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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아주 솔직한 교단일기

재외 한국학교 도전기 -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마침 학교에서 교사로서의 의욕이 똑 떨어지는 시기였다.

일은 재미없고, 내맘대로 안 되는 것 투성이였다. 동료성이나 관계적인 기반이 없어 작은 일에도 힘이 들어갔고, 학교 밖 교사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일은 아직 버거웠다.

학교와 집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쉴 수 있는 때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자주 갑갑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날 던져 버리고 싶었다.

재외 한국학교 초빙 공고가 뜨자마자 친한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너무 가고 싶은데 혹시 샘도 같이 할래?

중덕은 그저 중국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었고 신이 났다. 주말 딱 이틀 간 고민 후 마음을 정리했다. 떠나자. 나는 떠나야 한다.

 

시작은 코로나와 번아웃으로부터

 

발령 초기부터 해외근무에 관심이 있었다. 중국이 목적지가 된건 최근 2년 동안 중국 드라마에 빠져 살면서 중국 여행을 간절히 꿈꿔왔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하늘길이 닫힌 지 2년 째, 내 일상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집 안에서는 고독했고, 집 밖에서는 불안했다. 학생도 나도 왜 학교를 다녀야하는지 의미를 점점 잃어갔다. 온전한 휴식이 필요한 시기에 나는 번아웃으로 죽어가고 있었기에 그저 살기 위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출근하기 너무 싫었던 어느 날, '대도시에서 막막한 심정으로 길을 잃어도 좋으니 여기가 홍콩이었으면 좋겠다.'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을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내 아픔이 표면화 되지 않은 상황을 안타까워 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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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위험하지만, 나는 중국행을 택했다. 사실 여기나 거기나 나한텐 화생방 같은 곳이긴 마찬가지였다.

이 곳에서는 '생존'을 걸고 매일을 싸워야 한다면, 거기서는 그런 굴레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거기서도 필사적으로 살게 될지 다른 여유를 배우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해외 학교의 특성상 기존의 관습적인 교육 환경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거기도 학바학일테지만)

문제는 내가 너무 외로움을 탄다는 것이었다. 타지에서 홀로 겪어야하는 서러움이나 장기 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혼자 가는 것은 너무 큰 과제였다. 외로워서 여행도 혼자  못가는 내가 과연?

 

용기와 추진력의 문제

고민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좋은 찬스가 되어주는 친구(쀼선생)가 손을 잡아줬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둘이서 협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과감하게 부추기는 쪽은 나였고, 디테일한 안목으로 목적지를 고르고 현실성에 기반한 계획을 세우는 건 쀼의 몫이었다. 매일같이 스터디하듯이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 우당탕탕 작전 회의를 했다.

준비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특별히 내세울 경력따위 없는 저경력 교사에게는 자기 소개서에 글 한 줄 쓰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시간이 빠듯했기에 정보의 소통 창구였던 인터넷 카페에서 필요한 것들을 검색해서 알아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책을 사서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알음알음 공부했다.

1차 합격 소식을 듣고 면접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는 엄마와 크게 싸웠다. 다른 이유로부터 촉발된 싸움이었지만 엄마는 나의 독단적인 중국행 결정에 크게 속상한 눈치였다. 나로서는 힘든 때에 기댈 곳이 없어 안팎으로 고난의 여정이었다.

면접은 임용 2차보다 못 봤다. 그 날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이랑 와인을 부어라 마셨다. 면접 D+1일까지는 그렇게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입시 발표 때만큼이나 긴장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합격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점점 강해졌다.

'불합 하더라도 좋은 경험으로 삼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라는 생각도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에 선뜻 용기내어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시기가 올테고, 어쩌면 기회조차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안이 최고치에 이르렀을 때 뜻밖의 합격 소식을 확인 했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용기 내어 도전하길 잘했다.

비로소 나 자신과의 끈질긴 싸움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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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합격하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많이 물어 보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코로나 때문에 지원자가 적어서 운이 따랐던 게 아닐까요' 밖의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정말 그렇다. 임용도 그렇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운에 달린 셈이다.)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간접적으로 듣다보면 해외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인생에 다시 없을 좋은 시간들이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직접 겪는 당사자인 '나'의 문제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설렘과 불안, 걱정, 기대 다 안고서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우고 싶다.

아무렇게나 펼쳐놓은 지도지만 앞으로의 여정이 재미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