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정 연수가 드디어 끝이 났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서 비대면 연수로 진행되었고, 또 절대평가로 전환되기도 해서 부담감이 덜하겠거니 예상했지만.
예상밖의 난관이 더 많았다.
학기 중 연수의 빡센 일정은 지독한 학기말 스트레스를 가뿐히 이겨버렸고, 의미 없는 토론 과제와 보고서 쓰기에 정신과 체력이 축나버렸다.
배터리가 꺼지기 직전, 충전을 위해 부산으로 갔다.
겨울과 봄에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 가서 제대로 쉬어보자! 하는 거였지만, 학기 중 연수만큼 바쁘게 채운 2주 간의 방학 중 연수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도 어차피 가져갈 것은 '호봉 승급'이라는 한줌의 이익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힘을 빼고 듣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유익한 강의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강의도 많았다.
방학 중 연수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 여러 제약 속에서도 빛나는 건 사람이고 그 빛을 가리는 건 관료주의다.
교육이 가능한 학교가 되기 위한 환경과 구조에 대한 관점을 배제하고서 교사의 열정에 기생하는 논리는 언제 들어도 불편하다.
융통성 없이 고집을 부리는 연구사와 수석교사들의 모습을 보며 이상한 관리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기를 변호할 말을 찾다가 "저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 알잖아요."라고 말할 땐 정말 답답했다.
그 와중에 목소리 높여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숨쉴 수 있었다.
- 선생님들은 규칙을 참 잘 지킨다.
정해진 시간에 고정된 자리에 앉아서 비대면 수업을 듣는 건 집중력이나 인내심 외에도 많은 것들을 요하는 힘든 작업이다.
나는 감독의 눈을 피해 적당히 딴짓도 하고 규칙도 종종 어겼지만, 내내 눈치를 보거나 걸리면 어떻게 변명하며 좋을까 고민하며 전전긍긍했다.(역시 쫄보)
원칙적으로 비경쟁 시스템인 연수였지만 엄격하게 서로를 감시하는 눈이 있어서 정신적인 피로감이 컸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뭔갈 배우겠다는 취지로 선택한 연수에서 나는 왜 이런 압박감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동시에 아이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원격 수업을 들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해졌다. 2학기에는 더 상냥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야지.
- 끝나고 나니 속이 시원하긴 했다.
마지막 날까지 끝난 게 별로 실감이 안 났지만, 속은 시원했다. 그 동안 나를 압박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소감을 말할 땐 진심을 거짓처럼 말했다.
바닷바람을 쏘이며 더 이상 내 자신을 속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벌써 개학이 코앞이고 코시국은 너무 시끄럽다. 계획된 고비를 넘겼으니, 2학기도 무사히 버텨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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