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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3 중국생활

여름의 끝자락에서

길었던 여름 방학

이번 여름 방학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순도 100%의 휴식을 맛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랑 크게 다툰 이후로 시작부터 꼬인 것도 있지만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라는 물음에 도망치며 정처 없는 마음으로 지냈다. 

계속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은 큰데 이제는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태평스럽게 지내지 못하겠더라. 처음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 한국에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걸까 싶었는데 그냥 적응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렇다고 곧장 중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나중에 칭다오 음악제에서 왕허디 워터밤 보고 배가 조금 아팠지만) 아파도 맘 편히 병원에 갈 수 있고,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한국에 더 머무르기로 했다. 

012

개학 일주일 전부터는 시간이 배속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1박 2일 대전 여행을 다녀오니 갑자기 출국일이 되었다.

공항에서 같은 뱅기를 타기로 했던 샘과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고 지금의 고민들을 나눴다. 

막상 돌아가면 어디에서든 잘 지낼 것만 같다가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골치가 아프다. 당장은 개학이니 뭐니 해서 바쁘게 지내겠지만 또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간이 흘러야 스르르 해결될 것만 같은 숙제같기도 하다.

 

중국으로 돌아와서

기나긴 방학의 여파로 나는 한동안 몸과 정신이 분리된 것 같은 유체이탈의 상태로 지냈다. 

속으로 '학교 가기 싫어'를 백 번 외쳐도 오전 6시 반만 되면 자동으로 기상하는 몸이 되었다. 뛰어가서 스쿨버스를 잡아 타고 차에 오르면 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오백 번 한다.

하기 싫은 일은 일단 제쳐두고 최소한의 체력으로 이틀을 보냈는데도 오랜만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쉬었다.

상한 한약을 먹었지만 탈이 나지 않았고, 중국돈 계산법 까먹어서 작은 엄마에게 한국돈 1200원을 200원이라 잘못 말했다.

약간 바보상태(멍한 채로 생각을 1초 정도 멈춤)로 자주 있었고 어젠 중국인이랑 한참 한국어와 중국어로 얘기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내 공간을 되찾은 느낌이라 좋았다. 여기선 편히 자고 편히 먹고 내 페이스대로 삶을 살 수 있었다.

학교에선 약간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대지만 집에 오면 원래의 패턴과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단 걸 느낀다.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그간의 시간들을 복기할 여유도 생겼다.

여름 동안 가장 두려워했던 더위가 가셔서 그런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내가 중국에 올 무렵부터 이미 더위는 한 풀 꺾이기 시작해서 조금 습하긴 해도 저녁에는 기분 좋은 바람을 쐬며 산책할 수 있다.

방학이 끝나고 밀려오는 일들과 일상은 여전히 싫은 것들 투성이지만 방학 내내 그저 이 안락한 생활이 그리웠다. 

디디의 해변 탱고를 들으며 이 여름을 잘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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