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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기/2023 중국생활

현생의 단짠모드

현실에도 자동모드가 필요해

너무 피곤하고 힘든 일주일이었다. 연휴 끝나고 몰아치는 일의 강도가 정도를 넘어섰고, 매일 출근하기 싫었다.

주말이 오면 늘어져라 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는데, 잠을 자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다.

망할 현생의 피로를 씻기 위해 데스노트 아니 데빌노트 게임을 시작했다. 이름은 촌스럽지만 도묘필기 원작을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라서 고묘 탐험하며 좀비들과 싸우며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꽤 흥미진진하다.(물론 번역이 아주 많이 구리다)

초반에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미션을 해결하는데, 자동 탐색/전투 모드가 있었다. 손가락 한두 번만 까딱하면 알아서 캐릭터가 싸우고 보물을 획득한다.

너무 편해서 자동모드로 지켜보다 보니 벌써 레벨이 70이 넘어가기 시작했다.(아마 시작한지 1시간도 안 되었나?)

게임의 세계는 정말 편리하구나. 현실에도 이런 자동모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더 있는 게 좋을까

작년까지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코로나'라는 역병이 주는 시련이 대단히 컸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유를 잃어버린 감각을 맛보았고, 실제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겨울 방학 때 한국에 다녀오고 나니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실히 중국에서 살다보면 사람들 눈치를 덜 보게 된다. 한국 뉴스도 적게 보고, 더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않게 된 탓이다. 여전히 짜증 나는 것이 많지만 이제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더 크게 느낀다.  

틈이 나면 어디든 여행을 다녔다. 이젠 낯선 곳에 가는 두려움도 많이 줄었고, 언어가 안 통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요령도 생겼다. 물론 주변의 많은 도움들을 받았고, 상황도 조금씩 좋아지면서 이 정도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와서 가장 좋았던 건 일과 나를 분리시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1년 사이에 일은 금세 적응이 됐고, 그밖의 일도 조금 정리가 되고 나니 더 분리시키기 쉬웠다.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여기선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 그것을 가장 큰 메리트로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무지개빛으로 변할 리는 없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겪어 본 적 있는 패턴의 일들이 여기서는 골치 아픈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일의 여파로 주변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곤경에 처했다.

이곳의 특수성이 낳은 이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때 잠깐 가려졌던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단 생각도 했다. 그제야 나도 이곳의 분위기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어떤 사건도 개인에게 잠깐 스쳐갈 불행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고통받을 수 있는 문제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사회가 좁기도 좁고, 변화 가능성도 낮으며, 자구책 말고는 큰 대안이 별로 없다. 구조적 문제와 환경적 문제가 결합한 결과다.

해외에서 더 오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다시 부딪친 문제는 '한 곳에 오래 살면 안 되겠다'는 결론으로 끝맺게 됐다. 

 

미남 테라피는 실존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주말에 상해에 갔다. 

내가 왜 중국에 왔냐. 미남 왕허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가. 초심으로 돌아가 허디가 온다고 하는 G-SHOCK 이벤트를 보러 갔다. 

공원 입장권만 사두고 페스티벌 입장권을 따로 구매하지 않았는데(아무리 찾아봐도 구매처를 모르겠어서) 입장 2시간 전부터 대기줄이 길어서 일단 줄을 섰다.  

공연장도 조그맣고 볼품없이 설치된 것 같은데, 인원은 상대적으로 많아서 깔려 죽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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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준비 없이 땡볕에서 줄만 서고 있는데 갑자기 암표상이 다가와 150원을 내면 바로 입장 가능하다는 솔깃한 말을 했다. 스태프 자격으로 들어가는 표를 사는 거였는데, 이건 기회다 싶어서 바로 사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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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이미 많이 선입장을 한 상태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직원이 우리 무리 쪽으로 와서 진짜 스태프가 아니면 나가달라고 했다.

나도 나가는 척 눈치보며 시간을 끌던 차에 입장 오픈시각이 되자마자 아수라장이 되면서 펜스 쪽으로 사람들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시큐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어진 상황에서 중간 펜스 쪽에 붙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늘막하나 없는 땡볕 공원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3시간 동안 허디를 기다렸다.(잘 모르는 중국 래퍼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허디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지옥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헬기를 타고 왕자님(a.k.a왕자허디)이 나타났다.

눈앞의 무대에 허디가 짠 하고 올라왔을 땐 정말 넋을 잃고 봤다. 너무 잘생겼고, 잘생겼다. 말하는 것도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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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귀가 멍멍한 채로 집에 귀가했는데, 허디 사진과 영상을 보며 몸과 마음이 금세 충전이 됐다.

미남 테라피는 실존하는구나. 이 개고생을 하고도 의미가 있구나.

종종 현생 탈출을 위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다녀야겠다. 다음엔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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