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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2 중국생활

봉쇄와 탈출

중국에 온지 몇 주만에 질려버린 단어들이 있다.

봉쇄. 핵산검사. 쑤캉마. 씽청마. 그리고 "링시를 스캔하세요"

아주 지겹게도 들었다. 한국에서도 방역을 위해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된지 오래 되었지만, 중국에서는 유별난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이렇게 허술하면서도 막무가내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고? 처음엔 어이없다가, 답답하다가, 화가 많이 나기 시작했다.

상하이에 봉쇄된 한국인들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고 있단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미어졌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런 상황에 닥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포스럽기도 했다. 

'봉쇄'라는 단어 하나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도 함께 더해갔다.

우시도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마트를 제외한 가게도 문을 닫고, 대중교통까지 막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듯 보인다. 그럴리가 없는데도.

부분봉쇄로 인해 수 많은 인력들이 이곳저곳에 투입되고 있고,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 시간이 길어 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코로나 제로 방역'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중국에 맛있는 거 먹고 놀러 온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너무 슬프다.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봉쇄

며칠 전 선생님들과 퇴근 후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1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있길래, 옆 동에 사는 언니 집에 잡깐 들르기로 했다. 

평소와 다르게 아파트 현관 입구 쪽에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혀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이 방역복을 주섬주섬 갈아 입고 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그게 설마 우리 아파트일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만약 지금 당장 봉쇄하는 거라면 주민들한테 크게 방송으로 알리기라도 해야할 것이 아닌가. 

그런 상식적인 테두리 안에서 예측을 하며 '별 일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알아챘어야 했다. 중국은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5분 만에 아파트 입구에 끈으로 된 바리케이트가 쳐졌고, 갑자기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봉쇄되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언니 집에 있던 쓰레기를 버려주려고 1층으로 내려 왔더니, 손 뻗으면 닿는 거리의 쓰레기통까지도 못 가게 했다. 나는 여기가 집이 아니라서 (바로 옆동인) 집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구름같이 1층에 몰려들었는데, 아무도 방역복을 입은 사람에게 항의하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뭔가가 한참 잘못되어 돌아가는 낌새였다.

주변에 사는 샘들과 동사무소 직원에게 급히 연락해서 알아보니, 이 아파트에서 확진자의 2차 밀접접촉자가 발생하여 아파트 동 전체 핵산 검사 실시를 위해 동을 봉쇄한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남의 집에 잠깐 들렀다가 발이 묶여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봉쇄가 시작되면, 그 시점부터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나갈 수 없다. 그래서 한 지역이 봉쇄되면 그 지역에 들어갔던 택배기사도 나오지 못한다는 괴담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그런 처지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중요한 건 타이밍과 선택

봉쇄가 다음 날 풀릴지, 일주일, 한 달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거기에 머무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녔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 동태를 좀 지켜보다가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서 탈출을 감행했다.

아파트 아래 지하 주차장은 연결 통로 여러 곳으로 나 있어서, 다행히 막지 않은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탈출로를 따라 나오니 바깥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슨 쇼생크 탈출 찍는 것도 아니고ㅋㅋㅋ 리얼로 깜방을 탈출하는 기분으로 다급하게 빠져나온 것이다. 

주변 상황을 둘러보니, 딱 그 동만 봉쇄된 것이었다. 우리 집을 포함한 다른 곳은 멀쩡하게 아이들이 뛰어놀고, 배달기사들이 오가고 있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눈 뜨고 코베인 적이 있었나. 

집 앞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에 돌아와 순대국밥을 시켜먹었다.

아직 봉쇄가 풀린 것은 아니어서 마음이 놓이진 않았지만, 밥을 다 먹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왔다.

퇴근하고 커피나 한 잔하고 쉬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바람에 지쳐서 뻗어버렸다.

아파트 봉쇄는 다음 날 퇴근하니 풀려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보냈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아직도 서럽다.

영문도 모른 채 당했던 첫 봉쇄가 처음이자 끝이길. 시간이 지나 그저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