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마음
포천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는 고양으로 정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신세를 졌던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들에게 '여기서 오래 함께 하고 싶다'고 늘상 말했었는데, 이제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서, 누가 물어봐도 모른 체하고 입을 꾹 닫곤 했다. 그렇다고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질리 없었다.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 못할 사정은 없지만, 괜히 구구절절 말하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감은 어디 돈 떨어지는 곳도 아닌데 왜 그 곳을 가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나와는 친분이 거의 없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예전이었으면 말하자마자 눈물이 샘솟았을지도?)
친한 부장님들은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거의 내비치지 않으셨다. 내가 꼼지락거리면서 아직도 고민이라고 하니, 원래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는 거라며, 그 결정에는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거라고 하셨다. 어떤 결정이든 다 괜찮을 거라고 응원해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료들은 업무지옥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미리 축복해주었고, 각자 자신들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고민하기에 바빴다. 누구도 나의 형편과는 같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끔 도와줬다. 내가 떠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때 친구들이 있어서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지회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지난 4년 간 쌓여온 마음의 빚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다.
지회에서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고, 올핸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못다 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혼자서 어려움을 헤쳐내기엔 버거웠고, 남아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 나가기엔 내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다.
한 해가 가기 전 마지막 회의에서 나는 떠나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지 이유를 재차 묻다가, 내 굳은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는 내게 서운한 마음을 마구 쏟아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들 앞다투어 흥분하는 모습들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때 그 순간을 되감아 보면, 그 낙담하는 표정들과 원망섞인 말들로 인해 맘이 탁 놓였던 것 같다. 그쪽도 나도 순순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기뻤다.
마음에 커다란 공백이 메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여길 떠난다는 것이 아쉽고 슬프지만, 나만큼 아쉬워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덜 외로웠던 모양이다.
도망가는 것도 등떠밀려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이곳을 스스로 떠나는 것이니까. 이제 더는 죄책감은 가지지 않아도 되겠지. 홀가분한 마음은 아니지만 그렇게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