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8월이 갔다.
개학 주간에는 방학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마음이 스르르 원래의 일상으로 생각보다 빨리 돌아갔다.
가끔 한약을 먹는 걸 잊어버렸고, 커피는 줄이지 못했다. 학교만 가면 잠이 쏟아졌고, 계속 목이 말랐고, 이따금 목이 아팠다.
개학 초기에 빨리 소진되고 싶지 않았는데, 역시나 체력이 달린다.
가고 싶지 않았던 출장을 갔다가 허기와 피로에 절어 돌아오는 길에 전화상담을 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잠에 들었지만 다음 날부터 혓바늘이 돋았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아파서 한국에 가시게 됐고, 남의 일이 아닌 내 일 같이 느껴지고 많이 속상했다.
주말에는 습하고 비가 오는 날씨였지만 가고 싶었던 예원을 구경했고, 생각했던 만큼 인파가 없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더 놀고 싶었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길래 일찌감치 집으로 왔다.
9월 4일에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진 못했다. 그저 추모하는 마음으로 검은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 불었는데 결국 속 깊은 얘긴 아무하고도 나누지 못했다.
한동안 우중충했던 하늘이 걷히고 나니 다시 한낮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에어컨을 틀면 추웠는데 이젠 더워서 땀이 뻘뻘 난다. 그래도 나름대로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평소에도 빈틈이 많은 내가 수업시간에 '아차 이걸 또 깜박했네. 요즘 건망증이 심해졌나봐' 했더니 예쁜 아이들이 내 기색을 살피며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선생님 무슨 피곤한 일 있으신 거 아니냐고, 아이들이 힘들게 하는 거 아니냐고.
전혀 그런 일 없다고 활짝 웃어 보였지만 뭔가 당황하고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며칠 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긴 했지만, 특별히 감추고 싶은 비밀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상태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니 뭔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기억력도 집중력도 나빠져서 사실 나조차도 좀처럼 내 상태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감이 방학 중에 제멋대로 연가 쓰지 말라고 했던 일로 기분이 바닥을 쳤던 날, 순간 너무 화나고 속상한 기분을 이기지 못한 채로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내 표정을 읽고서 구름같이 몰려와 위로해 주었던 날이 생각났다.
그게 첫학교를 떠나기 전 무렵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때의 기억은 멀어질수록 더 또렷해지는지 모르겠다.
하기 싫어 미루던 일들은 점점 마감 기한을 찾아 오고 하나가 끝이 나면 또 하나가 시작된다.
일을 할 땐 아무렇지 않다가도 집에 오면 시간과 힘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놀지 않으면 자주 빈털터리가 된 기분을 맛보겠지.
다시 힘을 내봐야겠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면서 기력을 회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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