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의 경사로를 걷는 것처럼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일주일 동안 출근을 했다. 청명절에 여행을 다녀오면 한 김 쉬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시간만 휘리릭 가버렸다.
시험이 끝나니 갑자기 4월이 후다닥 막을 내린 느낌이다.
3월엔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는데 시간이 내 맘보다 앞서 가도 여전히 일상에 지쳐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산다.
분명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새로운 도시로 건너왔건만 무엇이 나아졌고 나빠졌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매일 충칭의 경사로를 걷는 기분이다. 처음엔 완만해 보이는 길이었다가 갑자기 가파른 계단이 솟아났다가 한숨 돌릴 때쯤에는 우회해서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심한 순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에 발령 동기샘이 의원면직을 신청했다. 지역을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당장에 그만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혼자서는 더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동기샘들이 마음 쓰려했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일을 그만두는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무너무 속상했다.
나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오랫동안 이 문제를 숙제처럼 여겨왔다. 휴직을 하고,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기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만 했다.
사실 그만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만둘 용기가 없었던 것뿐이란 걸 깨닫게 됐다.
학교에서 나는 관성대로 살기도 하고, 적당히 얼버무리기도 하고,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고집대로 살고 있다. 지겹고, 지치고, 또 도망가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학교를 간다.
언젠가 나에게도 충분히 긴 휴식의 시간이 찾아 오기를 바라면서.
3박 4일 충칭여행
손꼽아 기다리던 4월의 첫 연휴인 청명절 연휴에는 충칭을 다녀왔다. 여행 계획을 짤 무렵에는 혼자였다가, 여행 가기 직전에 같이 갈 사람이 생겼다.
사실 충칭 여행을 다녀온 뒤로 사진 정리할 틈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슬립 노모어 공연 보러 갔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충칭 여행 사진들을 통째로 날릴 뻔했다.
꼬박 하루가 걸려 무사히 휴대폰은 되찾았지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여행 내내 비가 조금 내리고 흐리긴 했지만 그만큼 선선해서 좋았다.
충칭은 미남 샤오잔의 고향이기도 하고, <소년적니>의 촬영지이고 해서 관광지 외에도 가고 싶었던 장소가 많은 편이었다.
해방비 근처를 맴돌다가 절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커피를 주문하고서 운을 점쳤더니 언니와 내가 둘 다 가장 좋은 걸 뽑았다.
거기서 직접 쓴 '승의(勝意)'란 글씨 스티커를 휴대폰 뒤에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그 휴대폰을 잃어버리게 되다니 참 인생도 아이러니 하다.
충칭 소면은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맛있었고, 꼭 들러야 했던 충칭 임시정부는 알차게 구성된 전시실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외관이 매력적이었다.
알고 보니 임시정부 외에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에 전시관이 하나 더 있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지나치긴 아쉬워 사진을 하나 찍었다.
매일 반짝이는 야경과 훠궈를 즐기다가, 3일 차에는 근교의 무릉으로 넘어가 신묘한 카르스트 지형의 천생삼교와 용수협을 구경했다.
연휴다 보니 츠치커우 구전이나 홍애동, 리즈바 근처는 특정 시간대에 사람이 몰려서 도망 나오듯이 그곳을 빠져나오느라 바빴다.
'8D의 마법의 도시'라고 불리는 충칭은 길과 건물이 다 산지에 층층이 있어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입구를 찾아내고, 겨우 디디를 불러 차를 타곤 했다.
강수량이 적은 때라서 바닥을 드러낸 장강은 낮에 볼 땐 그저 그랬지만, 탁 트인 강뷰의 호텔에서 봤을 때 야경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
특히 '클라우드 아이'에 올라가서 본 야경은 360도로 전경이 펼쳐져 있어서 바람 불고 추웠지만 야경이 끝내줬다.
냥집사가 된다는 것
충칭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선물같이 냥이가 집에 도착해 있었다. 룸메샘이 한국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어떻게 하면 냥이와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다행히 금동이는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만나자마자 배를 까고 드러누워 자기를 만져달라고 했다. 만져주면 그르릉 소리를 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친구가 말해주길 그건 고양이에게는 정말 행복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개와 다르게 고양이는 부르면 들은 척도 안 한다.(그것이 내심 무척 서운하다) 내가 달려가서 안으면 쏙 하고 도망간다.
그러다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어느새 내 침대나 창가에 올라와서 눈인사를 한다. 정말 냥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셤기간에 일찍 마치고 집에 왔더니 얼굴 박치기를 계속하고 달려들더니 교직원 체육대회의 여파로 온데 군데 멍이 들었는데 아픈 곳만 골라서 꾹꾹 누르고 난리가 났다.
꾹꾹이의 아픔을 호소하며 냥이를 달래주다가 어쩔 줄 몰라하다가 갑자기 밥 나오는 소리에 후다닥 나를 버리고 달아났다.
아 배고파서 날 그렇게 못살게 군 거였구나. 나중에야 그 뜻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만. 가끔은 영문 없이 달려드는 때가 많아졌다.
오늘은 내 옆에서 곤히 잠든 냥이를 보며 낮잠에 들었다. 이 귀여운 생명체와 더 잘 지내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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