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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보여주는 일기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 이규리, 특별한 일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살았다. 

둥근 척 하지만 실은 모난 구석이 많아서 결단코 끊어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못 이기는 탓이다. 그래, 그 땐 그게 최선이었다.

오랜 시간 수험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연락을 않고 지내도 마음으로 연결된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때때로 사무쳤지만 고독하진 않았다. 

나는 겨우 합격의 문턱을 넘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애쓰느라 바빴다. 시간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종종 떠오르곤 했다. 이별은 가슴을 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마음을 주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가까스로 안심하며 조금은 불편한 관계들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이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연민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에서 손을 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는 꼬리를 잡고 싶은 것인가. 꼬리라도 잡고 싶은 것인가. 

이제는 꼬리를 자르는 일도 지치고 힘겹다. 서른의 나는 더 가벼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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