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구 2023. 10. 14. 17:06

여독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로 5일 출근을 했다. 원안지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발등이 불이 타서 재로 변할 때까지 두다가 겨우 검토용 원안지를 제출했다.

바쁘게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생리통이 찾아왔다.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눈을 떴는데 난 그게 생리통인지도 모르고 억지로 다시 눈을 감았다. 도저히 잠에 들 수 없길래 생리통 약을 허겁지겁 입에 넣었고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지난달 생리가 끝날 무렵에는 혼자 화장실에 앉아서 케겔운동을 하다가 생리컵을 하지 않았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었다. 이젠 내 몸이 생리를 하는지, 생리컵을 한 상태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싶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격렬한 생리통 덕분에 약기운에 취해 잠을 푹 잘 잤다.

아픈 건 싫지만 몸이 씻은 듯이 낫는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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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연휴가 끝나고 샘들이랑 오랜만에 식사를 같이 했다. 각자의 이유나 사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여기에 남거나 떠날 결정을 갈무리하고서 지금의 마음들을 나눴다. 

2년 동안 함께 고생하며 지냈던 샘들이라서 각자의 상황들이 다 공감이 갔고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니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나도 샘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잘 지내기 분명 어려웠을 거라고. 그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에게 기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지옥이라고 느껴졌을 땐 그저 탈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도망쳐온 이곳이 기대했던 천국은 아니었다.

한국보다 더 지옥같은 순간들도 있었고,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이기 전까지는 갈피를 몰라 헤매는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여기에 있으면 있을수록 벗어나고 싶다기보다는 지금의 순간들을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통도 행복도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에 만족하면서 지내다 보면 내가 원하던 어떤 삶의 목적을 이루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긴 것 같다. 

때마다 힘겹게 느껴지는 해외 생활이지만 아직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지쳐서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자포자기의 상태가 될 수 도 있고, 욕심도 미련도 다 버리고 훌훌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그때의 마음으로 결정을 또 내리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