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유난히 학교가 지옥 같았다.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고, 도처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나도 노동 강도가 점점 세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에 누군가를 구해 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 공동체는 사람을 구하기보다 서로 빠트리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숨 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방학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고, 학교는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학기 때 악몽 같았던 일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됐다. 반복된 훈련 때문인지 어떤 심각한 상황이 되어도 이제는 긴장이 되지 않았다. 학교는 기울어 가는 배가 아니라 이미 침몰된 건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학교에선 표정을 잃은 사람처럼 지냈다.
내가 달라졌다는 걸 아이들이 가장 먼저 눈치챘다. 아이들은 자기들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예전엔 그저 2학기의 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내가 꾸준하게 공들인 성과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해도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며 내 훈육 방식을 넌지시 무시했다.
맞다. 나는 아이들을 공포감으로 제압할 생각이 없다. 아이들이 내 권력과 힘을 두려워하기보다 옳은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한 번도 그런 것을 배워본 적 없어서 내 방식을 더 어려워했다. 그냥 소리 지르고 혼내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해야 하느냐고. 불만도 많았다.
아이들은 심지어 내가 자기들을 때려주길 원했다. 교실에 매를 세워두자고. 문제 있는 학생들을 줄기차게 때리면 나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도 바라는 바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때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었다. 남을 줄기차게 비난하고 말로 때리고 가차 없이 비웃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한 질서보다 시끄러운 평화를 원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끈질기게 싸워야 했다. 어떤 때는 내가 졌고, 어떤 때는 내가 이겼다.
학기 초 상담할 땐 남의 잘못을 이르기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궤변이나 변명이 아닌 말로 자신의 행동을 술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지만, 열에 겨우 하나를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얻는 일이다.
내가 그렇게 하나하나 일구어낸 일에 대해 너무 쉽게 평가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적잖이 속이 상한다.
예전엔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곧잘 울었다. 좋아서, 안타까워서, 힘들어서, 슬퍼서. 그만큼 나는 주고 싶은 게 많았고, 받은 것도 많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시절에는 그랬다.
내가 일하는 기쁨을 잃어버린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
나를 무력화시키는 여러 가지 환경들 속에서 분투했지만, 손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날들이 있었다.
앞으로 교사로서 얼마나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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