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2 중국생활

열려라 대행복시대여

동발끝 대행복시대 시작

동.발(동아리 발표회)이 끝이났다. 수학여행 다음으로 나에게는 큰 숙제같은 행사였어서,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크게 자리했다.

동발은 학교 축제라고 하기엔 규모가 애매했고,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는 바람에 목적이나 취지도 옅어졌다. 역시 보여주기식 행사는 질색이다.

나는 다만 우리 동아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거 다 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싶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만들고 행사를 진행하기엔 다소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 좋은 과정과 결과물이 있어서 더 뿌듯했던 것 같다.

내년에도 이 아이들과는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올해 두 번째로 기뻤던 순간

어제는 마지막 집세를 내는 날이었다.(중국은 월세라도 3개월치 집세를 한꺼번에 내는 형식의 계약을 한다. 근데 생각해보면 3개월치 월세를 내는 거면, 이미 월세가 아니지 않나.)

벌써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다니. 격리를 마치자마자 집에 들어왔을 땐 정말 남의 집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내 집 같아서 떠나기 싫어졌다.

광군제를 맞아 러그와 신발장, 트롤리 같은 작은 가구들을 구입할 무렵부터 이사는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짐이 불어난 만큼 이동이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집 주인이 허락을 해줘야 내가 1년 더 살 수 있고, 집 조건이 좋은 만큼 집세도 다른 집에 비해 월등히 비싸서 어느 정도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상하이에 사는 집 주인은 오랫동안 내 말에 답장이 없다가 집세를 줄여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주변 사람들에게 촐랑촐랑 자랑을 했다.

올해 두 번째로 기뻤던 순간이다. 첫 번째로 기뻤던 순간은 한국 가는 티켓 끊었을 때다. 

이제 무사히 겨울에 한국만 갔다 오면, 아무 것도 걱정할 일 없이 시간이 슝슝 갔으면 좋겠다.

 

양리핑의 공연 <공작>

이번 주는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었다. 원래도 추위에 약한 나는 핫팩을 한 박스 구매했다. 교무실에 1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손이 곱아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추워서 일을 하다말고 여휴에 가서 바닥 장판 켜고 드러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시의 더위가 내 인생 최대의 적이라 느꼈었는데, 이 동네는 추위도 고약하다. 비가 오고, 습하고, 추위가 뼛속까지 스민다.

어디 밖에 돌아다닐 날씨가 아니지만, 그래도 놀고 싶었다.

때마침 중국의 유명한 무용가 양리핑이 우시대극원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후 근처나 완샹청에 갈 때마다 옆에 화려하게 생긴 건물이 늘 궁금했는데 물어보니 극장이라고 했다. 우시 대극원은 건물 외관부터가 굉장히 크고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그곳을 지나가며 중국에서 멋진 공연 하나쯤은 보고 싶단 얘길 사람들이랑 했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긴 거였다.

저녁을 완샹청에서 먹고 곧바로 갔는데, 아직 30분이나 공연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학생 단체 관람객도 있었고 입구에선 먼링마와 씽청카 검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쑤저우에 다녀온 기록이 있어서 또 입구컷 당할까봐 마음을 졸였지만 일행의 도움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중국의 감시체계는 허술하고 미비하다. 핵산 검사만 제때 받아두기만하면 어디 못 들어갈 일은 없지만, 매번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일일히 사람의 확인으로 거쳐야 하는 게 고역이다.

공연장이 커서 1층에서 봐도 섬세한 움직임이 다 잘 보이진 않았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계속 시끄러워서 공연에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했다.

무용수들의 복장은 공작을 모티브로 해선지 아주 화려했고, 웅장하면서도 서글픈 배경 음악들이 연이어 나왔다.

공작들이 사랑을 나누다가 이별하고, 까마귀가 나와서 박력있고 화려한 춤을 보이다가, 마지막엔 헐벗은 몸의 공작새가 나온다. 좀 너무 많이 헐벗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음악과 몸이 하나가 된 것 같은 춤사위가 놀라웠다. 

중국의 무용 공연은 처음이었지만 이 공연은 서양의 현대무용과 너무 비슷해서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용도 그렇고 마치 백조의 호수 퓨전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끝 무렵에 양리핑이 등장했을 땐 사람들의 환호가 빗발쳤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에서 뛰는 건 정말 대단하긴 하다.

커튼콜이 생각보다 길었고,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공연이 끝이나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씻고 눕고 싶었다.

힘들어도 뭐든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내 성격이라서, 중국에서의 첫 공연 관람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디디는 연기파 배우가 아니라서 연극 공연에 오를 일은 없겠지만, 간혹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 연극을 할 때도 있다.(진비우도 최근에 연극을 했었다)

언젠가 최애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