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한국으로 귀임했던 샘이 일찍 방학을 맞아 중국으로 놀러 왔다.
오랜만에 발령 동기 샘들과 다 같이 얼굴을 보기에 좋은 기회였다.
우리 학교는 아직 학기 중이라서 휴무일인 신정에만 함께 놀고 주말엔 같이 베이징을 가기로 했다.
분명 이렇게 약속을 정할 무렵에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해야 할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니 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숙소는 미리 해두었었지만 비행기는 전날 부랴부랴 예약했고, 막판에 너무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샘도 생겼다.
다들 마지막 중국 생활을 정리하는 큰 산을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중국에 온 샘들과 시간을 보낸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지난 3년 간 함께 울고 웃으며 중국 생활을 잘 버티게 해 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못내 아쉽다만.
지금껏 떠나보낸 사람들도 다들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다 보면 오히려 이별이 슬픈 일인 것 같지만은 않다.
나 역시 원래 예상했던 두 해를 넘어 지금껏 잘 지낸 걸 보면 어디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희망과 기대가 생겼다.
그저 가야 할 때가 되었을 뿐이고 계속 샘들과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니 괜찮을 거라 애써 맘을 다독였다.
숑디화와 궈궈먼의 만남
12월 31일에는 상해에서 카운트다운을 함께 하기 위해 오손도손 모였다.
저녁을 먹으며 근황을 나누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후난위시 과년연창회를 보며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다.
최애 왕허디의 새 앨범 타이틀곡이 나와서 가슴이 벌렁벌렁했고, 최근 성의에 입덕한 룸메샘과 즐겁게 무대를 감상했다.
어쩌다 보니 덕심을 불태우는 밤이 되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새해 첫날에는 불가리 호텔 루프탑 카페에서 비싼 커피와 전망을 즐겼다.
다들 상해 전경이 멋지다며 상해 살이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부동산 중개인과 통화하며 중개 수수료를 조정하기에 바빴다.
상해 살이가 낭만적일 때도 있지만, 사실 집값을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진다.
새해에도 부지런히 잘 놀아야지.
익스프레스로 유니버셜 도장 깨기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베이징은 15년 만이다.(뭐 이렇게 눈 깜짝할 시간이 십수 년이라니. 세월 무슨 일?)
베이징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베이징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기 위해서다.
개장 이후 줄곧 가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숙소도 유니버셜 근처로 묵었는데 내부시설이 깔끔하고 맥모닝을 아침으로 주고 이동 셔틀도 제공했다.
입장권은 얼리버드로 구매했지만, 익스프레스권을 어디까지 구입할 것인가에 대해 입장이 조금씩 달랐다.
언제 가도 사람이 많다는데 주말 인파도 생각해야 하고, 유니버셜은 디즈니와 다르게 어트랙션 위주라는 것을 감안하여 결국 가장 많은 놀이기구를 타는 익스프레스권으로 결제했다.
나는 얼마 전 아이들과 패스트트랙을 주제로 토론을 했던 것이 떠올라 석연찮았지만, 확실히 돈을 쓴 만큼 행복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시간과 체력을 아끼고 모든 어트랙션을 다 탔으며, 인파에 휩쓸려 기가 빨리지도 않았다.
역시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중국 생활은 그래서 쉽다.
나는 이미 LA에서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똑같은 어트랙션도 베이징이 조금 더 신식이라 좋았다.
제일 재밌었던 건 역시나 쿵푸팬더 존이다. 실내 공간이 기대보다 훨씬 잘 꾸며져 있고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판다는 좋아하지만 포의 능글맞은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몇 번을 캐릭터 굿즈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려놓았다.
막판에 미니언즈 팬미팅도 잠깐 구경했는데 역시나 귀여웠다.
베이징 훠궈와 카오야의 맛
저녁은 두 번째 숙소 근처로 넘어가서 쇼핑몰 안에 있는 베이징 훠궈 맛집을 찾았다.
예전에 베이징 놀러 갔던 샘이 훠궈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맹물 베이스에 훠궈를 해 먹는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늘 충칭식 마라 훠궈를 즐겨 먹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저런 걸 무슨 맛으로 먹지?
그런데 웬걸 베이징 훠궈는 정말 맛있었다.
1인식 신선로처럼 나와서 끓는 탕에 온갖 재료를 넣어먹는 것은 동일한데, 국물에 기름이 없으니 훨씬 깔끔하게 즐길 수 있고 재료의 맛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훠궈의 감칠맛은 소스에 있었다. 땅콩 베이스의 소스인 것은 비슷한데, 여기에 막 끓여 온 고추기름을 넣으면 진짜 진짜 맛있다.
신선한 고추기름의 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는 베이징 요리의 가장 유명한 카오야(일명 베이징덕) 맛집을 찾았다.
아침부터 캐리어를 싸고 나와서 오픈 시각에 갔는데, 아직 카오야가 준비되려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교통대 교수님 말로는 오리는 제일 값싼 재료지만 베이징 카오야만 독특한 조리방식을 지녀서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고오급 요리라고 했다.
우리는 본식 요리를 먹기 전 다양한 요리를 먼저 맛보면서 기다렸다.
맛집 명성에 맞게 모든 요리가 맛있었다.
특히 새우는 살이 통실하고 레몬 향과 치즈가 진짜 잘 어울렸고, 원래 중국에서 닭국물 요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국물 요리도 얼큰하고 맛있었다.
궁바오지딩같이 생긴 강정 요리는 달콤 시큼한 맛인데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다.
대망의 카오야가 나왔고 회를 뜨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요리사 분께서 부위별로 포를 뜨셨다.
여러 가지 소스에 맛을 보며 찍어 먹는데, 처음 먹었던 껍질 부위가 놀랍도록 맛있었다.
기름진 음식이라서 계속 먹다 보니 물리긴 했다.
이미 많은 음식을 전에 먹은 탓에 배불렀지만 그래도 맛있어서 끝까지 다 먹었다.
식당 분위기도 좋아서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고, 맛도 훌륭해서 좋았던 것 같다.
인력거 타고 후통 구경하기
짐은 가게에 맡겨두고서 산책 겸 십찰해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베이징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공기도 좋고 날씨도 너무 따뜻했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먼저 출발하는 샘들을 배웅하고서 공왕부로 갔다.
공왕부는 베이징의 화려한 궁궐을 축소해 놓은 듯한 왕가의 풍경을 볼 수 있는 5A 명승지다.
큰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청나라 때의 화려한 건물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공왕부 구경이 끝나고 할 것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다가 인력거꾼이 우리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다 큰 어른 세 명을 한 차에 태워서 적당한 가격에 후통을 한 바퀴 돌며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재밌을 것 같았지만 세 명이 한 차에 타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이지 싶었다.
일단 타보라고 해서 앉아보니 생각보다 세 명이서 안락하게 탈 수 있었다. 결국 그 상태로 출발을 승낙했다.
인력거꾼 아저씨는 옛날 베이징 집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줬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흥미롭게 들었다.
아저씨는 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점점 설명하는 호흡이 가빠져갔다. 막판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빨리 내리고 싶었다.
다시 입구 쪽 카페로 나와서 공항에서 먹을 떡을 샀다. 보기엔 맛있어 보였는데 지난번 난징동루 길에서 샀던 떡이 더 맛있었다.
새해 첫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알차게 놀아서 후회가 없는 그런 여행이었다.
다시 돌아갈 때쯤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실컷 잘 놀았으니 으쌰으쌰 힘을 더 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