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구 2020. 5. 30. 18:38

하루 하루가 지치고 빡치고의 연속이다.

등교 개학 이후 '교육부 지침'의 압박 속에 방역책임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 시시각각 느낀다. 

등교 개학 첫날,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평가회 같은 걸 했다. 학생부장은 담임들 앞에서 비담임들의 역할이 너무 많다며 하소연을 했고. 보건 선생님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담임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교감은 자가진단 100% 만들기를 목표로 현실적인 대안 세우기에 급급했다.

나는 그날 과로사하기 딱 좋을 만큼 숨가쁘게 바빴는데, 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감이 안 왔다.

그날 겪은 일을 바탕으로 위기 대응 매뉴얼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길 꺼냈다가, 대화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담임수당 운운하며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부장의 말에, 멱살잡힌 기분이 들어 서러움이 울컥 치밀고 말았다.

제기랄. 너무 흥분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와서도 너무 지쳐서 한참을 나자빠져 있었다. 왜 그딴 말에 비이성적으로 대응했을까 하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진 않았고. 그렇다고 나 자신을 책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들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아끼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

그래도, 아이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내 기쁨과 힐링의 원천이 돌아온 것이다!

첫날은 기분이 좋아서 더러 무리하기도 했는데. 둘째날 셋째날 되니 리듬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걱정은 역시 한낱 걱정에 불과했다. 학교라는 공간에 활기가 생기고 나니 갑갑했던 시야가 트이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어찌저찌 굴러가고 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지만 '뭐 이게 어디냐'하는 생각으로 만족하며 지내기로 했다.

코로나19는 내 일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지만, 소중한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걸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

"여기에 계속 있을 생각이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전히 어렵다. 대외용 모범답안이라도 만들어놔야 할 판이다.

난 더 있고 싶은데, 더 있기가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지 않은데. 도망가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게 좋고, 내 주변의 마음 따뜻한 교사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서 이곳이 좋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생겨나는 고민에 천착할 수 있어 좋았고, 그게 내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대는 좋지 못한 시스템을 막기엔 너무 역부족이고. 언제든 내가 못 버틸 것 같으면 떠나야지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선생님은 내년에 다른 곳으로 가시나요?"

아이들로부터 이런 말도 심심찮게 듣는다. 마치 내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는 것처럼 당연스레 말하면 무지 섭섭하다.

"내가 나갔으면 좋겠니?"라고 반문하면 으레 아니라고 한다. 함께 오래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법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나는 정든 것들과 이별하는 것도 두렵고, 이별이 두려워 쉽게 정도 못 주며 외로움에 자주 질척댄다.

새로울 것이 없어 자주 회의감이 드는 일상도 지겹지만 금세 그리워지므로 놓지 못하는 것도 있다.

살기 좋았던 고향은 그리 쉽게 떠났으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을 쉽게 못 비우는 것일까.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아직은 이 문제에 대해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이 고민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올 테니, 시간을 갖고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