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엄마처럼 해주시길 원해요."
우리 반의 보호자가 나에게 한 말이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진 않지만 멀쩡히 엄마가 있고(이혼 가정), 게다가 자신이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보호자면서 이게 무슨 똥같은 소린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으면서 하소연만 늘어놓을 땐 그저 들어주는 게 내 직업이지 뭐 하면서 참고 넘겼다.
엊그제 학교에서 아이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그런 일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둥 어쩌구저쩌구. 아니 아이가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직접 말을 했는데도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시켰단 말입니까?
정작 지금의 상황이나 아이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 없다. 그러다 갑자기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잘 챙겨주셔서 어쩌구저쩌구 감사하다는 식의.
그 와중에 내 인성이나 외모 평가는 왜 자꾸 끼워 넣는건지. 악의가 없다는 건 알지만, 이런 식의 대화가 몇 번씩 반복되니 '내가 (젊은 여자라) 만만한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음부턴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것(급한 일 아니면 저녁 늦게 전화하지 마세요. 당일에 체험학습 써달라고 하지 마세요. 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를 제발 써주세요.)도 '죄송하다'는 말로 퉁치면서 계속 어겨대는 통에, 정말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절감했다.
아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였지.
무례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할 때부터 단호하게 끊어냈어야 했는데. 후회가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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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의 역할을 유독 강조하던 옛 교감의 말 때문인지, 나는 주술에 걸린 것처럼 4년 간 '담임'이란 이름 아래 나를 혹사시켜 왔다. 기본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육체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정신적 노예상태로 노동을 지속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담임 업무 강도는 배로 늘었다. 수시로 전화하며 아이들을 깨워야 했고, 나몰라라 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정말 미웠다. 진짜 내 역할은 어디까지인걸까 고심해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고통스러워도 담임의 일을 정말 잘 하고 싶어하는 내가 유난스럽다고도 생각했다. 눈 앞의 아이들에게 가장 큰 힘을 얻는 나로서는 그들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항상 절실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는 데 기본적으로 서툴고, 혼자서 척척 잘 하는 애들도 드물다. 그저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아이들이 눈 앞에 있고, 잘만 하면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그런 강렬한 마음에 이끌려 시간과 정성을 쏟다보면 어느새 힘을 다 소진하여 엉망진창인 채로 죽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번아웃이 왔을 즈음에야 '어쩌다 나는 이 지경까지 왔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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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에요." 딱 잘라 말하시던 앞반 선생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사람들은 무례한 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고. 부모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 뿐이라고. 자신도 그 말에 놀아나서 자기 마음을 돌보지 않은 적이 있노라고.
하지만 교사 마음은 아무도 다독여주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그런 길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담임이 엄마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나는 우습게도 여겨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러니까 내가 더 챙겨줘야하는 것 아닐까'하고 또 그런 경향성으로 무심코 아이를 걱정하게 됐다.
개소리인 걸 알면서도 그 결과가 어떤건지 불보듯 뻔한데도 마음에 제동장치가 걸리지 않았음을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이럴 때 역시 나는 저경력이구나. 베테랑은 다르구나. 새삼 알아차리곤 한다.
애초부터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 아니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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