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도 여름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내년 여름이면 연수를 받아야 해서 나에게는 방학다운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마지막' 여름 방학인 셈이다.
매일 늦게 자기, 늦게 일어나기,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같은 걸 도전했는데 결국 루틴이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했다. 나는 '부지런함'과 '꾸준함'이 결여된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서 몸부림쳤다. 마음이 가끔 헐거워졌다.
-
요네즈 켄시 목소리에 꽂혀서 그의 노래를 한동안 열심히 들었다.
<Lemon>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좋고 스다 마사키와 함께 부른 <灰色と青(잿빛과 푸름)>은 가사도 뮤비도 조금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좋은 노래다. 덩달아 스다 마사키에게도 흥미가 생겼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에서 옆선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배우라 그런지 노래 부를 때의 발성도 연기처럼 느껴진다.
<Flamingo> 뮤비에서 흐느적 거리면서 나름의 절도를 보여주는 요네즈 켄시의 춤사위를 보고 폭소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이 이러한가 했는데.
위키백과 찾아보니 스다 마사키는 93년생 요네즈 켄시 91년생ㅋㅋㅋㅋㅋㅋ(쓰흡ㅠ )
둘다 긴 머리가 잘 어울리며 묘하게 촌스러운 데가 있다. 그래서 더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번 여름은 여행을 가지 못해서 오지은의 팟캐스트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를 듣거나 여행기를 읽었다. 이소정의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를 읽고 나니 청두에 너무 가고 싶어졌다.
중국에서는 청두를 '한번 발을 들이면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라고 부른다.
"조심해야 해. 청두에 오면 사람이 도시에 녹아버리는 것 같다니까. 어느 순간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고향을 잊고 돌아가지 않게 되더라고."
촨메이쯔는 단순히 쓰촨 지방에 사는 미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쓰촨 여자를 부르는 단어로 '촨메이쯔'가 있다. (중략) 촨메이쯔, 쓰촨 출신 여자들의 매력을 칭찬하는 듯한 이 단어가 어쩌면 수많은 여성들을 고정된 틀 안에 가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배울 수 없는 시대에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문자(뉘수)를 만들고 나누어온 여성들의 역사를 나누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너무 찡했다.
"자존, 자립, 자강을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나도 중국에 오래 머물며 여행하고 싶다. 청두에서 평화롭게 차를 마시면서 두보와 이백의 시를 읽고 사람에 대해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청두에서는 사람들 얼굴에서 짜증 내는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웃는다. 다들 웃는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웃음이다.(중략) 상대가 웃고 내가 웃으니 기분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마음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상대의 호의를 믿게 되었다. 맑은 차 한잔을 들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청두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리듬이 그랬다.
-
목빠지게 기다리던 왕허디 잡지(코스모폴리탄 8월호)가 도착했다.
이 잡지를 기다리다가 문자 스매싱도 당하고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스매싱 당한 문자가 CJ대한통운으로 사칭한 거였는데 실제 택배업체도 CJ 대한통운이라서 소름이었다.(혹시 CJ대한통운에서 내 정보를 빼돌린걸까;)
하지만 잡지에 실린 디디를 보자마자 분하고 억울했던 마음이 싹 녹았다.
디디가 서울에 와서 찍은 사진들과 영상을 다시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가 뭐래도 덕질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구나.
-
넷플릭스에서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를 보고 있다.
가볍게 웃으려고 선택한 건데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너무 도와주고 싶고 걱정되어서 마음을 졸이면서 봤다. 주인공 레베카는 말 그대로 'Crazy Ex-Girlfriend(=정신나간 전여친)'인데 귀엽고 섹시하고 똑똑하고 팔색조 매력을 갖추었지만 연애를 더럽게 못한다. 게다가 조쉬를 사랑하다니. 눈도 아주 낮다.(대체 조쉬의 어떤 면이 섹시합니까!!! 눼에??)
내 눈엔 그렉도 성에 안 차지만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캐릭터니까ㅠㅠ(참고로 그렉은 겨울왕국에서 한스왕자 역할)
중간 중간에 나오는 뮤지컬적인 요소는 정말 꿀잼이다. 노래도 좋고 가사가 아주 대박 웃기며 패러디를 아주 기깔나게 한다.
시즌1이 이제 끝났고 시즌2도 보겠지만 너무 감정이입하면서 보면 우울해지니까 적당히 즐기며 봐야겠다.
-
이번 여름 방학은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소소하게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냈던 것 같다.
개학이 다가올수록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그래도 끝이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