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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보여주는 일기

결혼은 결말이 아니잖아

드라마나 영화 속 뻔한 엔딩처럼 '결혼은 결말이 아니다'.

정석의 로코를 사랑하지만, 현실 연애는 드라마가 아니니까.(물론 서사의 기본구조인 기승전결도 없다. 다 기억이 만들어낸 가짜일 뿐)

어느샌가 그게 내 안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는데. 느닷없이 친구가 나에게 하소연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결혼이 해피엔딩'이라는 공식을 굳건히 믿고 있었던 그 친구는 20대의 찬란한 순간을 함께했던 전남친의 결혼 소식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동네 창피해서 말은 못하겠는데(이 친구 현실감각이 살아있긴함), 너라면 내 심정을 알지 않겠냐며 연락했다는 TMI까지.

아니, 대체, 왜.. ??? 

처음엔 벙 쪘지만, 나와 연애기간도 비슷했고, 헤어진 시기도 비슷했어서 아무한테도 못 털어놓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을 내게 딱 늘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너 영화 '너의 결혼식' 찍니? 라고 일침하고 싶었지만ㅋㅋㅋㅋㅋㅋ 애써 친구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긴 시간 대화한 결과, 나는 친구와 근본적으로 연애관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1. 나도 전남친의 결혼소식을 들으면 100% 축하할 기분은 아니다.

솔직히 기분이 좀 찝찝하고 더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정말.

그가 과거에 아무리 잘 해줬어도 결혼할 마음은 없었으니까. 오래 사귀다 헤어진 직후엔 미안한 마음이 있었더랬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이별한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연애하면서 기뻤고, 행복했고, 힘들었다. 그 자체로 다 의미있고 충분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헤어지고 나서도 힘들었지만, 헤어진 걸 후회한 적은 없다. 그 땐 우리 사이에 지키고 싶은 게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알았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생각했을 때 좋았던 추억들은 추억일 뿐이다.(삼순이 명대사 같은 말이네 정말)

돌아갈 수 없어서 아름다운 추억이라면, 그냥 그대로 두는게 맞다. 

 

2. 글쎄, 결혼하면 더 행복해져?

그렇담 정말 배아픈 일이겠지만. 나는 결혼 제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지 않는다.(그래서 일찍이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애초에 부풀려진 환상에 나 하나 발 담근다고 해서 현실이 나아지거나 달라질 리는 없고.

더 좋은 연애에는 늘 관심을 가졌지만, 그 연애가 결혼이라는 보상을 가져다 줄거라고 기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결혼할 만큼 좋은 남자'도 세상에 없고,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날 거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들 30대가 되니, 이래저래 결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진심으로 축복하는 기분으로 갔지만, 지금은 그저 응원하는 기분으로 간다.

 

3. 돌아가고 싶었다면, 진즉에 돌아갔단다.

그와 이별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참 많다.

이별하지 않았다면 상처가 그대로 곪았을 것이다. 지금도 몇 년 간 방치되었던 내 상태를 회복하는 중이다.

연애도 결혼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고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시작도 시작일 뿐이고, 끝도 끝일 뿐이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되풀이라면 그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일까. 

만약 내가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 믿고 결혼을 인생의 돌파구로 삼았다면,  지금쯤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안락하고 불행한, 혹은 불안하고도 행복한 그런 생활을 지속해 나갔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의 메마른 사막같은 생활이 더 좋다. 그런 생활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

친구의 상태도 심경도 다 이해는 갔다. 그래서 웃펐던 건지도 모른다.

내 20대는 전부 너였는데, 돌이켜보니 각자 다른 상대와 살림을 차리게 된 현실이 환멸나고, 그 때가 그립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고.

내 인생을 드라마로 푼다면 결혼은 결말이 아니지만, 친구는 정석로코의 인생을 살고 싶었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이상적인 연애와 결혼을 꿈꾸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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