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전동스쿠터 사고
2월엔 출근날이 많았고, 할 일은 생각보다 없었다. 조금 일찍 일어난 아침에는 여유를 부리면서 곧잘 자전거를 탔다.
날씨가 추웠지만 자전거를 타면 금세 땀범벅이 됐고, 아침에 20분 정도 달리면 가벼운 운동이 되어서 좋았다.
하루는 맨날 가던 빠른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라이딩을 시도했다. 학교 가는 자전거 길이 울퉁불퉁해서 운전하기 힘들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행길이라 조심조심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전동 스쿠터가 몰리는 시간대였는지 사거리에 갑자기 스쿠터 떼가 몰아닥쳤다.
마침 내 앞의 큰 짐을 싣고 가는 자전거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가고 있어서 나도 중간에 속도를 줄여야 했다. 속도가 너무 느리니 방향을 바꿔야 하나 요리조리 눈치를 보던 찰나에 사고가 났다.
나는 방향을 틀지 않고 속도만 줄였을 뿐인데, 뒤에서 질주하던 스쿠터가 나랑 충돌할 뻔 한 것이다.(다행히 충돌한 건 아니고 나는 전혀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뒤에서 스쿠터를 타고 질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내 눈앞에서 넘어지고 큰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다.
넘어진 아주머니는 나에게 큰 소리로 "왜 운전을 그런식으로 하느냐" 같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 우시화 사투리를 너무 억세게 쓰셔서 절반쯤은 거의 못 알아들었다.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나는 외국인이라 중국어를 못하니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며 연락처를 주었다.
어리벙벙한 상태로 학교에 가서 행정실 직원분께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놀라기도 했고 잔뜩 쫄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ㅠㅠ 그쪽에서 나를 몰아세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행정실 직원분이 대신 전화를 해주셨고, 그 결과 문제는 잘 해결됐다.
도로 교통법상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고, 교차로에 카메라도 있었다고 하니, 사실 확인만 되면 복잡한 절차 없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해 주셨다.
큰 일은 없었지만 중국에 와서 처음 겪은 접촉 사고라 너무 놀라서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당분간은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겠다. 내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코로나 없이 맞는 개학
코로나 걱정 없이 개학을 맞다니, 3년 만이다.
여전히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지만, 안심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적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 있었고, 오래 못 봐서 그런지 더 반갑고 정겨웠다.
처음 만난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나를 반겨줬고, 햇살 같은 미소가 너무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3월 첫 주는 여러모로 힘들지만, 그래도 작년보다 좋았다.
작년에 원격으로 아이들을 처음 만나고, 등교를 못 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봉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기쁨도 잠시, 등교하는 둘째 주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유행성 독감이 학교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나도 평소와 다른 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갔더니 독감 양성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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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예방 접종 주사를 맞았어야 했는데ㅠㅠㅠ 독감이 퍼질 줄은 예상도 못했다.
당연히 병원에 가면 타미플루를 처방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약이 재고가 없다며 종합감기약을 처방해 줬다. 2시간 넘게 링거를 맞았는데도 몸 상태는 전날에 비해 달라진 게 없었다.(손등에 멍만 시퍼렇게 들어서 별명이 파란 손이 됐다)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 온 감기약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이게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ㅠㅠ
중국의 의료체계는 생각보다 많이 열악한 편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비되었던 상황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많은 것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사람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들(병원에 약이 떨어졌다니? 병원에서 왜 마스크를 안 끼지? 병실이 이렇게 더럽다고? 간호사가 이렇게 링거를 못 놔도 되나?)이 산재해 있다.
나는 치료하러 병원에 갔는데 스트레스로 다른 병이 생길 것 같았다.
왜 한국 사람들이 현지 병원을 가지 않고 굳이 한국 가서 치료를 받는지 이해가 됐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 수준이 뛰어나긴 하니까.
문제는 의료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어떤 감염병이 돌 때 대처 방식도 현저히 다르다는 점이다.
시안은 독감 때문에 감염 위험 수준이 높으면 봉쇄를 할 거라는 지침을 발표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독감 때문에 학교가 폐쇄되기도 했다는데, 대체 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팬데믹 위기를 여러 차례 경험하고도 예방책을 세우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이 불안한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
내가 독감에 걸려 정신없이 헤매는 동안, 어느새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교실 창밖에 목련이 활짝 펴 있었는데, 다 지고 길거리에는 벚꽃 비롯한 봄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꽃 보러 갈 시간도 없이 바빴는데, 몸이 회복되고 나면 얼른 꽃구경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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