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중국 격리일기

중국 상해(상하이) 격리 3일차

공항에서 격리 호텔까지의 여정

원래 비행기에 오르면 바로 꼴까닥 잠드는 사람인데, 긴장해서 그런지 한숨도 못 잤다.

그런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1시간 반이라고 했지만, 더 빨리 도착한 것 같았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진짜 서울-부산 보다 가깝게 느껴질 거리감이다.

먼저 출발한 언니의 조언대로 앞좌석(네번째 줄)을 구매했다. 다행히 옆 좌석에 사람이 없어서 편했다.

공항에 시간 맞춰 도착해서 면세품을 찾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바로 탑승 시간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물을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 내 앞 좌석의 사람들은 물을 한 병씩 받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유독 그 물병에 눈길이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부터는 앞 사람 뒷통수만 졸졸 따라가며 하라는 대로 따라하니 강소성으로 향하는 버스 대기장소에 3등으로 도착했다. 

거의 마지막 지점이었던 버스 대기 장소

코로나 검사나 해관 절차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짐 찾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림) 자정 안에 푸동 공항을 나가겠지 싶었는데, 버스를 대기하고 이동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라 피곤함과 허기로 지친 나는 버스를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두 시간 정도 이동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짐을 내린 후 어두컴컴하고 이상한 창고 같은 시설 앞에 사람들을 줄 세웠다. 다짜고짜 큐알을 찍어 등록하고, 숙박비를 결제했다. 

나는 중국 말을 못알아 들어서 허둥댔지만, 동행한 선생님이 알아 듣고서 큰 도움을 주셨다.

그 때까지도 나는 그 건물이 바로 격리 호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다 무너져 가는 외관과 공사중인 것처럼 방치되어 있는 건물 자재들, 공포 체험을 해도 될 정도로 음습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격리'가 아니라 '수용'이 아닌가. 나 이대로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는 건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 방에 입실할 수 있었다.

이렇게도 험난한 여정이라니. 크게 얻어 맞은 듯한 충격으로 나는 새벽 5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01
첫날 바로 끓여먹은 컵라면

 

그럼에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 격리 호텔에 들어섰을 땐 좋지 못한 시설에 적잖이 실망했다.

침대 시트를 제외하고 깔끔해 보이는 구석이란 하나도 없었다. 오래된 먼지와 녹과 묵은 때들이 가득했고, 쿱쿱한 냄새가 났으며, 난방을 틀면 우르릉 쾅쾅 소리가 났다.

잠자리를 별로 가리지 않는 나도 소음과 냄새 때문에 이곳에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격리 3일 동안 첫날을 제외하고 나는 잘 먹고 잘 씻고 잘 잤다.

호텔 격리의 메리트는 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01234

 

다양한 중국의 아침, 점심, 저녁을 맛보는 재미에 빠져서 식사 시간이 되면 방문 앞을 서성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전과 오후에 1번씩 체온을 재러 오는데 오는 시간대의 대중이 없어 그냥 벨이 울리면 튀어나갔다. 급할 땐 마스크도 안 챙겨서 나가기도 했다. 그러고 중국인에게 한국말 함 (잠깐만요. 잠시만요. 아우 네 마스크 죄송)

분명 여기가 중국 상해임을 아는데도 하루 종일 친구들과 영상통화며 카카오톡을 하고 있으니 외롭지도 않았거니와 중국에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도 가끔은 잊어버리곤 했다.

아마 바깥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상황이라서 더 실감이 안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접속할 땐 VPN이 필수이며, 창 밖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고, 원소절(元宵節, 중국 대보름) 밤 늦은 시간까지 폭죽이 터질 땐 '아 여기 중국이었지'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물이 부족해서 물을 더 달라고 했더니 한 병에 2元으로 추가 결제하는 시스템이었다. 결제는 대부분 QR코드를 통해 이루어진다.

알리페이 투어패스로 미리 충전한 돈으로 결제하니 물이 도착했다.

아니 이건 우리 일룡이 광고한 농부산천 물이 아닌가! 사소한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즐기며 격리 생활은 순항중이다.

 

부자유한 삶과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하여

호텔 안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관리받고 있다보니 자유가 몹시 그립긴 하다.

다행히 나는 넓은 창이 있는 방으로 배정되어서 창 밖의 풍경을 볼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누리는 건 호텔 방 안에서의 제한된 자유지만 방 밖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노동하고 있음을 안다.

내가 격리되어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노동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옆 방 선생님은 아침이 한국식 진수성찬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밥투정을 하셨다. 격리 기간 동안 엄청나게 대접 받을 거라 생각하셨나 보다. 

삼시 세 끼 밥이 시간 맞춰 배달되어 오고, 쓰레기는 배출 즉시 소각되며, 코로나 검사를 비롯한 각종 방역을 담당하는 인력들이 격리 과정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나는 외국인이지만 중국 내에서 중위험 지역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도 격리를 하니까 전체적으로 소요되는 인력과 비용이 어마어마 할 것이다. 

중국에 오기 전, '중국에선 얼마나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지 한국인은 믿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실제로 겪으니 거대하고 정교한 이 시스템이 정말 놀라웠다.

스마트폰 결제에만 QR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동과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데도 QR코드가 쓰인다. 고로 QR코드가 없으면 어떤 심사도 통과하지 못한다. 

중국 휴대폰 번호도 필수다. 나는 아직 한국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행정실 직원분과 멘토 선생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불안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실감하고 있다.(물론 원래 혼자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나는 비록 건강한 30대의 몸으로 이곳에 와 있지만, 아픈 몸이나 장애가 있거나 남의 도움 없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매순간의 감각이겠구나. 

상해 격리가 끝나고 나서 옆 방 선생님이 난방 켜는 법을 몰라서 원래 중국 호텔은 원래 춥나보다 하고 3일 동안 냉골에서 주무셨다는 얘길 들었다.(시설은 별로였지만 이 호텔은 전혀 춥지 않은 호텔이었다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체념하고 주무셨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내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외지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미 외국 생활을 3년 넘게 하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너 정말 대단하다. 이런 걸 해내다니'라고 하니 다 지나고 나면 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