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야
오랜만에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안부가 궁금하고 또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마음을 졸이며 언니의 연락을 고대했지만 항상 실망에 이르렀기에 이렇게 가벼운 연락은 달갑지 않았고 너무 서운해서 속좁게 굴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언니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되레 사과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언니에게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무진장 많았기에 만나자는 연락에 선뜻 응했다.
나는 지난 연애에 대한 죄책감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며 새롭게 시작한 인간 관계들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고 조슈아 웡의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눈물을 흘린 일 등등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정말 홀가분했다.
내가 혼자라고 느꼈던 시간들보다 더 오래 언니는 홀로 지냈다. 홀로 깎여나간 시간들이 너무 깊어서 고통스러웠겠다.
우리는 거울처럼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비추면서 공감과 위로를 퍼부어 주었다.
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비를 기꺼이 같이 맞아주는 사람. 고마운 사람.
나는 용기가 없어서 언니의 존재를 눈감고 지우려 했는데 언니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그게 지금의 나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충분치 못한 내가 인정도 못 받고 주변을 의식하면서 내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혼자서 모든 걸 이겨내 보려고 했는데 자주 무력해졌다. 두려워하고 겁내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고 이대로 가다간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혼자서는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때에 언니가 손을 내밀어 준 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깨닫게 된 것 같다.
다시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 나의 인연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언젠가 다 돌려주리라 굳은 다짐을 해본다.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시인의 말
언니가 열쇠라는 것만 알았지.
방 열쇠를 나눠 가지면 된다는 걸 나는 몰랐어.
내 방에선 끔찍한 다툼들이 얽혀
겨우겨우 박자를 만들어내.
언니는 말했지.
이런 세계는 풀 수 없는 암호 같고,
그런 건 낙서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그건 얼마나 옳은 생각인지.
언니와 나 사이에 사는 사람들과
열쇠를 나누어 가지면 좋을 텐데.
2017년 3월
솔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