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는 끝이 없다
상하이 3일 + 우시 11일 격리가 끝났다. 남은 2주는 우시에서 또 다른 격리 호텔로 옮겨서 2차 격리를 해야한다.
이전 호텔이 쾌적하고 꽤나 맘에 들었어서 호텔을 다시 옮긴다는 것이 귀찮고, 싫은 일이었지만. 어쩌겠나.
벌써 세 번째 호텔로의 이동이라 짐 싸는 것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짐이 늘어있었다.
끙끙 대며 짐을 싸고서 오랜만에 바깥을 나간다고 생각하니 설렜다.
10일 만에 만난 동료 샘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폐차 직전의 버스(좌석에 구멍이 뚫려있고 천장에서 못이 덜그럭 거리며 떨어짐)를 타고 근처 이비스(ibis) 호텔에 도착했다.
앞서 출발한 사람들이 간 곳이기도 했고, 익히 들어본 적 있는 호텔이어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호텔 내부는 좁았지만 이 때까지 묵었던 숙소중에 가장 깨끗하고 호텔스러운 곳이었다. 외관도 호텔 같았다.
음식도 입맛에 맞았고, 무엇보다 매일 다양한 과일과 음료(콜라, 사이다, 홍차, 우유 등)가 제공된다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군것질 거리까지 생기니까 생활이 좀 윤택해 지는 것 같다.
오자마자 정리도 척척 하고 금방 필요한 세팅을 마쳤다. 호텔 격리의 달인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PMS 폭발의 밤
호텔 이동하기 직전에 변비가 왔었다. 아마 삼시 세 끼 정직하게 먹고 운동을 안해서 그런 듯하다. 다행히 이동하면서 조금 걸었더니 해결됐다.
개학 전날에는 왼쪽 다리 오금 부근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신경통 때문에 치료를 받았던 부위라 걱정이 많이 됐다. 첫날은 너무 아파서 무릎을 굽히지 못하다가 차츰 통증이 사라졌다.
격리 중에 다시 통증이 찾아올까봐 아직도 무섭고 두렵다.
개학 증후군이란 이런 것인가. 원격 수업을 준비하며 밤새 컴퓨터와 씨름하고, 인터넷이 잘 되지 않는 환경에 열불이 터졌다.
3월 개학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아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나를 대했고, 이게 텃세인가? 싶은 행동들도 보이곤 했다.
문제가 생기면 담임이 주먹구구식으로 '알아서' 해결하며, '협의'와' '소통'이 부재한 교육환경임을 실감했다.
차라리 내가 격리되지 않았다면 이런 이질감과 소외감을 덜 느꼈을 수도 있다.
어떤 점은 납득이나 수긍은 잘 안 되지만 내가 적응해야 할 환경이라는 것을 빠르게 받아 들이고서 다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격리 중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좁은 호텔 방 구석에서 아무도 나의 상황을 괘념치 않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우울함이 쌓여만 갔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밥을 먹을 힘조차도 없었다.
호르몬 때문인지 갈 수록 상태가 안 좋아졌다. 모든 상황이 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렇게 분노가 폭발하던 밤. 나를 그리워 하는 아이들의 연락과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받았다. 마침 나도 너희가 그리웠어. 우리 마음이 통했구나.
나를 기억해줬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워서 절로 눈물이 났다.
그래도 끝은 있으니까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 '달리기' 가사 中
2차 격리를 시작한 지 5일이 지났고,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벌써 입국한지도 19일이나 됐다니.(이제는 헷갈려서 날짜를 꼭 세어봐야 안다.) 패딩을 입고 출국했는데, 이제 봄이 찾아온 듯한 날씨다. 난방을 틀지 않아도 창문을 열면 선선한 정도랄까.
출소할 즈음에는 또 다른 날씨와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친구가 추천해 준 '원지의 하루'라는 여행 브이로그를 보고 있다. 원지 언니는 매일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여행을 씩씩하게 해 나간다. 나도 그렇게 이 시간들을 헤쳐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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