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서 학생회 선배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고, 어쩌다 선거운동도 함께하게 됐다. 선거 개표날 컴컴한 사대실 지하에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셨는데. 그 때 어떤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질문을 했다.
"넌 교사가 되면 전교조 할거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풋풋한 새내기 시절의 고민을 뒤로하고, 임용고시 수험생이 되어서야 나는 전교조 가입의 문턱이 하염없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용고시 합격의 길은 요원했고, 그 무렵 나의 꿈은 전교조에 가입할 수 있는 '정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도 아녔다. 염원하던 교사의 길을 걷게 됐지만, 낯설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쏟아지는 업무와 뭐든 잘 해내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나는 자주 몸과 마음이 지쳤다.
전교조가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을 무렵, 내 곁에는 어느새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이제 슬슬 가입할 때가 되지 않았니?"
'학교 적응은 핑계고, 차일 피일 미루면 답이 없다'던 그의 말에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버린 나는 홧김에 가입 신청서를 냈고, 정확히 한달 뒤 그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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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의 부추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 '전교조 교사'라는 낙인이 내겐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다.
어떤 집단에서든 소수자는 중력의 무게를 다르게 경험한다. 아직 그 무게를 견딜 힘이 없었던 나는 학교에서 전교조로서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스스로를 옷장에 가두면,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디에도 속한 사람이 못 되었고,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끙끙 앓았다.
남자친구는 종종 고민의 해소창구가 되곤 했는데 그와 이별을 맞고 나니 해결방법을 영 잃어버린 것 같았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세상과 거리를 두면 둘수록 나는 고립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던 무렵, 지회장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별 소식을 들었다며 위로를 전해주면서 지회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왔다.(지금 생각해봐도 맥락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걸 계기로 간간이 지회 일을 도우며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 슬슬 날이 풀리듯, 꽁꽁 얼어 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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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믿음은 부서지고 부서져도 계기만 있으면 다시 채워지는 화수분같다.
그 계기는 우연히 바람불듯 찾아오기도 하고, 내가 무심코 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무수한 계기를 돌고 돌아 결국 내 자리가 여기구나를 확인하고 안심했다.
어떤 얘길 나눠도 쉽게 피로해지지 않고,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나로 있어도 된다는 안정감이 뿌리내린 것이다.
내 마음이 좀 더 튼튼해지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겠다. 숨어지내는 것보단 옷장을 활짝 열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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