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쓰기/아주 솔직한 교단일기

[아주 솔직한 교단일기] 외로움에 대하여

슬구 2020. 3. 15. 00:39

외로움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작년 한 해는 처음으로 일터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운 좋은 해였다. 매일이 전쟁터였던 지난 2년과 다르게 손 댈 필요 없는 학년과 학급의 담임을 맡았고, 관리자가 바뀌고 나서 학교 분위기가 점차 안정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방과 후엔 따로 사람들과 놀러 다니지 않아도 이미 적당히 친한 사람들 투성이였다.

관계에 대한 불안도,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3년차 교사가 자주 봉착한다는 노잼 시기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1,2년차 땐 매일 싸워대서 그저 작은 '안식'과 '평화'가 절실했는데. "차라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재밌는 걸 찾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줄이야. 모든 욕구가 충족한 데서 오는 배부른 고민인걸까 갸우뚱 했다.

그러나 노잼 시기에 돌입한 근본적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내가 '노잼'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고 말하면, 다들 '연애를 하면 해결 될 거야'라고 했다. 연애 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20-30대에겐 연애는 아주 간편한 처방약이니까.

그러나 7년 간 연애로 고통 받은 자에겐 그저 연애란 설렘 못지 않은 또다른 고행을 예고하는 일이다. 더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엔 아주 열정적이지만, 반대엔 전혀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상대가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상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만큼 연애가 절실한 사람도 아녔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다른 외로움에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3월에는 매일같이 아이들과 상담을 했다. 1~2명이서 하는 상담이었지만, 이야길 좋아하는 중딩이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다보면 1~2시간은 족히 걸렸다. 일에 치여 충분히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는데, 그렇게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했다. 

매일 늦은 시간 귀가하는 나를 보며 동료 교사는 '선생님 참교사네요~'라는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이런 조롱과 빈정거림은 들을수록 정말 진이 빠진다.

새로운 학년부장은 1년이 다 되도록 한 반에 20명밖에 안 되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3반 담임인데, 자꾸 1, 2반 애들의 학부모 연락처를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이런 학년부장 덕분에 각 반의 일은 담임이 알아서 처리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아무도 안 도와주니 각자도생해야 하는법이다) 어차피 아이들이 온순하고 세 반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별 문제가 생기는 건 아녔다.

2학기가 시작되자 아이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자주 발생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학폭사안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서 권위 있는 사람(=선생님)이 자신의 입장을 공감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어느새 학년부의 고충처리반 담당자가 되어 우리 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의 자잘한 사안들까지 중재해주기 바빴다. 아이들은 너무 쉽게 학년부 교무실을 찾았고 거기엔 항상 얘길 들어주는 내가 있었다.

학년부장은 그런 아이들을 '선생님 귀찮게 하는 애들'로 규정짓고 쫓아 내기 바빴다. 정말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도 내색은 안했지만 업무 중에 끼어드는 아이들의 상담 업무를 귀찮아 했다.

갈등의 해결방법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두고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애들의 버릇을 나쁘게 만드는 어른이 된 죄책감을 몰래 느꼈다.

내가 그 역할(학년부의 오지라퍼 감정노동자)을 자처한 건 업무적으로 한가해서도 절대 아니었고, 참교사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업무 하기 바쁜 시기에 아이들의 일이 터지면 나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화를 펄펄 내고 있는 학생이며,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 있는 아이를 보면 급한 일이 있어도 일단 내려 놓고 보게 된다. 나는 무엇보다 학교에선 아이들의 일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지친 선생님들은 사안이 사소하거나 작은 일 같으면, 다들 으레 그렇듯 내가 처리하겠거니 하고 쓱 모니터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무실 바로 앞에서 아이들이 쌍욕을 하고 다투고 있어도 아무도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 건너 불구경이 되는 일이 흔했다. 나는 같은 교무실에 있었지만 내 자리만 동떨어져 있는 섬 같았다.

한창 아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던 중에 나는 한 아이와 언쟁을 하게 됐고, 나와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됐다.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서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 아이의 싸가지 없는 행동들에 대해 같이 흉을 봐주거나, '그냥 무시하고 사는 게 좋을 거야.'라는 말을 해 주었다. 괴로워 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나에겐 충분치 않았다.

여차저차 하다가 결국엔 나는 겨우 사과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한 선생님이 "사과하지 마. 그건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야." 라고 말했다.

다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선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 적당한 말로 참견하거나, 나의 감정에 비위를 맞춰줄 뿐. 그들이 내게 바라는 역할도 아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외로움에 시달렸다. 생산적인 토론도,갈등도 없는 학교가 나를 목마르게 했다.

교사는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업무적 숙련을 요구받는다.(동시에 수업과 생활교육의 전문가가 되기도 바란다.) 행정업무에  매몰된 환경 속에서 교사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동료를 미워하다가, 결국 '나는 왜 교사가 됐지'하는 회의감에 젖는다.

나 역시 3년 동안 잘해보려고 애쓰고 분투했지만, 이 시스템 안에서는 아무렴 더 나아질 것이 없었다.

5년 안에 번아웃이 온다면 일을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지쳐서 더 이상 아이들을 못 보면 너무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더 오래 일하고 싶고, 이왕이면 행복하게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싸울 사람들을 만들어 가야한다. 

홀로 외로운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닐 테다. 그래서 나처럼 노잼에 탄식하고 있거나, 지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노라면 다가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적당히 안온한 일상을 이어간다고 해서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듯. 갈증을 느낀 내가 우물을 파야지. 

2020년은 적어도 외롭지 않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