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솔직한 교단일기] 외로움 때문에 시작한 일2
지역에서 하는 연구회와 소모임은 나의 위태로운 정신과 마음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허나, 나에겐 또다른 갈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페미니즘 담론'이다.
학교 안에서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대화의 주제들은 크게 '정상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취미, 연애,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이 연쇄망에서 나는 '20대 비혼주의자'로서 빈곤한 대화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오랫 동안 나와 관계를 쌓아온 친구들과는 '페미니즘 관점이 반영된 책과 영화, 성폭력, 비혼, 동거, 소수자 인권, 생활동반자법' 등등을 주제로 다양한 대화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런 대화가 언제 어디서나 늘상 쉽게 자리하는 건 아니다. 특히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학시절 때도 페미니즘 교지를 만들자며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 했었지만, 나는 1년 간 총학생회 집행부 활동이 끝나고 심신이 지친 상태로 임고 준비에 돌입해버렸고, 그 일을 주도했던 후배는 돌연 입대해버렸다. 그렇게 뿔뿔히 흩어진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임고를 핑계로 숨어지내던 그 억겁의 시간동안 친구도 잃었고, 후배도 잃었고, 선배도 잃었다. 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렇게 관계가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도 있단 걸 애써 받아들이려 했다.
어떤 친구는 이미 그 관계는 실패한 거라고, 더 이상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가련한 나를 친절하게 다독여줬지만, 페미니즘의 'ㅍ'만 나와도 나를 적으로 규정해버리는 사람과 모래성을 쌓는 기분으로 더는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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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방학이 다가올 즈음, 뜻하지 않게 멀어졌던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배의 연락 덕분에 긴 침묵을 깨고 후련한 마음으로 나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게 알을 깨는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대학 시절의 추억들이 흘러간 레테의 강처럼 느껴졌었는데, 과거와의 연결성을 회복하니 현재의 외로움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선배도 혼자서 오랜 시간을 분투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두려움과 외로움을 겹겹이 둘러메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언니는 내게 '용기의 발판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켜 누군가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순수하게 기뻤다.
무튼 언니 덕분에 작은 용기가 생겼을 즈음, 전교조 2030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조합원이 된 지는 좀 되었지만, 지역 바깥의 사람들과 교류를 한 적이 없는 나에겐 아직 '낯선 세계'이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일이었다. 그 때 선배가 지역에서 하는 2030 독서 모임이 좋았다며 나가기를 선뜻 추천했다.
언니와 나는 지역이 멀어서 같은 모임으로 묶이긴 어려웠지만, (언니의 말에 의하면) 2030 모임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안전성이 보장된 곳이라 느껴졌다. '안전성'은 내게 아주 중요한 욕구인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관계에 대해 많이 닫혀있었다.
정말 운 좋게도, 거기서 나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불편함과 다양성에 대해 토론하는 독서 모임을 꾸리게 됐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세상을 열어 보면서 생기는 여러 불편함, 차별,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는 교사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면의 가시들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외로움과 불안에 한창 시달릴 때는 '유별난 내가 항상 문제'라고 여겨졌고, 겉으로는 예민함의 레이더를 곤두 세우곤 했다. 에너지는 늘 상대를 비난하는 데만 사용했고, 나의 불편함은 늘 비슷한 자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지쳐갈 때 즈음, 내 말을 경청하고 그것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어떤 답답한 구속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이해의 기본값이 비슷하니 아주 쉽게 다음 단계로 나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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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의 시간 동안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단순히 앎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인적, 사회적인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공부(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그걸 통해 얻은 지식들을 교육적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만 천착하다 보면 항상 잃게 되는 지점이 있다.
교육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내 삶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그래서 아주 필요하다.
나는 그걸 학교 안의 재생산 되는 관계 속에서 찾으려 애썼지만 나의 용기와 노력 부족으로 인해 쉽사리 성공하지 못했다.
교육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지 않은 건 학교가 아주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사회 모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학교, 지역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것이 아주 덧없는 믿음이 아닌 이유는, 세상엔 외로움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