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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즐거워/お笑い

M-1 그랑프리(M-1グランプリ, 2019)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M-1 그랑프리.

킹 오브 콩트는 가볍게 콩트 보는 느낌으로 보는데 M-1은 보는 긴장감이 제법 다르다. 1등의 영예나 상금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올해의 극적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면서 두근두근 기대하게 된다. 나는 2년째 준우승만 했던 와규를 여전히 응원하기로 했다.

시묘후리묘조의 활약

작년 M-1의 화력은 거셌다. 시묘후리묘조(霜降り明星)가 우승을 거머쥔 뒤 여기저기 안 나오는 방송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시묘후리묘조는 보케와 츳코미의 조합이 너무나 훌륭한 콤비다. 소시나가 R-1 우승하면서 개인적인 포텐셜을 뽐내기도 했고, 세이야는 순발력도 좋고 센스도 좋다. 생각보다 보케의 종류도 다양한 편인 것 같다.

2018 M-1 우승자, 시묘후리묘조

시묘후리묘조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나홀로 오사카 여행갔을 때 갑작스런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돌아다니는 일정을 포기하고, 난바 그랜드 카게츠에서 만자이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굉장히 많은 팀들이 무대에 올랐었는데, 시묘후리묘조가 나와서 교가 네타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땐 스푼에 거꾸로 비친 오구리 슌이라는 별명을 지닌 소시나보다 재간둥이 세이야에게 눈길이 더 가긴 했다. (지금은 소시나를 더 애정함)

그땐 눈에 익은 와카테 정도였는데, 지금은 M-1을 통해 알려진 오와라이 7세대(라고 불려지고 있다) 대표주자라니. 놀랍고도 신기하다.

패자부활전 뚫고 올라온 와규

찬바람 속 패자부활전 경기를 치르는 와규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와규(和牛)는 패자부활전부터 시작했다. 오도리나 샌드위치맨처럼 극적인 반전으로 올라가려는 계산인 건가 싶어서 내심 기대도 했다.

패자부활전에 머무른 팀 중에는 욘센토신과 톰브라운이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다. 욘센토신(四千頭身)은 와카테 트리오 만자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서 기대했고. 톰브라운(トム・ブラウン)은 와카테는 아니지만 새로운 네타와 신선한 캐릭터를 보여줘서 좋았는데 두 팀 모두 올해는 아쉽게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패자부활 화면이 꺼지기 직전 매지컬 러블리(マヂカルラブリー)가 뭔가 보여주려고 추운날 옷을 찢으며 포효했으나, 에미짱은 기억도 못한다고 하고ㅠㅠ 넘나 짠했다.

와규는 언제나처럼 긴장하지 않고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미즈타 군과 카와니시 군 둘다 너무 귀엽고, MC의 후리에 여유롭게 받아치는 재치도 넘치고ㅠㅠ(이미 팬이라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음)

올해도 역시 카마이타치와 쌍벽을 이뤘는데 점수가 묘하게 짰던 이유는 뭘까. 좀 더 도전적인 네타라서 심사위원들에게 안 먹힌 걸까. 이번 네타는 여관 네타랑 비슷한데(끝으로 갈수록 감정이 올라와서 마지막에 터지고 마는거) 네타 수준이 절대 떨어진 건 아닌데 반응이 좀 차갑다고 느껴졌다.  

쿄진이 카와니시의 원래 츳코미보다 워드가 적었다는 의견을 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와규는 M-1에 너무 많이 나와서 깨야 할 고정관념이 생긴 듯 하다. 올해는 정말 우승을 바랐는데, 너무 너무 아쉽다.

와카테 콤비들 vs 카마이타치

올해는 3위 쟁탈전이 치열했다. M-1에서 아주 막강한 존재감을 지닌 '와규'나 '카마이타치'를 제외하고는 새로 올라온 팀들이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수준이 상향된 느낌이 든다.)

뉴욕(ニューヨーク)은 예상했던 것보다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칸사이에서 인기 있는 와카테 콤비로 예전에 콩트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왕년의 라이센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력은 라이센스에 못 미치고. 첫 순서라 아마 보케가 많이 긴장한 듯 보이기도 했는데, 네타가 끝나갈 무렵엔 긴장도 좀 풀린 듯 보였다. 츳코미 중에 'PV의 요네즈켄시냨ㅋㅋㅋ' 이거 의외로 웃겼다.

곳도탕에서 '역시 우승은 와규나 저희가 하지 않을까요?'라고 자신하던 카마이타치

카마이타치(かまいたち)의 결선 네타는 이미 TV에서 많이 본 네타였다. 그러나 베테랑답게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소화해 냈다. 여유롭게 흐름을 조정하는 것도 멋졌다.

카마이타치가 킹 오브 콩트에서 우승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콩트보다 만자이를 더 좋아한다. 만자이에선 보케인 야마우치의 사실적인 캐릭터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츳코미인 하마이에는 키가 184cm인지 몰랐다. 크다크다 했는데 그 정도로 클 줄은ㅋㅋㅋ 역시 팔다리가 길면 수트 잘 어울리는구나. 토크쇼에서 말은 좀 버벅대지만 하마이에의 그 서툰 모습이 귀여운 것 같다.

스에히로카리즈(すゑひろがりず)는 일본의 전통극 형태를 표방하여 현대적인 이야기를 하는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하지만 일본 전통극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뭔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멧세'는 대체 무슨 뜻입니까ㅠㅠㅠㅠ 박력있고 흥을 돋우는 재미는 알겠는데, 못 알아 들어서 고통이었다.

그래도 박자를 맞춰서 땅하고 북소리를 울리면 한 토막이 끝나는 구성이 참 깔끔했다. 연말 망년회에 보면 좋을 콩트 느낌이랄까. 쿄진이 모든 네타 다 봤는데 오늘이 최고였다는 말을 해줘서 감동이었다. 쿄진 시쇼 너무 호감이에여ㅠㅠ

카라시렌콘(からし蓮根)은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다 충실하게 웃긴데, 보케의 움직임이 좀 잡스럽고(흐물거리고 힘이 없음) 츳코미의 똑부러짐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화려한 움직임이 가장 돋보이긴 했는데, 솔직히 스에히로카리즈 엎을 줄은 몰랐다. 에미짱이 왜 그리 열렬하게 응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젊은 애들이라서 챙겨주고 싶은 걸까)

츳코미의 외모가 약간 게키단 히토리의 귀여운 버전 같다. 그의 포텐셜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술렁거렸지만 이게 최선이라는 쿄진의 의견이 설득력이 있었다.

미토리즈(見取り図)는 너무 아쉬웠다. 츳코미 목소리 갭이 웃겨서 인상적인 콤비였는데, 올핸 너무 긴장한 티가 많이 났다. 머리카락을 계속 넘기고, 입이 말라 계속 침을 삼키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손의 움직임이 너무 많아 불안해보인다는 하나와의 지적에 나도 동감했다. 네타의 완성도는 높았으나 오치가 없는게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다.

오즈월드(オズワルド)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고, '월드'라는 콤비명에 맞게 세계관이 돋보이는 콤비였다. 도쿄의 만자이 색깔이 강하며, 말을 침착하게 뱉어내는 느낌이 좋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네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색깔이 분명한 콤비가 나오는 게 좋은 것 같다.

다만 빵 터지는 부분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순번이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을 걸로 보인다. 5년째라곤 하지만 경력이 더 있어 보이기도 하고 재주가 많은 콤비인 것 같아 다음 번을 기대해도 좋겠다.

인디안스(インディアンス)보케의 캐릭터가 옷상스기루 죠시를 연기하는 게 너무 훌륭해서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생긴 건 펑크부부의 보케를 닮았는데 스타일은 쟈키야마랑 꼭 닮았다. '도큐핸즈'나' '스시잔마이' 대목에서는 야마짱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는 야마짱 하나로 충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의 대반전의 주역, 밀크보이와 페코파(스포주의)

올해 M-1의 주역은 밀크보이와 페코파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마이타치가 안정적인 점수로 결승전에 올랐다고는 하나, 사람들은 이미 알려진 콤비보다 떠오르는 새로운 콤비에게 점수를 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분위기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두 팀은 올해 M-1에서 처음 본 팀이기도 하고 신선하고, 재치있고, 실력있는 콤비라서 끝까지 다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근육맨과 깍두기 아저씨 컨셉의 밀크보이

밀크보이(ミルクボーイ)겉모습(완전옷상)이랑 다르게 되게 슈르한 느낌의 만자이를 한다는 것이 조금 웃겼다. 생각해보니 팀 이름도 슈르한 느낌이로군ㅋㅋㅋ

네타 도입부에서 항상 뭔갈 줍고 시작하는데, 이게 매번 네타 할때마다 달라지는 모양이다. 올해의 M-1 명대사는 바로 '콘-후레이크야 나이까' '호라 콘-후레이크토 치가우까'가 아닐까. 이 츳코미의 리듬 너무 좋아서 당장 따라하고 싶어진다.

보케가 뭔가 질문과 힌트를 던지면 츳코미가 추리해서 그걸 계속 틀려가는 과정이 마치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라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참 대단하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하나와의 '이런 네타 누구나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저렇게 재미있게 완성시키는 어렵다'는 말에 크게 동감한다. 

적당한 오치로 끝내지 않은 점도 좋았다. 완결성이 돋보이는 네타고 너무 가지고 싶은 네타였다. 결승에서도 '모나카'로 끝장내 버렸다. 결국 M-1 사상 최고득점(토리진 네타가 최고득점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을 올리고 그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처음 보는 사람도 이만큼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었으니, 이들의 우승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신선한 캐릭터와 츳코미로 깊은 인상을 남긴 페코파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페코파(ぺこぱ)가 더 오래 기억이 남는다. 마치 2008년의 M-1 결승전을 보는 느낌이랄까.(우승은 논스타일이 하고 결국 뜬 건 오도리ㅋㅋ)

마지막 순서였는데 결승까지 치고 올라와서 더 쾌감이 컸다.(물론 와규때문에 마음이 찢어졌지만ㅠㅠㅠㅠ) 

보케인 슈페이는 뭘 하는지 잘 모르겠는 두서없는 보케를 날리며, 보케보다 더 정신없어 보이는 비주얼인 쇼인지 타이유가 보케를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슈페이의 보케가 적당히 짜증날 무렵에 치고 들어와 중화시켜주는 느낌이다.

쇼인지의 츳코미는 정말 독특하고 기발하다. 연기톤 목소리와 이상한 f발음을 섞어서 아주 정직하고 소신있게 할 말은 다 한다.

할 수 없는 것은 요구하는 것은 그만 두자! 
휴식을 취하자! 일하는 방식을 바꾸자! 

이런 캠페인 문구같은 츳코미부터.

캐릭터 개그맨이 될 수밖에 없었어! 
아직도 망설이고 있어! 

'캐릭터 개그맨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츳코미까지. 츳코미의 성격은 무조건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다기 보단,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얼마든지 받아들이자는 박애주의에 가깝다.

보통 '적당히 해'가 마지막 오치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적당한 건 없다구'로 끝난다. 정말 확실한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맛짱은 노리츳코미를 새로운 버전으로 해석(노리츳코마나이 츳코미)했다고 평했는데 굉장히 새로운 시도라 여겨졌다.

밀크보이의 기세에 눌러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지만, 페코파를 알게 되어서 기뻤다. 최근의 샤베쿠리007에서 M-1 특집을 했는데, 여기서도 페코파가 많이 돋보이더라.(물론 슈페이의 어머니가 분량 다 뽑음) 지금 가장 핫한 팀으로 급부상 했으니 더 활발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킹 오브 콩트는 점점 실망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데, M-1은 레벨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점점 오와라이에 관심이 줄고 있긴 한데, 그래도 언제나 재밌는 걸 찾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부지런히 떡밥을 찾으러 다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