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라도 떠나고 싶다/중국, 일본(2024 겨울)

21일 간의 동북아시아 일주 - 1 (청두 편)

슬구 2025. 2. 3. 09:43

한 달간의 여행

어쩌다 보니 청두-하얼빈-상해,부산(경유지)-삿포로-도쿄 루트로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 일정이 정해지고 나서 친구들에게 알렸더니 "너는 참 체력도 많고 돈도 많구나"라고 했다.

물론 나도 이런 여행가의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방학에는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여행을 다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체력과 돈을 마구 쓰는 사람이 됨)

여기저기 오는 여행 제안을 다 수락했더니 동북아시아 일주를 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쓴 돈도 체력도 시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재밌게 놀았으니 이번 겨울 여행은 성공한 셈이다.

 

청두에 품은 한이 풀리다

2022년 국경절 연휴에 혼자 청두 여행을 다녀왔다. 

중국을 가면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이 청두였지만, 코로나 시기에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몇 번을 가려다 포기하고 겨우 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서도 여행을 완전하게 즐기지도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청두 건강마를 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서서 핵산 검사를 받았고, 건강마가 뜨기 전까지는 타이구리 안으로도 못 들어가게 했다.

건강마 없이도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곳은 진마파두부집밖에 없었다ㅠ 그때 눈물겹게 마파두부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직도 슬프다. 

또 그 무렵엔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에 다녀오면 건강마가 붉게 변하면서 강제로 격리를 당해야 했다.

당시 청두의 몇몇 지역은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혹여나 내 휴대폰 GPS가 그곳으로 잡힐까 봐 걱정하며 다녔다. 그땐 코로나 이슈로 무후사와 콴쟈이샹즈를 못 갔다ㅜ

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오래전 일처럼 까마득해졌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청두는 너무 아름답고 정겹고 맛있고 재밌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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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청두에 왔건만 티엔푸 공항이 시내와 너무 멀어서 도착하니 이미 늦은 밤 시간이었다. 

2년 3개월 만의 청두였지만 거리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아 실감이 잘 안 났다.

호텔 근처에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촨촨샹 가게에 가서 야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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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불처럼 끓는 마라 냄비를 보니 군침이 돌면서 아 이제 청두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흡연자가 많아 내가 담배 피우면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촨촨은 맛있고 직원분도 무척 친절했다.(방언이 세서 좀 알아듣기 힘들긴 했다)

 

청두 시내 여행

다음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두 시내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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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봄이 온 것 같은 두보초당에서 꽃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무후사 근처에서 청두 미식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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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사는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의 덕질 장소가 아닐 수가 없다.(물론 난 삼국지 안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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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빨간 벽과 대나무가 어우러진 공간이 예뻤고, 작은 산이나 둔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무덤(혜릉)인 장소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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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청양궁이라는 곳도 있어서 들러서 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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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에 가면 촨극을 꼭 보라는 룸메샘에 말에 미리 예약해둔 촨극 공연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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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검술은 실제로 보니 진짜 재밌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호응도도 높았다.   

저녁은 우연히 길 가다 본 광고에 이끌려 카오위를 먹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루위만큼 맛있진 않았지만, IFC 몰 옥상 풍경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서비스로 준 화자오 아이스크림은 최악^^

 

아버님, 며느리 인사드려요

둘째 날은 러산에 갔다.

유람선을 타고 러산대불을 보긴 했음

다들 청두 근교 여행하면 러산대불이나 아미산을 가는데, 나는 목적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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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디 고향인 러산에 가면 허디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꼬치집이 있다.

그곳에서 겸사겸사 맛있는 꼬치도 먹고 허디 아버님께 새해 인사와 선물도 전하는 것이 나의 본 목적이었다.  

이미 꼬치집 본점은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땐 국경절 연휴에다가 창란결 붐으로 허디가 핫해지기 시작해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정신없이 사람들 틈에 떠밀려 꼬치를 주문하고, 먹고 빠져나오느라 사실 허디네 가족들의 얼굴은 전혀 보질 못했다. 

최근에 오픈한 2호점에 가면 아버님을 볼 수도 있다는 정보에 의지해 이번에는 2호점을 찾았다.  

오픈 직후긴 했지만 사람이 거의 없고 한산했다. 

그런데 웬걸, 자리에 앉자마자 아버님이 샤오홍슈에 찍힌 사진 그대로의 착장으로 2층에서 내려오시는 게 아닌가.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고, 인사를 받아주길래 바로 아버님이구나! 직감했다.

황급하게 정관장을 종이 가방에 넣고 친구와 함께 아버님이 계신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별로 당황하지도 않으시면서 차분하게 '왕허디의 팬이니? 어디서 왔니?' 물으셨고, 우리는 당신을 보러 한국에서 온 (극성)팬입니다라고 흥분하며 말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건네니, 웃으면서 이걸 허디에게 전해주면 되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이건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편지만 아들에게 전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셨다.

처음엔 말이 너무 안 나와서 어벙하게 대화하긴 했는데, 외국인인 걸 알고 더 천천히 말해주신 것도 같았다. 친절하고 스윗하셔..

사진도 그 동네 랜드마크 같은 곳엘 조용히 데려가시더니 능숙하게 포즈를 취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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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지 오래된 꼬치가 이미 식어가고 있었지만, 식어도 왕맛있는 디디네 꼬치!!!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정말 매일 갈 텐데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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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절에 아들이 올 것 같냐고 하니, 바빠서 못 올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마침 이번에 스케줄이 없어 허디가 고향에 갔단 소식을 들었다. 

내 편지가 전해졌을까.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은 일이 나한테 벌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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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고 러산 동네 한바퀴 돌고서 기차를 타고 청두 시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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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진마파두부에서 마파두부와 매실주 메이지엔을 먹었는데 제법 맛있었다.

 

두장옌과 삼성퇴박물관

셋째 날은 아침부터 조식을 먹고 아침 일찍 두장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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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조식을 먹었는데, 질리지 않고 매번 맛있는 것이 신기했다. 역시 나는 청두 음식이 잘 맞아.

두장옌은 청두 시내와 거리가 멀어서 긴 시간 택시를 타야 했는데, 택시 안에서 잠들면 시간이 잘 가서 오히려 좋았다. 

두장옌이 커서 많이 걷겠지 싶었는데, 꼭대기쯤에서 출발하니 내려가는 계단만 많고 실제로는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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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풍경도 겨울이라 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기대보다 볼 것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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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찾아보니 저녁쯤에 화려한 조명이 켜져야 예쁜 구경거리가 생기는 듯했다. 아쉽게도 그 풍경은 못 봤다.

두장옌에서 삼성퇴 박물관을 가는 거리도 상당히 먼데, 우리는 또 장거리 택시를 탔다. 이날 택시비만 엄청 썼음^^

점심쯤에 허기가 져서 길거리 음식을 대충 사 먹었는데, 과일이 제일 맛있었다.

삼성퇴 박물관은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는 시간대에 가서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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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나갈 때쯤 나는 전시관을 나왔다. 진짜 힘이 없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전시는 볼 것이 진짜 많았다. 마지막 대목에 진령신수에 나오는 청동수를 내가 내 눈으로 볼 줄이야!! 정말 설레고 기쁜 일이었지만 체력이 달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기차역을 잘못 보는 바람에 멍청 택시비용을 또 지출했다.

다행히 기사님께 다른 기차역을 가달라고 해서 길을 돌려 청두 시내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갈 수 있었다.

저녁으로 청두에서 제법 오래된 하이디라오를 갔다. 하이디라오의 본점은 청두라서 뭔가 다를 거란 기대를 하고 갔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았는데, 계속 하미과를 리필해서 꾸역꾸역 먹는 쀼의 먹성이 실로 대단했다. 

 

사랑해요 렛서판다

청두에 오면 당연히 숑마오(판다)를 보러 가야 한다.

한창 푸바오가 중국에 오면서 사람들의 쓰촨 판다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우리는 푸바오가 있는 곳까지 갈 여유는 안 되어서 청두에서 가장 가까운 팬더기지를 갔다.

전날 생리가 터지는 바람에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 나는 아침에 서둘러 팬더기지에 갈 힘이 없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갔는데, 다행히도 사람이 많이 없었다.

맨 처음 관광차를 타는 곳에서 줄을 잠깐 서고 조금씩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인구밀도가 차츰 낮아졌다. 

판다 기지 안이 워낙 커서 자는 팬더 노는 팬더 먹는 팬더 충분히 다 구경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이 즐거웠던 곳은 렛서판다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진짜 앙증맞은 인형같이 생겼는데 요리조리 잘 쏘다니고, 사람 경계도 안 하고 너무 귀여웠다. 

나는 렛서판다 인형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친구가 선물해 줌), 우리 집 판다인형 숑숑이의 동생이라서 이름을 '숑디'라고 지었다. (마침 왕허디 팬덤의 이름도 숑디화니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곳은 역시나 인기 판다인 화화를 보러 가는 곳이었다.

일단 두 시간을 각오하고 줄을 섰는데, 30분도 안 되어서 입장이 가능했다. 화화는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도 좀 특별한가 싶어서 사진을 남기긴 했지만, 글쎄 두 시간까지는 오버였던 거 같다.

자이언트 판다의 먹방까지 야무지게 보고 셔틀을 타고 다시 청두 시내로 나왔다.

저녁은 IFC 몰 근처에서 마오차이를 사 먹었는데 생각보다 안 매웠다. 상해에서 먹은 청두식 마오차이가 더 매웠던 듯.

 

기도빨이 좋은 문수원

마지막 날은 숙소 근처에 있는 문수원을 산책하고 다시 티엔푸 공항으로 갔다. 

문수원 주변 가게들이 열기도 전이었는데, 절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향을 태우고 있었다.

우리도 무료로 향을 하나씩 건네받아서 진지하게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님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법문 같은 것을 외면서 나가는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열었더니 윤 씨가 드디어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방금 분명 나라가 안정되기를 소원으로 빌었는데 그 첫 단계가 바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여기가 이렇게 기도빨이 좋은 곳인 줄 몰랐다.

마지막 주변의 탑을 구경한 후에 주변 상점을 둘러보다가 힙해 보이는 찻집에서 친구의 선물을 사고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었다.

생각해 보면 차의 도시 청두에 와서 차는 거의 한 번도 안 사 먹고 술과 커피만 줄창 마셨다.

점심으로 쓰촨 음식점에서 맛보지 못한 '라즈지'를 너무 먹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돌아가는 비행 일정 때문에 먹지 못했다.

공항에서 짐찾다 만난 안무시 허디

길고 꽉 찬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쉬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쓰촨은 아직 못 간 여행지가 더 많아서 다음번에 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