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족 현지 투어
LA 자유여행의 재미가 떨어질 때쯤, 미리 신청해 두었던 8대 캐니언 투어일이 다가왔다.
미국 서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고, 기대도 그만큼 컸다.
새벽부터 짐을 싸서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LA에서 출발하는 투어 인원은 혼자 여행 온 여성분 1명과 노부부, 그리고 나까지 해서 딱 4명이었다.
라스베가스에서부터 3인 가족 한 팀과 여성 한 분이 추가로 합류해서 더 큰 차로 바꿔서 이동했다.
베테랑 가이드 분이 운전도 하면서 설명도 잘해주시고, 여러모로 꼼꼼히 챙겨주셔서 감사했다.(진짜 내가 만난 패키지 투어 가이드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친절하신 분이었다)
비수기 여행이라 거의 모든 여행지를 쾌적하게 돌아다녔고(자연스럽게 시간이 남아서 추가로 들른 곳도 많았다), 동행하는 분들도 다들 친절하고 좋은 분 들 이어서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나는 혼자라 걱정이 있었는데, 서로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카라반에서는 혼자 오신 다른 두 명과 함께 한 숙소에서 묵었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날씨도 늘 좋았고, 숙소도 쾌적했다.
이동이 많은 여행이라 중간 중간 식사는 거의 패스트푸드였지만, 카라반 숙소에 묵을 때는 삼겹살 바비큐와 김치, 라면 등을 가이드분이 직접 요리해 주셔서 호화로운 한식을 맛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풍경과 좋은 사람들과 섞여 지내면서 4일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1일차 - 라스베가스의 낮과 밤
LA에서 출발하는 투어지만, 1일차에는 라스베가스를 경유해서 하루 묵는 일정이었다.
원래 라스베가스를 혼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친구가 만류해서 결국은 LA로 행선지를 바꾸게 되었던 터라 이렇게 짧게라도 라스베가스에 들를 수 있어 좋았다.
LA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고 첫날 숙소와 일정은 내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친구의 걱정이나 예상과는 다르게 LA보다 라스베가스가 훨씬 안전하고 여행하기 쉬운 곳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 여러 쇼 등 볼거리 덕분에 오히려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기에 적합했다.
가이드 분 설명에 따르면 카지노 호텔이 제일 안전한 곳이며,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거리에서 술을 먹는 것이 금지된 행동인데 라스베가스는 합법일 정도로 치안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네바다 주로 이동하니 풍경이 확실히 달랐다.
라스베가스 환영 표지판 앞에는 웨딩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라스베가스는 혼인과 이혼 절차가 빠르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라스베가스 하면 당연 카지노지만, 숙소 체크인 후에 바로 공연을 보러 가야 해서 카지노를 하진 못했다.
대신 핫앤쥬시에서 맛있는 해산물을 먹고, 대충 유명한 호텔들을 구경한 후에 벨라지오 분수쇼를 봤다.
사실 나에게 라스베가스의 밤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친구들과 마카오 여행을 갔을 때의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규모가 좀 크고, 서양인들이 많고, 헐벗은 언니들이 더 많다는 점은 다르다)
MGM호텔에서 하는 KA쇼도 웅장함이나 스케일이 남달랐지만, 마카오에서 봤던 쇼와 크게 다른 인상을 주는 건 아니었다.
아울렛도 가고 쇼핑몰 구경도 하고 으리으리한 호텔 구경도 하며 하루 알차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하루 만에 라스베가스를 온전히 다 즐기진 못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출발해야하기도 해서 늦은 시간까지 더 놀지 못한 것도 아쉽긴 했다.
2일차 - 그랜드 캐니언
라스베가스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합류하여 투어팀과 함께 차를 타고 그랜드 캐니언이 있는 애리조나 주로 향했다.
중간에 루트66이라는 도로를 기념하는 마을에 들렀는데, 미국 서부 감성이 느껴지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첫 목적지인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했다.
그랜드 캐년의 광활함은 정말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눈으로는 더 먼 풍경까지 보였다. 중국의 높은 산에 오르면 이런 곳에서 호연지기를 펼쳐야겠구나 하는 느낌이라면, 미국의 대자연은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웅장함과 기개를 느낄 수 있다.
층층이 아름답게 펼쳐진 장관과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즐기면서 '여기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숙소로 이동하며 들른 나바호 브릿지와 마블 캐니언을 보며 유유자적함을 느끼고 파리아 캐니언에서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도 찍었다.
3일차 - 홀스슈 밴드, 모뉴먼트 밸리, 앤텔롭 캐니언
아침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할 무렵에 홀스슈 밴드에 도착했다.
그늘이 없고 대낮에 햇볕이 굉장히 뜨겁다 보니 오히려 아침 일찍 이동하는 편이 낫긴 하다.
산책을 마치고 나서는 모뉴먼트 밸리로 넘어가서 지프차 투어를 했다.
모래바람을 들이 마시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와 수건으로 필사적으로 눈코입을 막다 보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제대로 못 보긴 했다.
이곳에서 많은 서부극을 찍었다고 하는데, 작품을 보진 않았지만 풍경을 보기만 해도 연상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메리칸 원주민 자치 구역이라서 그분들이 만든 수공예품 같은 것들이 기념품샵에 많이 있었는데 가격이 무지 비쌌다.
모뉴먼트 밸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공간이라는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가장 기대했던 코스인 앤텔롭 캐니언은 입장 대기시간부터 길었다.
국립공원이 아니라 사설로 관리되는 곳이기도 하고 입장료도 비쌌다. 소지품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동영상 촬영도 할 수 없으며, 현지 동행 가이드가 필수다.
처음엔 뭐 이리 까다롭게 구는가 싶었는데, 모래 안쪽으로 펼쳐진 신비로운 풍경을 보고 난 후는 입이 떡 벌어졌다.
윈도우즈 배경화면에서 느끼는 장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햇볕에 반사되는 빛이 사진에 담기는 풍경도 너무 멋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글렌 캐니언 댐과 파웰 호수도 들렀다. 해질 무렵에 애리조나주를 떠날 땐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4일차 -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투어 일정이 끝나갈수록 아쉬움이 커져만 갔다. 매일 멋진 풍경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도 끝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랜드 캐니언이 사실상 투어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지막 코스였던 브라이스 캐니언과 자이언 캐니언도 너무 좋았다.
정들었던 사람들과도 하나씩 이별하고 라스베가스를 들렀다가 다시 LA로 향했다.
미국에서 다시 중국으로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했지만 다음날 피닉스에 가기 전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현지투어가 너무 나도 재밌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LA 도심 여행에 흥미를 잃어서 원래 가려고 했던 산타모니카 해변도 들르지 않고 바로 피닉스로 향했다.
다행히도 LA의 마지막 숙소에서는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LA 퀸타 호텔은 내가 묵은 호텔 중에 가장 싼 숙소였는데 공항과의 거리도 가깝고 가벼운 조식도 무료였다.
피닉스를 거쳐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여정은 갈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주변에 온통 중국인들이 가득해서, 벌써 중국에 도착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오고 보니, 새삼스럽게도 내가 아시안 한국인 여성이라는 걸 뚜렷하게 느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이방인의 심정을 늘 느끼곤 하지만, 섞여 살다 보면 사실 크게 다른 걸 못 느끼며 산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 덩치 큰 서양인들이 수두룩하고, 영어를 듣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내가 단어 하나를 발음할 때마다 보이는 리액션 같은 것들에 유난히 신경 쓰게 된다.
미국적인 것에 조금씩 적응을 다 하고 나면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처음엔 마음의 장벽이 두터워서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걱정과 다르게 인종차별 이슈도 없었고, 자유 여행과 한인 투어도 재밌게 끝냈다만, 여러모로 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늘 그렇듯 새로운 도전이 주는 시련과 뿌듯함은 여행의 동력이 되곤 한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또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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