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구이저우 여행
타박상이 풍년
온몸이 쓰라리고 아프다. 시작은 언제부터였더라.
교직원 체육대회에서 발야구를 하다 스탭이 엉키는 바람에 잔디밭에서 구르고 넘어져 무릎이 크게 멍들었다. 상처 부위가 바지에 가려져서 크게 티는 안 났는데, 멍든 상처를 볼 때마다 근심에 빠졌다.
안 그래도 가기 싫었던 체육대회를 부상을 핑계로 좀 더 쉬긴 했지만, 이렇게 다칠 필요까진 없지 않았나 하고. 이건 공무상 재해인가 아닌가.
그리고 엊그제. 신나게 구이저우성 여행을 하던 중, 비가 와서 미끄러운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같이 있었던 룸메샘은 내가 슬로모션으로 미끄러지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나도 몸이 기우는 걸 눈치챘지만 잽싸게 바로 난간을 부여잡지 못했다.
계단에서 미끄러졌으니 오른쪽 허벅지만 쓸린 줄 알았는데 우산을 들고 있던 손으로 바닥을 짚는 바람에 손가락과 손바닥도 멍이 들었다.
괜찮냐는 걱정에 나는 그저 "아파요. 너무 아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버린 나. 그럼에도 강행군으로 폭포를 보러 여기저기 다녀야 해서 무엇을 잡을 때 어딘가에 앉을 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욱신욱신 몸이 쑤셨다.
하루이틀 지켜보니 부기가 금세 가라앉은 걸 보면 뼈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내일은 병원에 가야지.
3박 4일 구이저우성 여행
노동절에 구이저우에 가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정했다. 장야 소설 번역본이 최근에 나와서 읽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장야를 보면서 꼭 가고 싶었던 촬영지가 리보의 샤오치공이었고, 구이양 근처에 세계 4대 폭포인 황과수 폭포도 있다해서 겸사겸사 그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묘족마을은 세계테마기행 보면서 관심을 가지긴 했는데, 이미 여름에 다녀왔던 샘들의 후기에 따르면 숙소가 너무 관리가 안 되어 있고 바퀴벌레가 천장에서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벌벌 떨며 잤다고 했다.
묘족마을에 가도 거기서 묵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구이저우성 자체가 워낙 지역이 다 떨어져있고, 묘족마을은 산속 깊숙이 자리한지라 애초에 그 마을 안에서 숙박하지 않으면 더 이동이 힘들어질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노동절 피크에 맞게 평소 가격의 2~3배를 주고 숙소를 예약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평이 좋아서 잡게 된 건데, 뷰가 좋은 것 말고는 청결도며 배수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날씨가 아직 추운 때라 바퀴벌레는 안 나왔다. 침대도 푹신하고 커서 꿀잠을 잤다.
룸메샘은 진정령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침 묘족 마을 옆 두윈이라는 곳에 진정령과 장야 촬영지 세트장이 보존되어 있다는 정보를 보고서 그걸 빌미로 룸메샘을 꼬셔서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곳에 가도 사실 크게 볼거리가 없을까 봐서 걱정했는데, 진정령 붐은 지난 지 오래되었지만 다행히도 여러 장소들이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예전에 헝디엔에 갔을 때는 스케일만 화려하고 클 뿐 디테일이 떨어지고 가짜 티가 많이 나서 실망했었는데, 의외로 두윈 진한 촬영지가 훨씬 좋았다.
고장극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꼭 들르면 좋은 장소로 추천한다.
구이저우에서 맛본 음식들은 의외로 다 내 입맛에 맞았다.
첫날 먹은 쏸탕뉴러우는 무릉에서 먹은 생선 요리보다 훨씬 맛있었고, 신김치의 자극적인 맛이 구미를 당기듯이 계속 흡입하게 되는 맛이었다.
묘족마을에서 먹은 매운 갈비는 고기가 덜 익었을 때 큰 덩이를 씹다가 턱이 부서질 것 같아서 한번 뱉은 뒤로 야채만 담가 먹었다.
이것도 국물이 신고 얼큰한 맛이라서 내 입맛엔 맞았다.
버섯튀김, 야채튀김, 쑥떡 튀김은 재료가 신선해서 그런지 더 깔끔하고 맛있었고, 길거리에서 사 먹은 감자와 옥수수도 그냥 다 맛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건 이름을 까먹었는데, '량피'와 비슷한 맛인데 쌀로 만든 피가 쫀득쫀득하고 비빔국수 먹는 상큼함이 있다.
구이저우 양로우펀이 맛있다고 했는데 먹을 기회가 없어 못 먹은 게 조금 아쉽다.
구이저우 여행은 날씨가 궂고(마지막날 빼고 매일 비왔음) 짐을 가지고 매일 지역을 옮겨 다녀야 해서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같이 간 룸메샘 덕분에 많은 위기를 넘겼다.
우리는 C-trip 어플에서 분명 버스를 예약했는데 갑자기 합승 택시가 와서 놀라기도 했고(오히려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가기 전까지는 찜찜했었음)
리보 샤오치공의 동문 짐 보관소로 가달라고 했는데 뜬금없이 산을 뺑 돌아서 서문으로 가는 바람에 택시 비용을 더 요구한 기사님도 있었다.(물론 그쪽이 사람이 덜 붐비고 확실히 쾌적했음)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황과수 폭포를 갔을 때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가 짐을 빼앗듯이 가져가서 바로 우리를 차에 타게 만들었는데, 얼렁뚱땅 돈을 내고 버스에 탑승하고 보니 굉장히 싼 가격으로 황과수 폭포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훌륭한 서비스였다ㅋㅋㅋㅋ
어찌저찌 눈 뜨고 코 베이지 않고 그럭저럭 잘 해결된 것이 신기하다.
오랜만에 힘든 중국 여행을 해서 그런지 한 치 앞을 계산할 수 없는 다이내믹한 재미도 느꼈고, 확실히 산수풍경이 남다른 지역인 만큼 어디를 가든 새로운 풍경에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었다.
구이저우는 연중 기온이 21도로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산지가 많아서 고도가 높고 습하지만, 공기가 좋고 물이 깨끗해서 지역 특산품이 술이기도 하다.
마오타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은 '마오타이주'라고 해서 중국 전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 마오타이주 브랜드에서 루이씽 커피와 협업해서 마오타이 술커피도 팔고 자체 브랜드에서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들도 굉장히 맛있었다.
마오타이주는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싼 술을 사려고 술 파는 가게에 들어가 여러 술들을 스캔했었다.
두윈에 갔을 때 두윈 특산품인 윈주라고 되어있는 술이 가격이 적당해서(99원) 500미리 짜리를 하나 샀는데, 공교롭게도 두윈 기차역에서 직원이 먹던 술은 반입이 금지라며 아직 뜯지도 않은 술을 강제로 뜯기 시작했다.
나는 직원에게서 술을 뺐으며 "이건 방금 산 술이고 새 제품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항의하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샘이 새 제품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뚜껑을 돌리자 뻥하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의 순간 새 제품을 개봉해 버린 것이다. 우리를 오해했던 직원은 이제 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지만 뻔뻔하게도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
술병이 예쁘고 깨질까봐 캐리어에 안 넣고 따로 들고 온 건데, 이렇게 열어버린 이상 기차를 탈 때마다 의심을 받겠구나 싶었다.
쓸데없이 술을 열어보려고 했던 그 직원만 아니었어도 무사히 집에 가져가는 건데. 그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짐에 넣어서 가져오던 길에 술이 줄줄 샜고, 내 캐리어는 향긋한 술냄새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마지막 숙소인 구이양 호텔에서 화가 샘솟고 서글픈 마음으로 술을 맛보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 일로 다시는 구이저우에서 술을 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도 많이 다치고, 술도 뺏기고, 돈도 날리고, 뭐 자꾸 되는 일이 없다 싶어서 좀 조신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여행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집에 오니 예쁜 금동이가 우리를 맞아주고, 허디가 광고하는 아이스크림 세 박스와 굿즈가 도착해있었다.
같이 살게 되면서 룸메샘은 내가 이렇게까지 허디에 대한 애정이 깊은 줄 몰랐다며 나날이 놀라워하신다.
금방 또 다가올 유월에는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된다.
이번 단오절 연휴는 짧아서 한국을 가기에도 멀리 중국 여행을 가기에도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5월을 무사히 잘 보내야 또 6월에 놀러 갈 힘이 생길 테니, 행사와 일이 많은 5월을 무탈하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