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즐겁지만 고되다
9월은 어째 시간이 잘 간다 싶었다.
주말에 쑤저우 졸정원에 가서 여유를 즐기기도 했고(역시 내 눈엔 예원보다 쑤저우 정원이 더 예쁘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 개막식과 경기를 보고 싶어서 1박 2일로 닝보 여행을 하며 비치 발리볼 경기를 직관했다.
9월 말부터 시작되는 추석과 국경절 연휴를 즐겁게 맞이하고 싶었는데 맘처럼 쉽지 않았다.
연휴의 휴는 한숨의 휴라면서요
약 10일 간의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서 나에겐 큰 과제가 도사리는 중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약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가족 여행을 예상하고 비워두었던 연휴였는데 동생이 휴가를 낼 수 없게 되어 가족 여행은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더구나 엄마랑 내가 크게 싸우는 바람에 즐겁게 여행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엄마가 내가 쉬는 연휴에 중국 여행을 가고 싶다며 제안을 했고, 내심 중국 여행을 하고 싶었던 엄마가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여행에 동참하게 것이다.
중국에서 1년 반 지내봤지만 중국은 정말 자유여행이 힘든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일주일 넘게 여행을 한다는 것부터가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모든 걸 여행사에 맡기는 단체 여행이라면 모를까 자유 여행은 정말이지 과정이 극악무도하다.
비자까지 한국에서 대충 해놓은 상태였지만, 엄마 모시고 가는 여행은 2박 3일 도쿄 여행밖에 없었던 나는 엄마 혼자 중국행 비행기를 태우는 것부터 걱정이 됐다.
엄마는 그래도 낯선 곳에 갈 때 하라는 대로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문제는 사실 작은 엄마 쪽이었다.
작은 엄마는 내가 톡집사인 양 수시로 문의사항을 물어왔고, 하나의 의문이 해결되면 계속 다음 관문으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쩌면 내가 중국 여행 전문 가이드인 줄 아셨던 건지 중국에 와서도 주워들은 정보 사실 확인부터 불필요한 것까지 끊임없이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질문에 상응하는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바로 불평을 토해냈다.
여행 첫날 호텔에서 푸동 공항까지 가는 거리를 잘 몰랐다고 얼마나 구박하는지. 그때 맞은 등짝이 지금도 아프다.
여행 정보는 나도 검색해서 알아 내는 정보다. 그리고 연휴 기간 동안 교통 정보는 사실상 미리 알기 어렵다. 날씨, 연휴 인파와 교통편, 어른들의 체력 소요 등이 항상 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불안 요소였다.
그럼에도 나는 무책임하게 대답을 회피하고 싶지 않아서 잘 몰라도 파파고처럼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다.
내 대답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작은 엄마는 '너만 믿고 따라가는 여행인데 네가 똑바로 다 알아서 해줘야지'라는 식으로 넌지시 부담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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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가 왜요? 이래서 어른들이랑 여행 가는 게 쉽지 않은 거구나.
뒤늦게 사실을 깨우친 다음부터는 모르는 정보는 단호하게 '모릅니다' '알아서 하세요'라고 답했다. 자칫하다간 정말 리얼 파파고 & 톡집사가 될 뻔했다.
두 사람이 풍경에 정신 놓고 사진 찍고 돌아다니며 처음 접하는 모든 중국의 풍경을 평가하기 바쁠 때 나는 GPS 켜고 모르는 길을 찾고 다음 교통수단을 고민하느라 바빴다.
두 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 돈을 더 쓰면 그게 합당한 지출이었는지를 되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한국과 비교를 해대는데 피곤해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친구들이 여행 십계명 외우게 하라고 했는데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사실 이쯤 되면 여행에서 안 싸운게 다행인 수준이다. 싸울 체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행 일정 중간에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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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같아선 엄마가 중국 왔을 때 하나라도 더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계속 골골대며 기침이 깊어가는 마당에 무리해서 끌고 가는 게 의미가 없어 일정을 조정하며 하루는 집에서 그냥 쉬었다.
마지막 날 상해가 인파가 적어 여행하기 딱 좋은 날이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웠다. 계속 기침하는 엄마를 끌고 와이탄을 갔는데 사진을 보니 엄마 얼굴색이 회색빛이었다.
다음 날 아침 푸동 공항으로 엄마를 데려다주러 가는데 엄마가 집에 간다고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역시 이 여행은 나도 엄마도 큰 고생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9일간의 대장정이 끝이 났다. 백두산에서 천지도 보고 온천욕도 하고 내가 사는 동네 구경도 시켜주고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도 먹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괜찮은 여행이었다.
엄마만 좋다면야 더 자주 여행하고 돌아다니고 싶지만 그게 또 맘처럼 쉽진 않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숙원 사업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 셈이니 당분간 중국 여행은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크나큰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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