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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즐거워/책

소설 진혼(4권과 외전)

소설 진혼의 결말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전자책으로 3권까지는 정말 후루룩 읽어버렸는데, 바쁜 일정으로 인해 4권과 외전은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션웨이와 자오윈란의 해피엔딩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이대로 웨이란을 보내기 싫은 마음이 상충했던 건지도 모른다.

대망의 완결, 4권까지 읽고 나면 "아. 이건 가벼운 BL이 아니었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상고시대 중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서사가 너무 탄탄해서 기본 배경지식이 없으면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신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던 나는 궁금한 부분은 나중에 더 찾아보고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세계관을 이해하기 버거운 분들에게는 유튭에 올라와 있는 팬비드 영상을 보기를 추천한다.

-일 만년의 애달픈 사랑의 시작

3권에서는 현재시점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끝났다면, 4권은 본격 상고시대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일 만년의 시간 동안 션웨이는 자오윈란에 대한 마음을 숨기며 기다려왔는지 그 복잡한 내막을 추리하기 위해 자오윈란이 명석한 두뇌를 굴리면 션웨이가 앞질러 가서 요리조리 훼방을 놓는 식이다.

션웨이는 곤륜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자오윈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농담이었겠지만 션웨이가 말하면 뭔가 농담도 농담같지 않고 진지하게 들려서 웃겼다. 역시. 션웨이는 금사빠였군.

"그래.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보자마자 내 삼혼칠백이 몽땅 빠져나가는 줄 알았어. 그 후로는 다시는 잊을 수 없었지."
"첫눈에 반했구나."
자오윈란은 의기양양해져서는 변태처럼 히죽였다.

자오윈란은 션웨이를 가벼운 말로 희롱하기 좋아하는데 그 때마다 점잖은 션웨이는 한 서린 표정으로 노여움을 드러낸다. 션교수님 가슴 찢어지는 소리 들립니까아!!

"당신은 모를 거야. 내가 몇 번이나......내가......"
  뒤이어 나올 말이 그리 좋은 말은 아닐 터였다. 점잖은 션웨이인지라 심한 말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지만, 온전히 삼키기가 어려웠던 그 말은 커다란 생선 가시처럼 가슴팍에 걸려 꽉 막힌 채 내려가지 않았다.
  자오윈란은 순간 그의 모습에 놀라 멍해졌다. 하지만 갑자기 이해가 됐다. 그가 션웨이를 알게된 지는 고작 1년이지만, 션웨이가 그를 지켜본 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일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 생에만도 수십 년에, 전생, 전생의 전생, 한없이 기나긴 세월을...... 션웨이는 그저 지켜만 봤을 터였다.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속세로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션웨이는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태어나고, 늙고, 아프고, 죽어가는 그의 삶을 주마등처럼, 자기와는 무관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션웨이는 자오윈란에게 자신의 심장의 정혈이 섞여있는 약을 마시게 했다가 금세 그 사실이 들통나고 만다.

"그때...... 당신이 왼쪽 어깨의 혼불을 잃고 진혼등 심지를 만들었을 때. 원신이 교란되면서 삼혼이 불안정해졌어. 당신이 날 강제로 신을 만들었다고 해도 어쨌든 나는 대불경의 땅에서 태어난 귀족이고, 귀족은 본래 불결하고 불길한 존재야.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엔 그저 지금처럼 피곤한 정도겠지만 점점 기와 혈이 모두 줄어들거야. 그대로 가다간 당신은 머지않아 나 때문에 등유가 다해 꺼져 버린 등불처럼 사라지게 되겠지."

심장에 칼이 꽂힌 상태로 피를 흘리며 션웨이는 자오윈란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가슴이 무너지는 장면이다ㅠㅠ 

"나는 혼백도 새카매. 유일하게 당신을 담아둔 심장만 깨끗해서 피가 빨갛지. 그것으로 당신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거야."

작가는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에서 문장을 인용하며 이 참혹한 상황을 정리한다. 다시 봐도 명문장ㅠ 너무 슬픔ㅠㅠ

누군가에게 사랑은 심장에 꽂힌 칼이었다.

- 진혼등에 얽힌 비밀

'진혼등'에 얽힌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자오윈란은 점차 션웨이의 속셈을 눈치채게 된다.

"진혼령의 '진혼'말인데...... 대체 무슨 뜻이야?"
"산 자의 혼을 지키고 죽은 자의 마음을 위로하며 남은 죄를 사하고 끝나지 않은 윤회로 돌아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작은 등잔불이 '진혼등'이라 했다. 아주 오래전 자오윈란은 어떤 잡기에서 진혼등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진혼등'은 황천길의 망령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라 했다. 일생에 잊지 못할 것이 많을수록 걸어야 할 황천길도 그만큼 길어지는데, 그 길을 다 지나고 나면 속세의 모든 인연이 진혼등 불빛에 전부 씻겨 내려간다고. 그렇게 황천길 끄트머리, 내하교 가에 도착해 망천수로 끓인 맹파탕을 한 그릇 마시면 전생과 현생의 모든 기억이 지워져 다시 환생하러 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자오윈란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고 진혼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작은 등잔불 받침대에는 '지사방생'이라는 글자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었다. 죽음에 이르러야 비로소 삶도 있다는 뜻이었다. 순간, 무언가 자오윈란의 눈앞을 언뜻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이어 그의 가슴에 극심한 고통이 치밀었다.

고집이 센 자오윈란과 션웨이는 투닥거리다가도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구서 웃음을 터뜨리는 게 참 귀여운 커플이다.

"빌어먹을 마음 같아서는 정말 수갑이라도 채워서 집에 가둬놓고 싶네."
  자오윈란을 등지고 선 션웨이는 그가 안 보는 틈에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절절하고 감동적인 밀어라도 들은 듯했다. 음울했던 눈빛마저 두드러질 정도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내가 같이 가면, 그 약 먹을 거야?"
  션웨이가 물었다.
  "그 입 다물어" 

한편 주훙은 션웨이를 욕하면서 끝까지 자오윈란을 포기하지 못한다. 자오윈란은 주훙에게 따뜻하고도 차가운 말을 번갈아 한다. 자오윈란 참 나쁜남자의 정석이어라.

그는 다 타고 꽁초만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큰 키를 이용해 주훙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힘껏 그녀의 머리칼을 부스스하게 비볐다.
  "나는 지조 따위 없는 망할 게이야. 이런 날 따라다녀서 무슨 좋은 꼴을 보겠어? 자, 여신님. '퉷, 재수 옴 붙었네' 해버리고 잊어버리는 거야. 날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고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싫다고 하는 거야. 알았지?"

- 소년귀왕과 곤륜군의 만남

자오윈란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로 돌아가 소년귀왕이었던 션웨이와 곤륜군의 만남을 보게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수려하면서도 괴상한 소년 하나가 매일 그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처음에는 소년을 무시한 채 상대하지 않던 곤륜군이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여긴 네 구역인데 왜 자꾸 날 따라다니는 거지?"
  소년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해요."
  매일 방자하고 무례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곤륜군이었다. 마침내 다른 이에게도 그 말을 해줄 기회가 찾아오자,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금도 노한 기색 없이 소년을 꾸짖었다.
  "무례하구나."
  소년 귀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좋은 말을 했을 뿐인데, 왜 무례하다는 건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곤륜군은 세월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봉인을 지키다 보니 상당히 심심하던 차였다. 그래서 소년에게 농을 던졌다. 
"내 어디가 좋으냐?"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을 가진 소년 귀왕은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예뻐요. 숨겨놓고 맨날 안고 싶어요."

소년인 때에도 곤륜군을 향한 션웨이의 욕망은 활활 타고 있었던 것이다. 곤륜군은 성격상 '이 요망한 것!'하며 내칠 법도 한데 순수한 귀왕의 매력은 곤륜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곤륜군과 소년귀왕은 인연을 맺게 된다.

"나는 천하의 이름난 산과 내를 다 가졌으나 생각해보면 특별히 진기할 것도 없구나. 그저 한무더기 쓸모없는 돌과 거친 강물일 뿐이지. 온몸에서 값이 나갈 만한 것이라고는 이 진심뿐이구나. 원한다면 가져가라."
  소년 귀왕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기가 그토록 간절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그것은 '진심'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었다. 단 두 글자였으나, 그 말은 영원히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게 하기에 충분했다.

곤륜은 소년 귀왕에게 자신의 심혈이 담긴 진혼등을 선물한다. 대봉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곤륜은 소년 귀왕과 슬픈 이별을 하게 된다. 이와중에 미남자 션웨이를 보지못해 아쉬워하는 곤륜군이란ㅋㅋ

곤륜군은 애틋한 눈빛으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어린 미소년이 미남자로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에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 가능할까.(결말 스포주의)

자오윈란은 <상고비문록> 책을 가져오기 위해 11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번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윤회의 고리를 깨닫게 되고 결국 대신목 안에 가짜 기억을 만들어 자오윈란을 속이려 했던 션웨이의 속셈도 들통나 버린다. 하는 수 없이 션웨이는 신농과 자신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그 내막을 털어놓는다.

"나중에 어떻게 됐어?"
"......나는 당신의 원신을 가둬 두고 윤회로 내려가 나의 원수인 신농에게 부탁했어. 내 평생 누구에게 부탁한 건 그가 처음이었지. 그때 윤회에는 이미 질서가 잡혀 있었어. 저승이 처음 만들어졌고 나름의 완벽한 규칙도 만들어졌지. 난 신농에게 당신도 다른 인간들처럼 윤회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면 비록 당신은 나를 매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영원히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신농은 상고의 신은 윤회에 들 수 없다면서 거절했어. 윤회는 신농의 원신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인간, 신, 요괴와 귀신 등 어지간한 혼백은 다 거둘 수 있지만, 진짜 대황산성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이야. 다만...... 신농 자신이 직접 당신의 모든 신력을 속박하고 혼백까지 깨끗하게 씻어내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면 가능하다고 했어. 근데 그러면 신농의 원신도 같이 사라지게 돼. 신농의 목숨으로 당신의 목숨을 맞바꾸는 셈이었지."
"그럼 날 윤회에 들어가게 하려고 신농에게 뭘 약속한 건데?"
"영원히 후토의 대봉인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어. 대봉인이 있으면 내가 있고, 대봉인이 무너지면 나도 반드시 모든 귀족과 함께 죽기로."
  션웨이의 손가락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만나지 않기로 했어. 만일 내가 견디지 못하고 당신을 만나면 당신의 원기와 피는 모두 내게 흡수되고 혼백이 흩어져 죽게 돼."

곤륜군을 윤회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션웨이는 후토 대봉인이 무너지려하자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션웨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함께 죽어서 영원히 혼돈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당신이 날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게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나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나와는 일말의 관계도 없는 그런 사이로 만들까?"

션웨이는 진혼등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고 자오윈란의 머릿속의 기억을 다 지우기를 택한다. 드라마에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혼돈의 세계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게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소설에서는 마지막 반전이 더 있다.

바로 진혼등의 진짜 심지가 '궈창청'이었던 것!(궈창청은 그냥 맹한 청년이 아니었던 것ㅋㅋ) 궈창청이 오랜 세월 환생하며 쌓아온 공덕을 돌려준 덕분에 자오윈란은 기억을 잃지 않았으며 션웨이도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일주일 간 정신을 잃고서 다시 건강을 되찾은 션웨이에게 괜시리 뿔난 척을 하는 자오윈란은 여전히 귀엽다. 

션웨이가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나한테?"
자오윈란이 그를 흘끗 보며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신의를 저버려서? 아니면 신의를 저버려서? 아니면 또 신의를 저버려서?"
션웨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드라마가 애매모호하게 슬픈 결말을 택한 바람에 '그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된거야ㅠ 죽은거야 산거야ㅠ 기억을 잃은거야 되찾은거야ㅠ' 막 답답해서 소리지르고 싶었는데. 소설의 확실한 해피엔딩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죽음과 삶이 연결되는 '윤회'라는 개념이 아직도 나는 낯설어서 대봉인을 무너뜨리는 그 모든 과정이 참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뭐 어찌됐든 둘이 햄볶으면 그걸로 된거시다.

외전에서는 궈창청의 특별한 존재에 대한 뒷이야기도 나오고, 션웨이의 이름이 지어지게 된 전생 이야기도 나온다. 션웨이는 과거에도 여전히 짠내난다. 언젠가 주일룡 사연 많은 과부상이라서 감독들이 울리기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적 있는데. 그래서 션웨이 이미지와도 이리도 잘 맞아 떨어졌던가ㅋㅋㅋㅋㅋ

덧) 최근에  <진혼> 소설책이 나오면서 드라마도 다시 흥하고 있나보다. 티빙에서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많이들 진혼 보시고 웨이란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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