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구 2020. 2. 3. 14:17

-꿀 같은 겨울방학이 지나가고 있다. 오래된 습관인 게으름을 이기지 못해 매일이 허탕이었지만.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을 덜어내는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순천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오래된 우정을 확인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연결고리 속에서 결국 안착한 곳이 여기라는 사실이 안심되다가도, 앞날이 걱정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 고대하던 중국 여행 계획이 무산되었다. 한동안 많이 우울했다. 중국에 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했다. 때때로 찾아주는 친구들과 만나 심심함을 풀었다. 다정한 말과 무심한 말을 들었지만 다 저편에 묻어두기로 했다.

-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는 바람에 중드를 거의 못 봤다. 별로 흥미로운 구석은 없어도 비주얼만 반짝거리는 드라마(물론 비주얼이 세상 제일 중요하지만)를 보고 있자니 더 공허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고대했던 <장야2>가 시작했지만 당국의 공주님과 엽홍어가 다른 배우로 교체된 사실을 알고 도입부에서 흥미가 싹 가셨다.(물론 나중에 다 보긴 할 거지만 지금은 영 내키지가 않는다.) 지금은 <가유니시최봉적> 속 토깽이같은 귀여운 덩룬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 중드 휴식기 동안 집구석에서 나는 내내 뒹굴거리며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를 기웃거렸다. 드디어 넷플에 <라그나로크>가 올라와서 순식간에 정주행했고(시즌2 절실하게 바랍니다), 왓챠에서 그간 못 보고 놓쳤던 영화들을 봤다. 왓챠까지 계정을 만드니까 마치 흩어진 드래곤볼을 다 모은 기분이다. 

- 일상이 너무 무료할 때쯤,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를 보러 갔다. 문화 생활에 지나치게 목말랐던 건지,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뿅갔다. 불에 탄 피아노와 붉은 실들의 잔상이 아직도 머릿속에 떠도는 것 같다.

-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옮겼다. 축하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이 오갔다. 나는 내 자리를 아직도 못 찾고 방황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떠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너무 외로워졌다. 떠날 이유를 궁색하게 찾기 보다는 여기에 머무른 이유를 찾아야 1년이 행복할 것 같다.

- 온몸이 찌뿌듯하여 마사지를 받았는데, 자세교정과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허리가 아파서 오랫동안 앉아 있지도 못 했으니 이 지경까지 버틴 내 몸이 대단할 노릇이다. 꾸준히 해야하는 일이라 시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조만간 운동은 어떻게든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