공연이었다.

공연장이 북와이탄 쪽에 있어서 끝나고 나서 그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며 둘러보기 좋았다.

 

레베카(REBECCA)

날씨가 적당히 선선하고 좋던 날, 공연 동아리 샘들과 레베카 공연을 보러 갔다.

한국에서도 레베카 공연을 본 적도 없었던 나는 전날 급히 흑백 영화버전의 레베카를 다운받아 보다가 결말 부분을 못 본채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독일어 원어 버전의 뮤지컬이라고 해서 진입장벽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줄거리를 알기만 하면 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어차피 영어나 중국어였다고 해도 100프로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니까.

공연장이 커서 3층 관객석은 무대와 많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노래가 더 잘 들리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동안 이 공연의 여운이 깊어서 수시로 '레베카~'하는 노래가 귓전에 울리곤 했다. 

12월에도 볼만한 공연이 있나 검색하던 차에 같은 공연장에서 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바로 예약했다. 이것도 프랑스어 원어 버전이라서 자세한 대사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노래를 들으려고 예약했는데 갑작스럽게 여행 일정이 생겨버렸다.

중국은 공연표가 취소환불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표를 날리기 아까워 보고 싶다는 사람에게 양도했더니 너무 재밌게 잘 봤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꼭 보고 싶다.

 

천관사복( 天官赐福 ) 전시

천관사복은 중국 유명 애니메이션으로 '마도조사'를 쓴 작가로 유명한 묵향동후의 소설이 원작이다.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묵향동후의 소설이나 다른 2차 작품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같이 가자는 제안에 궁금해서 한번 따라가 봤다.

전시는 4~5곳의 코스로 나눠져 있고 코스별로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부터, 모티브가 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화려한 전시로 가득하다.

마지막 코스 벽면에 방문자들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규모에 크게 놀랐다.

기념으로 천관사복 프레임에 맞춰 네 컷도 찍었다. 그림이 워낙 예쁘고 흥미가 생겨서 집에 가자마자 애니메이션 1화를 보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은 역시나 내 취향이 아니다. 진도가 너무 느려서 보기가 힘이 들었다. 룸메샘에게 다음에 소설 버전을 꼭 읽겠다고 다짐한 후 그 이후로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ㅎㅎ

내 장르는 아니었지만 중국 덕질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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